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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의 노래

by 박상진

잠결에 문득 눈을 뜨니, 아직은 까만 밤이었다. 사방으로 빛이라곤 한점 들어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비슷한 키높이의 주변 아파트 역시 서둘러 소등을 하고 한 겨울의 깊은 어둠 속에서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다. 12월에 들어서면서 시작된 불안정한 시국과 맞물려, 정작 활기에 차 있어야 할 연말의 길거리는 그 흔하던 노점상조차도 여간해서는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까지 이르렀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는, 마치 다사다난했던 갑진년 한해의 방점이라도 찍으려는 듯 을사년을 코앞에 두고 사람들을 절망의 나락 속으로 내몰고 있다.


여전히 눈꺼풀은 무거웠으나 생각의 실타래가 얼핏 풀리고 나니, 무의식의 문턱을 넘나들고 있던 온갖 상념들이 어둠의 장막을 찢고 거침없이 의식의 경계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어둠의 저편에서 불쑥 양손을 내밀어 나의 목덜미를 부리나케 부여잡고 있는 손길이 있다. 질겁해서 돌아보니, 새하얗게 옹이 진 하숙집 할매의 마디마디 앙상한 손가락이 눈에 밟힌다. 비몽사몽간에 눈이 감기면서, 다시 어둠이 지배하는 세상 속이다.

하숙집 할매가 뜬금없이 나를 나무랐다.
"니는 선생이라 하는 기, 우리 신랑이 자동차 사고로 갑자기 죽었다 카는데 '쓰러지셨다'라고 쓰는 건 또 뭐꼬?"

할매의 영감님 생전의 이야기를 글로 받아 적던 중이었다. 그 말에 발끈하여 대뜸 한마디 거들었다.
"그라마, 영감님이 쓰러져 돌아가셨지, 그냥 선 채로 돌아가싰나?"

멀뚱한 눈으로 아래위로 나를 째려보더니, 피식 웃으며 할매의 말이 이어졌다.
"아이다, 아이다! 하긴 니 말이 맞네. 사람이 죽을 땐 자빠져 죽는 기 맞기는 맞지! 그냥 그대로 '쓰러지셨다'라고 적어라."

자던 중, 난데없이 웃음보가 터졌다. 할매의 말 끝으로 박장대소하다가 제풀에 놀라 깨어나 보니, 밤이 여전히 까맸다. '도대체, 이 무슨 얼토당토않은 상황이람? 하숙집 할매가 느닷없이 왜 꿈에 보인다냐?'


창문 틈새로 새벽노을이 조금씩 붉게 스며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날이 훤하게 밝아 있었다. 의식의 경계밖으로 일단 빠져나오자 당장 하숙집 할매의 실팍한 손길과 앙팡진 말투부터 몹시 그리워졌다.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기 바로 전 해에 돌아가셨으니 할매가 세상을 등지신 지도 벌써 3년을 넘어섰다. 여태까지 단 한 번도 꿈속에 현신하지 않더니만, 할매 말마따나 '속 시끄러우니', 생전 모습으로 슬그머니 와 주신 것이 아닐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잠에서 깨어나서 한참 동안이나 할매가 평소 즐겨 부르던 노랫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쩌면 꿈의 말미에, 어둠 저편으로 희미하게 꺼져가던 할매의 영령이, 세파로 피폐해진 나의 영혼을 위로하고자 들려준 노래였을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일순 마음이 울컥했다.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헤어지지 말자고
맹세를 하고 다짐을 하던
너와 내가 아니냐

세월은 가고 너도 또 가고
나만 혼자 외로이
그때 그 시절 그리운 시절
못 잊어 내가 운다

하숙집 할매는 더러 하숙생들과 함께 한 술자리 말미엔 꼭 이 노래를 불렀다. 얼굴 없는 가수 손인호가 32세의 나이로 1958년에 발표한 '해운대 엘레지'란 노래인데, 그 절절한 노랫말이 비슷한 나이로 청상이 된 할매의 심금을 울렸던 게 틀림이 없었다.


스무여섯 살에 고등학교 선생이 되어, 어머니가 아닌 다른 사람이 지어준 밥을 하숙집 할매의 슬하에서 꼬박 6년을 먹었다. 그 사이 '하숙집 아지매'라 부르던 말이 '모친'이라는 보다 편한 말투로 바뀌었다가 덧없는 세월의 흐름에 못 이겨 '하숙집 할매'로까지 이어졌다. 정말 엄마나 할매 같은 사랑으로 나를 보살펴 주었던 하숙집 할매는, 당신이 평생을 의탁하신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수년 전 소천을 하셨다.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고인의 명복을 빈다.


진기명기를 보여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었다. SBS의 '스타킹'이나 KBS 2 '기네스북! 기록에 도전한다'와 같은 프로그램들이다. 동글동글한 조약돌 위에다 깨진 도자기를 모로 세우거나, 출연자가 앉아 있는 의자를 한쪽다리로만 버티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묘기 따위를 종종 시청자에게 선보이곤 했었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물체의 기울기에만 관심을 쏟다 보면 이에 현혹되어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아슬아슬해 보이긴 해도 이들 물체와 지면사이에는 균형의 합이 절묘하게 이루어져, 외부로부터 별다른 충격이 가해지지 않는 한 현재의 상태가 매우 안정적이라는 점이다.


을사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세상살이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갑진년이 남긴 엄혹한 삶의 현실이 사람들을 절망의 구렁텅이 밖으로 헤어 나오지 못하도록 여전히 야멸차게 막아서 있다. 비틀대거나 허우적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이미 기력을 다해서 쓰러지고 만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의 추는 간당간당해 보이긴 해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틀림없는 복원력과 항상성을 가지고 있다. 희망이란 끈을 스스로 놓지 않는 한 삶은 최적화된 상태로 어김없이 되돌아올 것이 분명한 이유이다. 당장은 위태롭게 보일지는 몰라도 삶과 세월 사이에도 균형의 합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의 길거리가 바로 그랬다. 험난한 시국을 서로 탓하고 성토하는 현수막 사이사이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를 애도하는 검은색 현수막이 세찬 바람을 맞아 슬프게 나부끼고 있었다. 바닷가 모래 기슭을 따라 바짓단을 물에 자북이 적신 채로 맨발의 여인이 물길 위를 느긋이 걷고 있었고, 전기 자전거를 탄 휴가병이 해안로를 따라 서둘러 지나쳐 간다.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바닷가 풍경이 한 순간 펼쳐지고 있는데, 며칠 사이 한산하던 길거리에도 부쩍 사람이 많아져 있었다.


그래, 사는 게 이런 거지! 세모의 부산함이 되살아난 바닷가로 길게 갈매기의 쇳된 울음이 덩달아 이어졌다. 마치,'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헤어지지 말자고 맹세를 하고 다짐을 하던' 그 구수한 할매의 노래와도 같이.


포항운하 억새길
포항운하
갑진년 해넘이



'해운대 엘레지' by 손인호

https://youtu.be/dckfjnwAhro?si=fTT0u79tvo87TI1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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