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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Jan 18. 2023

사랑의 손길로

할밴교?

벌써 7년이 흘렀다. 2016년 1월, 난생처음으로 주례(主禮)를 섰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마다 부를 묻곤 하던 정 많은 제자의 끈질긴 요청이 있어서였다. 그보다 훨씬 오래전 내 나이 마흔이 살짝 넘었을 때, 자신의 반려(伴侶)될 사람과 함께 주례를 부탁하러 집으러 찾아 제자의 청을 완곡히 거절했다가 낭패스러운 일을 겪고 난 이후로 의뢰를 받은 주례였다.


제자인 C가 아내 될 사람과 함께 집으로 인사를 하러 온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Y대를 졸업하고 L그룹에 입사를 했다는 소식은 진작부터 전해 들었지만, 간간이 전화로 안부를 물어오는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C집으로 직접 찾아오기 전까지는 전화 한 통 서로 나눈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C가 본래 성격이 유순하고 정이 많아 일부러 소식을 끊은 것은 아닐 것이다. 3년간 줄곧 담임을 했으니 C에 대해서 만큼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고 자부한다. 서로에게 섭섭한 마음이라고는 처음부터 눈곱만큼도 있을 리 없는 것이다. 아마도,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대기업에 입사한 이후로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왔을 것이다. 그러고선 이제 결혼이 바로 목전(目前) 있다.


C가 주례를 부탁할 때는 정말 난감했다. 마흔을  넘겨 주례를 맡기에 아직은 젊은 나이였고, 하객으로 결혼식에 참여할 혼주의 지인들 대부분이 포항지역의 명망(名望) 높은 인사들일 것으로 예상되기에 그 자리는 내가 서야 할 자리가 아닌 것이 분명했다. C의 아버지는 포항 토박이인 데다가 운수업체를 경영하면서 지역의 여러 봉사단체에도 두루 얼굴을 내밀 만큼 마당발이었다. 지역의 유지(有志)들을 바로 눈앞에 두고 나이도 어린 사람이 주례사를 하고 있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등으론 진땀이 배고 아득히 현기증까지 날 정도였다.


그런데, 주례를 청하는 이유를 찬찬히 들어보니 이날 내가 주례를 서는 것이 마땅하기는 했다. CC의 반려될 사람은 어려서부터 친구사이였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 혼기가 차면서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한 것인데, 뒤늦게 알고 보니 아내 될 아가씨의 오빠가 바로 고등학교 모교 선배였다. 그런데다 공교롭게도, 그녀의 오빠 A도 내가 C보다 3년을 앞서 담임을 특설반 제자였다. A는 S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행정고시에 합격해서, 당시 중앙부처의 사무관으로 재직하던 중이었다. 다시 말해, C와 A는 3년의 차이를 두고 동일한 선생님을 각각 자신의 담임으로 둔 기막힌 인연이 있었던 것이다.


A도 뒤늦게 전화를 걸어와 거듭 부탁을 했지만, 결국은 몇번의 고심 끝에 중재안을 냈다. C의 고등학교 은사이자 지금은 같은 재단의 중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J 선생님에게 주례를 부탁해 보는 것이었다. 마침, J 교장선생님과 C는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C의 아버지는 J 교장선생님의 동네 목욕탕 친구이기도 했다. 내심으로는 이참에 주례로 나서볼까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렇게 힘들여 마무리를 짓고 나니 C에게 미안한 마음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었다.


결혼식 당일이었다. 지금은 영일대 해수욕장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당시로는 북부 해수욕장 바닷가 북쪽 끝에 막 들어선 신축 호텔의 연회장이 바로 결혼식장이었다. 집에서 걸으면 불과 10여분 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였기에, 예식을 한 시간 남짓 남겨두고도 아내와 함께 입고 갈 옷매무새를 여유롭게 가다듬고 던 중이었다. 목소리만 들어도 금방 알 수 있는 제자인 K가 수화기 저편에서 다급하게 외치고 있었다.


