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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울 Aug 01. 2024

미래에도 우리가 있다면

(WALL-E 영화리뷰)

제목: WALL-E (2008)

개요: 미국, 애니메이션, 104분

개봉: 2008년 6월 8일(대한민국)

감독: 앤드루 스탠

출연: 벤 버트(월-E / M-O 성우), 엘리사 나이트(이브 성우)



에디터: 너울


*다수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감상 이후 읽기를 추천.*

https://www.youtube.com/watch?v=qGBZWbg_26A&t=5s

SF 장르는 내 마음의 고향 같은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고르고 보니 공상과학 소설인 경우도 있고, 내가 인생 영화라고 

부를 만한 것 중에는 그런 내용이 많다. 나름 다양한 부문을 접해 봤지만, 

인간이 멋대로 공상한 미래만으로 인간의 주목을 끌지는 못한다. 

그것들이 인기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인간이 ‘공감’할 수 있는 ‘서사’에 있다.


Wall-E(2008)는 먼 미래의 지구와 인간의 미래에 대해 그린다.

자연을 소중히 여기자며 인간의 행동 변화를 촉구하는 어찌 보면 단순한 플롯이며, 

이대로 가다간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맞을 거라는,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도 드러난다. 

다수의 평론가와 관객들이 ‘자연환경 보호’를 시사점으로 해당 작품을 평가한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그것을 중심으로만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 다시 감상해 보니, 나는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보지 못했던 것이다! 

SF 스토리가 힘을 얻는 이유는 ‘AI의 사랑’이라는 큰 서사 덕분이었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이야기 진행에 가장 중요한 장치는 사랑이었다. 


1969년 개봉한 뮤지컬 코미디 영화 <Hello, Dolly!>의 OST인 

“It Only Takes A Moment “를 부르는 두 배우가 손을 맞잡는다. 

월 - E의 카메라(두 눈)에는 맞잡은 두 손이 비치면서, 클로즈업된다. 

손을 맞잡으며 경의에 찬 표정으로 영화를 감상하는 작은 로봇이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쯤에서 궁금증이 생긴다. 과연 그는 언제부터 다른 로봇들과 달랐는지.


다른 지구 청소 로봇들 WALL-E 들과 다르게, 

주인공 WALL - E는 고장 나지 않고 계속 작동 중이다.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공식 사이트에서 인간들이 

지구를 떠났을 때부터 존재했다고 하니 700년. 

그가 이렇게 오랜 시간 살아남을 수 있었던-고장 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다름 아닌 ‘감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공식 설정에 따르면 "700년 후, 그는 한 가지 작은 결함, 즉 성격을 발전시켰습니다."라고 한다. 

이 성격 발현의 촉매는 손을 잡는 두 남녀의 영상이었지만, 

그것이 발현될 조짐은 이미 있었다.


그는 다른 청소 로봇들과 다르게 인간들이 사용하던 골동품을 모으고, 분류하고,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가 말하는 어딘가의 결함, 기술적인 문제 덕분에 이 AI 로봇은 우리 같은 행동이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감정의 가능성이 WALL - E가 죽지 않을 수 있었던 원인이 아닐까. 

폐허와 쓰레기 더미 속에서 발견한 바퀴벌레를 친구로 삼고, 

인간이 나누는 사랑을 보며 스스로 두 손을 맞잡는 로봇. 

멸망한 세상 속에서도 인간은 희망을 가지고 살 것이라는 기대가 

WALL - E에게 투영된 결과라고 본다.


오만한 말이지만

내일을 절망 속에서 보내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맞이하는 것도

인류만이 가능한 것이니까.



먼저 사랑을 알게 된 로봇에게 갑작스레 찾아오는 또 다른 로봇, EVE. 

두 로봇의 사랑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흘러간다. 

둘은 각각 자신의 '명령 수행'이라는 금기를 깬다. 

EVE는 식물을 선장에게 전달한다는 명령어를, WALL-E는 

쓰레기 처리라는 명령어를. 스스로 명령어를 만든 EVE는 

WALL-E와 손을 맞잡는다. 그가 다친 다음 그녀에게는 더 우선적인 것이 생겨버렸다. 

그것은 갑작스럽고, 무계획적이며, 유약하지만, 무엇보다 강한 것. 

이 결함은 WALL-E를 구하고, 인류를 구하고, 지구를 구했으니-.




700년 후의 인류에게 로봇, AI란 지금보다 훨씬 가까운 존재일 것. 

픽사가 말하는 디스토피아 세상이 이제는 정말 찾아올지도 모른다. 

기계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깊은 사고를 하기 싫어하고, 

기계 위에 누워있기만 하는. 어라, 어쩌면 이미 벌어지고 있을지도. 

그러나 그 미래에도 사랑만은 남아 있었으면 한다.

어둡고 각박한 세상이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희망은, 사랑이 있어야만 피어오르니까.


작은 부츠 안에 희망을 가득 담아서 키울 누군가에게 

이 글이 닿기를.









모든 이미지 출처: https://www.pixar.com/feature-films/wa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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