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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울 Aug 03. 2024

남은 이들에게 노래하며

[러덜리스 영화 추천 리뷰]


제목: 러덜리스(Rudderless)

개요: 미국, 코미디, 드라마, 105분

개봉: 2015년 7월 9일

감독: 윌리엄 H. 머시

출연: 빌리 크루덥, 안톤 옐친, 셀레나 고메즈

감상 가능 플랫폼: 왓챠, 티빙, 웨이브




에디터: 너울


*다수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감상 이후 읽기를 추천.*



어느 평화롭던 오후, 한 대학교에서 무차별 총격 사건이 일어난다.

아들 조쉬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아버지 샘은 다소 덤덤한 표정으로 아들의 방을 살펴본다.

전 부인과 이혼과 더불어 광고 회사 생활로 바쁜 샘은 따로 살던 아들과 자주 교류하지는 못했다.

이어지는 조문 행렬과 조쉬의 여자친구 케이트의 인사에도 무던한 샘.

그가 슬픔을 삼키고 있는지, 아니면 함부로 드러내지 못했는지-그것은 이후의 이야기.

한 청년의 아버지는 여러 방송국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을 뿌리치며 집으로 도피하듯 들어간다. 

매일을 위스키와 배달 음식으로 달래며 그의 집은 점점 엉망이 되어버리고

그의 내면 또한 그러하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 샘은 바다 위 요트 생활을 전전한다.

좋은 직장과 빛나는 집을 뒤로하고, 아무도 그를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같이 페인트칠을 하며 

근근이 먹고사는 동료들과의 대화에서도 전에 무얼 하고 살았는지는 일절 알려주질 않으면서.

라이브 바에 들른 그가 컨트리 음악을 듣고는 과거 자신과 아들을 떠올리고

그날 갑자기 찾아온 아들의 기타와 CD에 샘은 당연하듯 그것들을 버리려 한다.

"하지만 착각하지 마. 이건 숨어있는 거야." 전 부인은 조쉬의 물건과 함께 아픔을 전해준다.




 전 부인이 가져다준 기억들을 버리지 못하고, 아들이 녹음한 CD를 듣고 연습하는 샘.

자주 가는 라이브 바에서 그는 아들이 남긴 곡 하나를 연주한다.

남은 곡들은 쿠엔틴과의 인연을 만들었고



밴드 "Rudderless"의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방향 키를 잃은rudderless 그에게 조쉬의 음악은 새로운 업적과 유명세를 선물했다.

하지만 그런 달콤한 기억도 잠시, 조쉬의 여자친구였던 케이트가 샘을 찾아오고-

"어떻게 그 노랠 해요? 창피한 줄 아세요!" 불길한 기운은 그렇게 한순간 드리운다.

애프터 파티에서 밴드의 흥행에 취해 있는 멤버들을 뒤로하고 그는 쓰라린 표정을 짓는다.



샘이 찾아온 곳은 조쉬의 묘비. 조쉬는 다름 아닌 2년 전 총격 사건의 가해자였다.

 살인자, 악마, 끝없는 욕설들. 그리고 지워지지 않을 이름, 조쉬 스튜어트 매닝.

매번 이 낙서를 지우러 오는 전 부인과 샘은 우연히 만나게 된다.

"누구 잘못인지 뭐가 중요한데? 난 용서 따위 빌 이유도 없고 걔들 부모 만날 일도 없어!"

.

.

.


샘의 상황과 다르게 밴드는 104블록 파티에 초청받을 만큼 밝은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샘은 공연 당일까지 밴드에게 곡의 출처를 밝히지 못한다.

케이트가 이를 전해주고 나서야 멤버들은 진실을 알게 된다. 

쿠엔틴은 샘의 얼굴에 멍을 남기며, 차갑게 돌아선다. 담을 넘다 부서진 클래식 기타.

또 다른 요트를 향해 돌진하며 일렉기타를 연주하는 샘. 이 모든 게 그저 한 남자의 울부짖음 같다.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학교 비석 앞에서 샘은 그저, 그저 목놓아 운다.

조쉬를 향한 원망과, 희생자들에 대한 미안함, 

그러면서도 가장 사랑해야 할 내 아이를 그리워하는 것...

그 어떤 것도 샘은 말로 형용할 수 없다.



갈 길을 잃은 미움, 그리고 밝힐 수 없는 사랑이 두 눈에 고스란히 보이는 장면.

마지막 장면을 위해 영화가 달려왔다고 해도 좋을 만큼 인상적이다.

"제 아들의 이름은 조쉬 매닝입니다. 2년 전 6명을 총으로 쏴 죽였죠."

샘은 홀로 마지막 곡 Sing Along을 노래하면서

무엇을 남기고 싶어 했는지. 그것은 영화를 시청한 사람들만 알 수 있는 감정.

덩그러니 남겨진 마이크와 환호할 수 없는 무대만 남기고 영화는 끝을 맺는다.


.

.

.


어떤 사건의 가해자는 응당 미움받고 공공의 적이 되는 존재다.

그러나 그가 나의 자식이라면? 무한한 사랑으로 보듬어야 할 존재라면? 

당신은 그 마음을 평생 어디로 향할 것인가? 

러덜리스는 샘을 불쌍한 사람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포악한 방관자로만 그리지도 않는다.

남은 이들에게 노래하는 한 아이의 아버지로 조망할 뿐.

영화는 그저 방향 키를 잃은rudderless 가해자의 부모의 모습을 담백하게 표현한다.

모두가 미워하는 나의 사랑을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개인적으로는 이 포스터의 의미에 대한 많이 고찰했다. 조쉬에 방에 붙어 있었던 것과 똑같은 포스터.

표면적으로는 쿠엔틴이라는 인물에게서 점점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는 상징.

더 깊이 생각한다면 자신에게 밴드라는 일탈이 점점 밖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더 이상 아들의 노래를, 진실을 감출 수 없다는 뜻이라고 해석해 보았다.


"나 때문에 음악을 포기하지 마. 포기하는 자는 이길 수 없어."

마지막으로 샘이 쿠엔틴에게 전한 말.

샘은 아들이 자신에게 이 말을 들려줬으면 하지 않을까.



무엇을 적어내려야 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황망한 마음이 드는 것이 영화를 본 모든 사람들의 마음 같다.

어떤 말도 남길 수 없는 무대에 우리 또한 마지막 관객이 되었다.

처음부터 다시 감상한다면 누군가는 샘을 미워할 수도 동정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마음이 다 당연하다는 것을,

우리는 그저 남겨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기를.






모든 이미지 출처: https://www.imdb.com/title/tt1798243/mediaindex/?ref_=tt_mv_cl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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