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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Jan 01. 2023

내일이여, 내 일을 다오!

아듀(Adieu), 2022!

2022년 임인년(壬寅年) 호랑이 해가 저물고 있다. 다사다난(多事多難)하다는 말로는 모자랄 만큼 나라 안팎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올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侵攻)으로 시작된 전쟁은 기존의 세계질서를 일거(一擧)에 무너뜨리며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인해 공황(恐慌) 상태에 빠져있던 세계인들을 더욱 깊은 시름 속으로 몰아넣었다. 스포츠 경기중계하듯 방송을 통해 날마다 전달되는 전쟁의 참화(慘禍)는 더 이상 세상이 이성(理性)이나 지(知性)의 통제를 받지 않는 야만(野蠻)의 시대로 되돌아갈 수도 있음을 여실(如實)히 보여주고 있다.


세상이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음을 알려주는 예후(豫後) 2022년 이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는 단지 국지적(局地的)이었고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도 극히 미미(微微)했었다. 하지만 이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철갑(鐵甲)이나 두른 듯 천년을 거뜬히 버틸 것만 같았견고(堅固)건물들이 폭격을 받아 일거에 주저앉아 버리고, 무너진 건물의 잔해(殘骸) 속에선 소중한 생명들이 초개(草芥) 같이 스러진다. 참혹한 전장(戰場)에서는 인륜이나 인간적인 도리와 같은, 지금까지 인류를 안정적으로 지탱해왔던 묵시적(默示的) 윤리의 흔적들을 찾으래야 찾을 수가 없다. 바야흐로, 각자도생(各自圖生)해야만 하는 야만적 시대가 도래(到來)한 것이다. 결국, 불확실성이 암운(暗雲)처럼 드리운 세상에서 자신의 생존을 담보(擔保)할 수 있는 존재란 오로지 자기 자신 뿐인 것이다.


눈을 안으로 돌리면, 새해 벽두(劈頭)부터 생각지도 못했던 재난이 발생해서 연초(年初)의 들뜬 분위기를 가라앉도록 만들었다. 광주에서 신축 중이던 아파트의 외벽이 무너져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이는 이후에 벌어질 대형 산불이나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나 11월의 이태원 참사에 비한다면 가히 재앙(災殃)의 예고편에 지나지 않았다. 3월에는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으나, 대선(大選) 이후 오히려 본격화되기 시작한 당파(黨派) 간의 정쟁(政爭)으로 인해 국론(國論)은 더욱 분열되었고, 해가 저물어가는 현시점에 이르러서도 전혀 나아질 기미(幾微)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로 지쳐있는 국민들을 두루 어루만져 줄 통 큰 정치적 행위는 이미 실종된 지 오래이고, 좌우 어느 쪽이든 정치에 대한 불신의 골은 이전보다 훨씬 깊어졌다.


다만, 4월에 거리 두기가 풀리고 9월에는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까지 전면 해제되면서 팬데믹 시대의 종말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2월의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의 메달 획득과 5월 손흥민의 아시아 최초 EPL 득점왕 등극(登極), 칸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이 감독상을, 송강호가 남우 주연상을 수상한 소식은 가뜩이나 코로나와 사투(死鬪)벌이면서 지쳐있던 국민들의 마음속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6월의 누리호 발사 성공과 이전보다 더 큰 위력으로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한류(韓流) 열풍은 문화민족으로서의 자긍심(自矜心)을 국민들 가슴속에 들끓게 만들었다. 12월에 열린 월드컵에서 선수들의 분전(奮戰)으로 최초 목표로 삼았던 16강을 달성했고, 국민들은 포기를 마다한 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준 선수들에게 아낌없이 열광했다.


오늘 하루만 지나면 2023년 계묘년(癸卯年) 새해 첫날을 맞는다.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면 나의 삶에도 만만치 않은 굴곡이 있었다. 물론 좋을 때가 훨씬 더 많았다. 우선, 평소 그저 소일거리 삼아 끼적이던 글솜씨로 어쩌다 보니 브런치 작가라는 이름까지 얻게 되었다. 아직은 몰라보는 사람이 훨씬 많지만 전혀 개의(介意)하질 않는다. 처음부터 이름이나 명성(名聲) 따위에는 연연(戀戀)하지 않았으니까. 다만, 내가 쓴 글을 읽는 독자들이 내가 글 쓸 때와 같은 심정이 되어 기쁠 때는 함께 기뻐해 주고 슬플 때는 슬픔을 함께 공감(共感) 주기를 바랄 뿐이다.


