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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Mar 16. 2023

엄마야, 강변 살자

성호, 성진 형제 이야기 1

고향의 봄은 늘 따스한가 봅니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물아지랑이 일렁이는 강둑을 바라보면 강 건너 저편으로 고향마을이 보입니다. 오늘처럼 거의 몇 년에 한 번쯤은 차를 운전하면서 봄이 오는 고향마을을 지나칠 때가 있습니다.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시골풍경은 사람이 성장하면서 얼굴 모습이 많이 달라지듯 어린 시절 보았던 풍경과 크게 달라져 있지만, 멀리 푸른 하늘과 맞닿은 야트막한 산자락과 그 아래로 슬며시 흘러내린 산비탈 아래 촌락은 어릴 적 기억 속의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내가 살던 집은 고향 마을과 개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논두렁이 완만하게 이어지는 산자락 비탈진 곳에 있었습니다. 우리 집이 맨 앞쪽이고, 싸리문을 열고 뒤돌아 서서 경사진 곳을 걸어 올라가면 좌우로 나란히 갈라진 곳에 이웃한 두 집이 있었습니다. 기억이 분명하진 않지만, 우리 집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둔 마당 넓은 집에는 내 또래의 아이 하나와 형과 누나들이 여럿이었던, 식구가 많은 집이었습니다. 그 맞은편 감나무집에는 할머니가 손자 둘과 셋이서 단출하게 살고 있었는데, 어린 시절 내가 주로 어울려 함께 놀았던 아이들이, 바로 감나무집 할머니의 손자인 호, 진 형제였습니다.


머리뒤로 휙휙 스쳐가는 시골 풍경이 다시 낯설어졌지만 머릿속에서 휘돌고 있는 상념은 여전히 고향 마을에 머물고 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감나무집 손자들과 함께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 속으로 이 잠겨 들고 있었던 것이지요. 여울목을 끼고 굽이진 강변도로의 황급히 휘어진 길을 돌아가는데, 개울물에 일렁이는 햇살에 눈이 부셔 잠시 현기증이 났습니다. 마치, 아주 오래전, 물속에서 정신없이 놀다가 바닥이 고르지 못한 금빛 모래 위에 올라섰을 때의 아찔했던 어지러움이 되살아난 듯했지요.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르고자 외진 길 모퉁이에 잠시 차를 세웠는데, 한번 되살아난 추억은 되려 멈출 줄 모르고 아득히 먼 어린 시절의 기억 속으로 끝없는 자맥질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모처럼 차려입은 한복이 너무나 곱습니다. 앳된 모와 이로 나비가 내려앉은 듯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살포시 서 있는 양장 차림의 낯선 여자,  형의 엄마랍니다. 며칠 전, 처음 보는 아줌마가 싸리문을 고 우리 집으로 들어와서는 삽살개의 뒤꽁무니를 고 있던 나를 품속으로 꼬옥 안아주었을 때 콧속으로 스며들었던 향기가 오늘도 봄바람에 실려와 코끝을 간질였습니다. 엄마의 살냄새와는 또 다른 기분 좋은 냄새입니다. 생전 처음  사진기도 낯설지만, 사진기를 마주 보고 선 엄마와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고모의 예쁜 얼굴도 지금은 무척 낯설기만 합니다. 그리고, 평소 우리 엄마를 자기들 엄마처럼 따르던 성호 형과 성진이 형이 낯선 아주머니를 혹시라도 놓칠까 봐 한사코 를 쫓고 있는 것도 오늘따라 이상스럽게 보입니다. 하지만 옹기종기 둘러앉아 어른들이 사진 찍는 모습을 지켜보던 봄날의 추억은 50여 년이 훌쩍 흐른 뒤에도 한 장의 흑백사진으로 남아, 모서리가 너덜너덜하게 헐어버린 두툼한 앨범 속 한 귀퉁이 아래 오롯하게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날 이후로, 아줌마가 종종 우리 집에 들를 때면 시골에선 좀처럼 맛보기 힘든 초콜릿이나 껌, 요즘의 감자칩과 같은 과자를 한 아름씩 선물로 가져오곤 했습니다. 성호 형과 성진이 형의 새 옷과 신고 있는 신발이 간혹 부러울 때도 있었지만, 나에겐 눈앞의 과자만 있어마음이 터질  단맛에 주려있던 배가 불러왔습니다. 어떤 날은 아줌마가 엄마 방에서 밤늦도록 놀다가 자고 가는 일도 있었습니다. 열아홉의 어린 나이에 결혼한 아버지는 여전히 군 복무 중이었고, 앞을 못 보는 할머니와 나는 안방에서 함께 지냈기 때문에 엄마는 툇마루로 이어진 곁방에서 혼자 잠을 자야 했습니다. 아줌마가 우리 집으로 자러 온 날은,  형과 성진이 형도 우리 집 안방으로 놀러 와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를 들으면서 함께 꿈나라를 헤매곤 했습니다.