"선생님, 어디 계세요? 빨리 오셔서 오늘 사회를  저랑 식순(式順) 미리 예행연습 해보셔야 하는데요."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가, J 교장선생님이 주례를 맡기로 했다고 일러주고는 지금 식장에 대기하고 있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아직도 오시않았다는 대답이 뒤를 따랐다. 급히 J 교장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생뚱맞게도 대구에 있다는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말이 이어졌다.


"박 선생님, 그날 박 선생님 댁에서 C군으로부터 전화가 왔길래 박 선생과 C군 아버지 입장을 두루 감안해서 흔쾌히 동의를 했었지요. 그런데 지난주에, 동네 목욕탕에서 C 사장을 만났는데, 그냥 씩 웃어넘기고 말길래 나도 같이 웃어주었지. 그러고는 아무 말도 없어서 그냥 다른 주례를 구한 줄로만 알았어요. 청첩장조차 전달받지도 못했는데. 결혼식이 언제 어디서 열리는 지를 어떻게  수 있어? 내가!"


전화를 끊고 시계를 보니 결혼식이 시작되기까지는 20여 분도 채 남지 않았다. 때맞춰 A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생님, 이참에 주례 선생님으로 데뷔하시지요. 당장 선생님이 주례를 맡아주시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콤비로 맞춰 입었던 윗저고리를 벗어던지고 서둘러 양복 정장으로 갈아입고선 정신없이 집밖으로 뛰쳐나와 택시를 다. 혹시나 몰라, 이전에 참석했던 결혼식과 주례사를 마음속으로 떠올렸다. 하지만, 보통 결혼식엘 가면 혼주와 인사를 나누고 부주를 한 뒤에 식권을 챙겨 일행들과 어울려 곧장 식사를 하러 가곤 했었기에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있었다. 사회를 봐야 할 K 역시 어찌할 바를 몰라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잠시 숨이나 고르려고 식장밖에 서 있는데, 식장 안으로부터 하객들이 두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예식이 시작될 시간을 이미 넘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결혼식에 지각하는 주례도 있나? 신랑 모교 K 교장이 주례라는데, 이런 실수를 하믄 우짜노?"


애꿎게도 주례와는 전혀 무관한 고등학교 K 교장선생님까지 오해를 사고 있었다. 교회 장로님인 K 교장선생님은 주일에는 주례를 볼 수가 없었기에 여하한 결혼식도 주례를 사양해오던 참이었다. A가 식장에 온 나를 뒤늦게 발견하고는 뛰어와서 주례를 서 달라고 다시 한번 정중하게 부탁을 한다.


"선생님, 이젠 어쩔 수 없습니다. 사회가 일러주는 내용 대로 따라 하시면 됩니다. 주례사(主禮辭)야 우리 양가(兩家) 상황을 두루 잘 아시니, 학생들에게 평소 훈화(訓話)듯 하시면 될 거고요. 그러니 이제, 앞으로  보입시더."