오랜 세월, 우정을 함께 쌓아 온 친구들과 여행하는 즐거움도 있었다. 6월 이른 여름날에, 부부 모임으로 성주와 김천의 유적지(遺跡地)돌아보면서 뜻깊은 시간을 마련한 적이 있었고, 시간을 달리하여 가을이 깊어가는 10월에는 서울 친구들을 만나러 불원천리(不遠千里) 마다하지 않고 멀리 여주까지 한달음에 달려가기도 했다. '유붕(有朋)자원방래(自遠方來)불역락호(不亦樂乎)'라, 과연 서울 사는 친구들은 공자님의 말씀처럼 멀리서 찾아온 친구를 기꺼운 마음으로 맞아주었다. 여름이 기력(氣力)을 다 한 8월 말에는, 고등학교 동기 산악회인 영우회의 욕친구들이 포항을 찾아 걸쭉한 입담을 자랑하기도 했다. 이제 대부분의 고등학교 동기들은 자신의 젊음을 불살랐던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하나, 둘 물러나 노후(老後)의 여유로운 삶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도록 경종(警鐘)울려주사건도 있었다. 10월 중순,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급성 폐렴이 내 몸을 침습(侵襲)했던 것이다. 최초 입원했던 포항 세명기독병원에서 5일 간, 전원(轉院)하여 대구의 영남대학교 병원 호흡기 내과에서 양쪽 폐로 전이(轉移)된 폐렴을 일주일 간 집중 치료를 받던 중에 그만 코로나까지 감염(感染)되고 말았다. 어디 하소연할 겨를도 없이 음압실에 격리(隔離)되어 오롯이 7일 간 생고생을 했다. 이후 일주일 가까이 회복기를 거치고 퇴원할 무렵엔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니 눈동자엔 생기라곤 없고, 팔다리의 근(筋) 손실이 너무 심해서 정말이지 거동(擧動)조차 힘이 들 정도였다.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병마(病魔) 씨름하면서 머릿속으로는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입원한 날로부터 퇴원할 때까지 거의 잠을 제대로 이룬 적이 없었지만, 그럴수록 삶에 대한 의욕은 져서 이 모든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졌다. 퇴원까지의 일정이 오리무중(五里霧中)이 되면서, 입원 당시 느꼈던 엄청난 심리적 동요와 함께 치료 과정 중 내 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병리적(病理的) 현상들에 대한 의문도 커졌다. 내 삶이 덧없이 소멸(消滅)될지도 모른다는 현실적인 위기감이 닥치자, 오히려 마음은 더욱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날부터 브런치에 '병상일지(病床日誌)'란 제목을 달고 글을 쓰면서, 머릿속을 드나들고 있는 이야깃거리 하나라도 소홀(疏忽)함이 없도록  밤이 하얗게 지샐 때까지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2023년 계묘토끼의 해를 앞두고, 우리 눈앞에 던져진 화두(話頭)는 결국 경제로 귀결(歸結)된 문제이다. 코로나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말미암은 국제 정세의 불안정은 쌍끌이로 세계경제를 침체(沈滯)의 늪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국내로 눈을 돌려봐도 당분간 경기침체가 계속 이어질 것은 굳이 전문가의 눈을 빌리지 않더라도 불을 보듯 자명(自明)하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에다, 임금(賃金)이나 고용(雇傭) 불안정에 대한 불만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자 각급(各級) 산업 노조(勞組)의 요구도 더욱 거세져서, 툭하면 거리로 나서 피켓을 든다. 한 집 건너 한 집마다 경제활동 적령기(適齡期)에 접어든 젊은이들이 일자리가 없어서 빈둥거리고 있으며, 당사자는 물론이고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도 덩달아 큰 고통을 받고 있다.


불황(不況)을 예고하는 듯한 염려스러운 지표(指標)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로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는 세계 질서에 코로나가 전과 같은 영향력을 미치지 못할 거란 점에서는 아주 고무적(鼓舞的)이다. 2023년 계묘년 새날이 밝아오기를 우리 모두가 손 모아 기대하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이다. 각 나라마다 관문(關門) 역할을 하는 국제공항을 활짝 열어두고 몰려오는 손님들을 정성스럽게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인적 교류는 물적 교류를 이어져 세계경제가 활성화되고, 바로 국내 경기에도 긍정적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기업체마다 일손이 부족해져서 능력 있는 젊은이들을 채용(採用)하기 위한 경쟁도 이전보다 훨씬 치열해질 전망이다. 말하자면, 이제야 우리가 염원(念願)'사람이 사람답게 살 만한 세상'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내일, 날이 밝으면 다사다난했던 2022년 임인년 호랑이 해는 새해 첫날의 그늘 속으로, 다시 말해 역사의 뒤안길로 영영 사라질 것이다. 나를 기쁘게 하기도, 힘들게 하기도 했던 2022년은 굴곡진 골의 깊이만큼 내 기억 속에다 한 이랑의 고랑을 보태 그곳에다 추억의 씨앗을 뿌릴 것이다. 그래서 이제 아무런 미련 없이 그 위에다 망각(忘却)의 흙을 덮어두고 아쉬움 없이 작별의 인사를 고(告)한다.


"아듀(Adieu), 2022!"


그리고, 밝아 올 2023년 계묘년 새해 날에는 이 땅의 모든 젊은이들을 대신하여 다시 한번 큰 소리로 고하고자 한다.


"부디, 내일이여, 내 일을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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