호 형의 아버지도 군인이었는데 계급이 꽤 높은 장교였나 봅니다. 어느 날인가 군복을 입은 훤칠한 아저씨가 검은색 지프차를 타고 마을 어귀까지 온 일이 있었습니다. 검은 선글라스를 모습이 무서웠던지, 차에서 훌쩍 뛰어내린 아저씨가 우리 집 마당 안으로 들어서며 호 형과 성진이 형 이름을 큰 소리로 번갈아 부르는데도 선뜻 앞으로 나서지를 못했습니다. 뒤늦게 엄마와 나무집 할머니가 버선발로 뛰쳐나오는 것을 보고선 이들 형제는 마지못한 듯 한 사람씩 아저씨 품속으로 머뭇머뭇 안기곤 했습니다. 아저씨가 집으러 돌아 날 저녁이 되면 우리 집 안방에는 아저씨가 가져온 C 레이션이나 건빵을 펼쳐놓고 함께 나눠 먹곤 했는데, 깡통을 새로 딸 때나 비닐 포장을 뜯을 때 생전 처음 본 과자나 전투 식량이 혀끝에 남긴 그 오묘한 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한 번은, 엄마의 무릎을 베개 삼아 누워서 그동안 망설여오던 의문을 기어이 입 밖으로 꺼내고 말았습니다. 아줌마와 아저씨가 함께 호 형과 진이 형을 보러 오지 않는 것이 늘 궁금했던 것입니다. 사실, 그 이야기를 처음 꺼낸 것은 당시 중학생이던 막내 고모였습니다. 난 그저, 성호 형과 성진이 형을 아저씨나 아줌마가 언젠가는 영영 데려갈지 모른다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있었을 뿐이었지요. 그럴 때면, 엄마는 입가로 쓸쓸한 웃음을 흘리며 입을 꼭 다물곤 했습니다. 특히, 아줌마가 감나무집을 다녀가고 난 그날 밤은 울다가 지쳐 눈까지 붉어진 두 형제를 방으로 불러, 나와 함께 셋 모두가 잠이 들 때까지 엄마는 밤늦도록 우릴 말없이 지켜보곤 했습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가까워졌을 때입니다. 성호 형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곧장 성진이 형과 함께 나를 불러내어 마을 앞 샛강으로 멱을 감으로 갔습니다. 개여울에는 앞마을에서 놀러 온 동네 형들이 우리를 기다렸다가 함께 어울려 물놀이를 하곤 했습니다. 형들처럼 무리 지어  너머까지 헤엄쳐 건너가기엔 나와 성진이 형이 아직은 너무 어려서, 그저 개울가의 얕은 물에서 몸을 담그고 놀다 늦봄의 나른한 햇살 아래 차가워진 몸을 데우려고 모래사장 위를 이리저리 뒹굴곤 했습니다. 바로 그때였던 것 같습니다. 멀리 개울 강둑 위로 지프차가 서더니 군복을 입은 아저씨가 차에서 내렸습니다. 이내 아저씨의 부름을 받고 형들과 함께 얼떨결에 지프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안타깝게도 그날이 형들을 본 마지막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녁, 아저씨가 두 형제를 부대 가까운 사택으로 데려갔다는 말을 할머니로부터  들을 때만 해도, 낮에 한 물놀이가 형들과 함께 한 마지막 순간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일입니다.


그해 늦가을, 이태전에 제대를 하고 대구를 오가며 이사 궁리를 하던 아버지가 마침내 대구에 자리를 잡으면서 우리도 결국 고향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도, 성호 형과 성진 형이 감나무집 할머니를 찾아온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다만, 지난여름 늦게 아이들을 보러 왔던 아줌마가 이들 형제를 아저씨가 데려간 것을 알고, 감나무집 할머니와 대판 싸우고는 마을을 떠났다는 소식을 학교에서 돌아온 고모로부터 전해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아줌마는 마치 실성이라도 한 듯, 곱게 차려입은 옷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마을 어귀에 퍼질러 앉아 한참을 목놓아 울었다고 합니다. 대구로 이사 온 후 간간이 고향 사람들로부터 전해 듣고 있던 감나무집 형제 이야기는, 한 해 두 해 세월이 흐르면서 늦가을 무서리에 김이 서리듯 그렇게 뿌옇게 서서히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고 있었습니다.


대구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큰 병을 얻은 막내 고모는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모를 통해 감나무집 소식을 간간이 전해 듣던 나는 어느 해부터인가 어른들이 지나가는 말로 하는 이야기에도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고향 마을을 떠났던 형제가 다시 감나무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도 섞여 있었습니다. 형제들이 마을을 떠나고 나서 그해 겨울을 넘긴 어느 날, 아줌마가 경상도 일대의 고아원이란 고아원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형제를 수소문하다가 경남의 어느 도시에서 아이들을 결국 찾아냈다는 소식도 들려왔니다. 아저씨와 함께 살던 새엄마란 사람이 아저씨 몰래 이들 형제를 고아원에 맡겨버리고는 아저씨에겐 먼 친적집으로 양자로 보냈다고 거짓말을 했었나 봅니다. 아줌마가 그 여자를 찾아가서 머리채를 잡고 싸우기도 하고, 무릎 꿇고 간절하게 호소도 한 끝에 결국 아이들을 맡긴 곳을 알게 되었고, 아줌마가 왜관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아 아이들과 함께 살 수 있을 때까지, 되찾아온 형제를 감나무집 할머니에게 다시 맡겨놓았다 합니다.