어쩔 수가 없어서, 다시 고르난 후 예단() 앞으로 막 나서려는데, 사회를 보는 K 군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식이 다소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L 주례선생님을 앞으로 모시고, 지금부터 C군과 A양의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알고 보니, 사전에 상황을 파악한 호텔 측에서 예비로 확보해  주례선생에게 두루 연락을  일촉즉발의 난감한 상황을 수습해 주었던 것이다. 그제야 마음이 놓이면서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훔쳐낼 수 있었다.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지 진땀을 흘리고 있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멀리 혼주석에서 C의 아버지가 빙긋이 쓴웃음을 띠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상황은 대충 이러했다. 이른 아침에 집 밖을 나서다가 논두렁으로 농사일을 나가는 동네 할아버지를 보고, '할아버지, 아침 식사 하셨습니까?'라고 문안 인사를 올리려 할 때 경상도 사람들은 이를 세 자로 줄여서 어떻게 말할까?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시라. 과연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씩 웃음 띤 얼굴로 머리를 아래로 주억거리면서, '할밴교?' 러면 된다. 경상도 사람 단순한 말과 표정 속에는 여러 가지 중의적(重義的)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할아버지, 그간 별고 없으셨습니까?'나, '할아버지, 오랜만에 뵙습니다.'도 그냥 '할밴교?' 하면 끝이다. 이 말속에 모든 의미가 다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날이 바로 그랬다. 동네 목욕탕에서 오랜만에 두 어른이 만났을 때, 두 사람은 서로의 웃는 얼굴에서 제각기 엉뚱한 해석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C의 아버지가 단단히 오해를 한 것인데, J 교장선생님의 웃음 띤 목례(目禮)를 보고는 주례를 승낙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C의 아버지는 C가 그날 바로 J 교장선생님을 찾아뵙고 허락을 구한 것으로 알고 있었고, C는 C 대로, 아버지가 J 교장선생님을 만나 직접 부탁을 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바탕 소동은 있었지만 결혼식은 무탈하게 마무리되었다. 후, 이날 있었던 일은 잊으래야 잊을 수 없는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작년, A의 아버지가 유명(幽明)을 달리하셨을 때, 사돈의 부고(訃告)를 접하고 장례식장으로 한걸음에 달려온 C의 아버지를 만나 뵈었다. 내 손을 꼭 쥐고 지난 일을 이야기할 때 C의 아버지 손은 변함없이 따뜻했고, 건네는 말 한마디 한 마디에는 정감(情感)이 넘쳤다. 하기야, C가 졸업하고 나서 C의 동생까지 담임을 하는 인연으로 이어졌으니, 드물고 질긴 인연이기는 다.


K가 자신의 아내 될 아가씨와 함께 주례를 부탁하러 왔을 때, C의 결혼식 날 있었던 낭패스러운 일이 먼저 떠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K는 고등학교 재학시절은 물론이고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지금까지 내게 남다른 마음으로 존경심을 표하곤 는데, 그럴수록 K에 대한 애틋함이 커지는 것을 숨길 수가 없다. 이날  주례를 허락함은 물론이고 서툴고 부족한 솜씨지만 결혼을 축하하는 시까지 써서, 부부의 앞날을 축복주겠노라K에게 굳은 약속을 했다.


《축시》

사랑의 손길로

1월,
시리도록 푸르른 하늘 아래
나의 신부여!
무릎 꿇고 당신을 맞이합니다

마주 잡은 당신의 가녀린 손,
가슴을 울리는 사랑의 선율 되어
형형색색 아름다운 화음으로
우리 사랑 빚어 주소서

난,
당신의 감미로운 목소리에
귀가 멉니다

난,
당신의 사랑스러운 눈길에
눈이 멉니다

당신이 이끄는 이 길,
유리거울 같은 이 길 위로
호오, 입김 불면
이슬처럼 영롱하게 맺힐
우리들의 발자취

이것은 사랑입니다
가슴 깊이 꾹 눌러 새겨 둔
우리 두 사람
사랑의 정표입니다

1월,
시리도록 푸르른 오늘
우린 그 길을  따라
나란히 걸어갑니다

푸르도록 시린 이 날,
사랑하는 당신과 함께
영원을 기약하면서


그날, 결혼하는 K가 신부에게 올리는 사랑의 다짐을 시로 표현해 본 글이다. 부족함이 많은 글임에도, 흔쾌히 신랑이 결혼식에서 신부에게 바쳤던 이  내용처럼, 결혼 당시의 간절한 마음이 앞으로도 부부 사이에 영원히 이어지길 묵묵히 지켜보면서 성원을 보내 싶다. '○○아, ●●야, 행복하게 잘 살아라!'


오늘은, 왠지 모르게 A와 C, 그리고 K 부부가 무척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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