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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nogoodnw Aug 18. 2023

엄마의 마음이 이제야 조금 이해 간다.

게으른 모자 이야기

나, 어렸을 때부터 엄마랑 참 많이도 싸웠다. 아니, 사실 싸웠다 할 수 있는지는 몇 년 안 되었고, 참 많이도 혼났다, 가 맞을 성싶다.


우리 엄마, 첫째라 그런지, 나한테 기대가 정말 컸다. 누구나 으레 듣곤 하는, 애가 참 똑똑하더라, 소리라도 귀에 들어오면, 그 칭찬을 보석처럼 모셔두고는 두고두고 주변 사람들 앞에서 꺼내어 자랑했다. 그리고, 잘 기억나진 않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엄마의 보석함을 충분히 채울 만큼 남들에게 꽤나 똑똑해 보였던 듯하다. 엄마는 욕심이 많아서, 비단 부모라면 자식에 대한 욕심이야 한 없겠지만, 계속해서 더 많은 보석을 원했다. 내가 보석이었을까, 아니면 나에 대한 칭찬이 보석이었을까?


나는 어릴 때부터 꿈속에 사는 사람이었다. 두 발은 바닥을 딛는 주제에, 머릿속은 저 멀리 공상의 세계로 가득 차있었다. 두 발 대신 등으로 바닥 딛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맨날 누워만 있던 초등학교 5학년의 나에게, 엄마가 물어온 적이 있었다. 맨날 그렇게 누워만 있으면 어떡하냐고, 너는 꿈이 뭐냐고. 지금처럼 조금은 어눌하고 느릿한 말투로, 엄마, 나는 커서도 이렇게 누워있는 사람 하고 싶어,라고 답했다. 속상했는지, 커서도 누워있고 싶으면 일어나서 공부해! 엄마가 쏘아붙였다. 지금 돌이켜보니 엄마 말이 맞긴 했다.


그렇게 욕심쟁이 엄마와 꿈꾸는 자식은 충돌하기 시작했다. 어릴 땐 엄마 무서운 마음에 책상에 앉아있다가도, 툭하면 자고, 누워있고, 게임하고. 나도 참 맷집 좋은 인간인지라, 그렇게 많이 혼나고도 거짓말하고, 또 거짓말하고. 나 세상에 무서운 거 하나 없는데, 우리 엄만 진짜 무섭다, 맨날 친구들한테 이렇게 말했으면서, 그래도 책상 앞에 앉아 책 보는 건 정말 싫었나 보다.


머리 좀 커져서는, 물론 그때도 엄마 무서운 건 매한가지였지만, 슬슬 엄마랑 싸워댔다. 대체 그 인형놀이에서 언제쯤 벗어날 거야- 나도 엄마 자식인지라, 한 마디 한 마디에 칼 끝을 새겨 넣을 줄 알아서, 서로 푹푹 찔러댔다. 참 독한 모자였다. 아부지만 중간에서 어쩔 줄 몰라하고. 그러다 29살 때, 모종의 계기로 터질 것이 터져서, 서로의 인생에 간섭하지 말자! 결론이 났다. 엄마는 내가 취업한 것도 모르고, 회사에서 보낸 신입사원 축하 꽃다발에 우리 애는 회사에 다니지 않는데요,라고 답했다.


그렇게 서먹서먹한 채로 지금까지 어영부영 왔다. 그 격했던 감정도 시간이 잘 갈아내서, 뾰족한 것도 많이 없어졌고, 엄마랑 하루에 한 두 마디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다. 가끔 술 마시고 집에 들어가면 이런저런 일상 이야기도 한다. 맨 정신엔 아직 못하겠지만. 이래서 아들 낳아 봤자 의미 없다는 건가. 내 동생은 엄마랑 그리 싸워도 조잘조잘 잘만 말하던데. 아들 딸의 문제가 아니라 내 동생이 나보다 나은 됨됨이를 가져서 일지도.


그런데, 이제야 엄마의 마음이 조금 이해가 간다. 우리 엄마, 내가 진짜 미워하긴 했지만, 글쓰기 실력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감히 짧은 식견으로 말하건대, 오정희 씨만큼 잘 쓴다. 그 실력이 참 아까워서, 브런치에 글 쓸 권한을 얻은(감히 작가라고는 낯 간지러워서 못 쓰겠다) 후로는 꾸준히 엄마한테 글을 써서 여기 올려봐,라고 말했다. 싸운 세월이 미안해서인지, 아들이랑 화해하고 싶은 마음 때문인진 몰라도, 알겠어 꼭 써볼게, 하고 답하고서는, 미루고 미룬다. 언제 쓸 거야, 물으면, 글 빚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법인데, 해놓고는 딱히 무서워 뵈진 않는다.


내 엄마라서, 엄마도 맨날 누워서 유튜브 보고, 컴퓨터로 고스톱 치고, 그러다 졸리면 잠든다. 시간 조금만 내면 술술 쓰고도 남을 텐데, 도저히 한글 프로그램 켜기는 싫은가 보다. 나도 책상 앉기 참 싫었는데. 역시 우리 엄마구나. 재능 있는 인간이 재능을 축내는 것을 보고 있자면, 안타깝다. 아마 엄마도, 주변에서 그리 똑똑하다던 아들이 엄마 몰래 게임하고 있는 것만 보면, 안타까웠을게다. 우리 엄마 성격까지 더해서 생각해 보면, 부글부글 끓다 못해 매일 폭발했겠지.


아침에 엄마한테 물어봤다. 정 쓰기 귀찮으면, 엄마가 이 전에 쓴 글을 여기에 올려도 되겠냐. 답을 보아하니 묘하게 싫은 눈치다. 어제만 해도, 글을 써봐 거기다가, 에 그으래, 하고 답하고는 오늘도 또 빚만 늘린다. 내가 좀 더 추심을 독하게 해야 하나. 하여튼, 예나 지금이나 재능 있는 인간이 게으른 건 매한가지인가 보다. 그걸 보는 주변 사람 속 터지는 것도. 우리 엄마 언제쯤 책상 앞에서 고스톱 대신 한글 프로그램을 실행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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