그런데 더욱 가슴이 아프면서 기막혔던 사실은, 감나무집 할머니도 어려서 재취로 들어와서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 평생을 꿀 먹은 벙어리처럼 집안의 소박데기로 살아왔다는 니다. 머리 큰 자식이 하자는 대로 마냥 따르다 보니,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자들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꼴을 보면서도 제대로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그저 냉가슴만 앓았던 것입니다. 아줌마를 만나보려고 고향 마을을 다녀온 후 엄마가 할머니에게 전하는 말에 따르면, 아이들을 데리고 감나무집으로 돌아온 그날 저녁, 고부간의 두 사람은 서글픈 신세를 한탄하면서 밤늦도록 서로 부둥켜안고 목놓아 울었다고 합니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고아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이후부터는 이들 형제가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잠잘 때조차도 맞잡은 손을 놓는 법이 없었다고 합니다.


몇 해의 세월이 다시 흐르고, 중학생이 되고부터는  해도 거르지 않고 아버지를 따라 벌초를 하러 고향을 찾곤 했습니다. 늦여름이 지나고 물색이 려진 강가엔 해마다 이름 모를 잡풀들만 무성히 자라고 있었습니다. 개울 상류를 거슬러 오른 곳에 안동댐이 들어선 이후로 샛강으로 흘러내리는 강물의 유량이 눈에 띄게 줄어들어, 빛 모래로 가득했던 강변이 이젠 물길만 가늘게 남아 그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여름날 오후, 늦게까지 물놀이에 정신이 빠져 있을 때면 강둑까지 내려와 번갈아가며 우리를 부르시곤 하던 엄마와 아줌마의 목소리가, 불어오는 바람소리에 섞여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이 근처를 지날 때마다  들려오곤 하는 바로 그 소리입니다. 옛날 우리 집이 있던 집터엔 널따란 마당과 마당 양쪽의 해묵은 대추나무 두 그루 만이 지나간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벌초를 하려고 차에서 예초기를 내려 감나무집 마당을 가로질러 마을 뒷산을 오를 때면 늘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시던 할머니는, 아흔 너머까지 홀로 이곳에서 지내시다가 십여 년 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른 나이로 아줌마로부터 독립할 수밖에 없었던 성호 형은, 이후 서울 동대문 시장에서 신발가게로 크게 성공을 했나 봅니다. 감나무집 마당 구석구석까지 잔디를 깔고, 초가집을 허문 자리에다 어릴 적부터 키워준 할머니를 위해서 양옥으로 번듯한 집을 지을 때까지도, 여전히 이 집에서 성호 형을 다시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소식만 전해 들었지 서로 고향을 찾는 시기가 달랐던 이지요. 진이 형은 성장하면서 아저씨에 대한 반감이 너무 컸던 탓인지, 청소년기를 지나면서까지 크게 방황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서 정신을 차리고 직업군인이 되었다고 하는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의절한 아저씨가 몰래 뒤를 봐주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고향 마을을 벗어나고 한참 시간이 지날 때까지도 동행한 사람들 사이에 서로 오가는 말이 귀에 닿질 않았습니다. 상념이 다시 깊어졌던 때문이지요. 오랫동안 인연을 맺고 살아왔던 사람들이 이젠 뿔뿔이 흩어져 생의 마지막 순간을 붙들고 있습니다. 외줄 타기라도 하듯 인생의 뒤안길을 아슬아슬하게 마무리한 사람도 적지 않았나 봅니다. 아저씨와 아줌마의 삶이 바로 그러했지만, 감나무집 할머니는 마지막 순간까지 손자들과 함께 한 삶이 끝내 외롭진 않았을 겁니다.


년 전 어렵사리 알아낸 전화번호로 호 형과 연락이 닿았을 때, 뜻하지 않던 아줌마의 죽음을 기별 받았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습기 어린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어느 순간, 이들 형제가 평생을 두고 애타게 불렀을지 모를 사모곡이 슬그머니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형과 성진이 형 두 사람에게 엄마란 과연 어떤 존재였을까요? 은빛 모래사장을 정신없이 뒹굴고 있을 때, 물안개 피어나는 강둑으로부터 들려오는 엄마의 애절한 목소리. 손에 잡힐 듯한 거리를 사이에 두고도 평생을 서로 안타깝게 찾고 있었던, 사무친 그리움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멀어지고 있는 고향 마을은, 이른 봄 햇살 아래 나른한 물아지랑이 속으로 슬금슬금 모습을 감추고 있습니다.


이 글은 사실과 허구가, 가공의 인물과 함께 섞여 있습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https://youtu.be/bDXx0grbY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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