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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go Jan 16. 2023

사랑니를 뽑다.

지난 3월 말에 양치를 하는데 어금니가 깨져 버렸다.

양치를 한다고 어금니가 깨질 리는 없었을 테고 아마 위태위태했던 어금니가 양치를 하고 있는 그 찰나에 부러진 것이다. 어금니가 부러진 그 순간에 정말 가슴이 털썩 내려앉았지만 곧바로 상황을 받아들이고 다음날 치과나 가야겠군 했다.

동네 치과를 가니 대학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어금니 위쪽에 사랑니가 있어서 치료가 어렵다면서 사랑니를 먼저 뽑아야 하는데 조금 위험한 부분에 박혀 있어서 대학병원에서나 할 수 있다고 하셨다. 정말 무시무시한 이야기였고 그 순간 참 겁이 났지만 별 수 있나. ​후배에게 좋은 대학병원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고 나는 세브란스 병원을 예약했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고 이후 시티 촬영까지 마치니 역시나 사랑니를 뽑고 어금니를 치료해야 한다고 하셨다. 수술 예약 날짜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3개월 뒤였고, 그 3개월을 즐겁게 보내다가 드디어 수술 날짜와 맞닥뜨렸다.

아침 요가 수업을 마치고 간단히 식사를 하고 수술대 위에 누우니 두려움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의지할 사람은 앞에서 친절하게 설명을 하고 있는 간호사 분 뿐이었다

"저... 마취 주사 아픈가요?"

"예 좀 따끔하죠. 특히 입천장이 조금 아프실 거예요."

앗, 마취주사부터 무서웠지만 운명을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입을 벌렸다. 마취 주사는 3대를 맞았고 다행히 생각보다 아프지 않아 참을만했다. 가만히 있는 나를 보더니 오늘 수술은 무리가 없겠다고 말씀하시는 간호사분의 말을 믿기로 했다.

드디어 얼굴에 덮개가 씌워지고 수술이 시작되었다. 이를 뽑는다는 게 이렇게 힘이 드는 일이구나를 아주 구체적으로 알게 된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믿음이 가서 온 힘을 다해 손을 배에 대고 참았고 수술은 다행히 10분 만에 끝이 났다.

거즈를 물고 시내를 걸어 다녔고 입안에 피 맛이 났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는 수월하게 지나갔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요가 수업도 마쳤다.

그렇게 나는 조용한 환자가 되어 편의점 호박죽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아침, 저녁으로 요가 수업을 계속 이어갔고, 다행히도 얼굴은 크게 붓지는 않았다. 죽으로 2-3일을 보내야 했고 일주일 동안은 금주를 지켜야 했지만, 사실 입안의 상처가 조금 커서 먹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불을 덮고 누워서 사랑니가 빠져나간 공간을 느끼며 아픈 시간을 보냈더라면 조금 더 시끄러운 환자가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다행인지 친구들이 매일 나를 불러내서 아픈 것을 느낄 시간이 없었다고나 할까. 이태원에서 한 친구를 만나 카페를 두 군데나 옮겨 다니며 이야기를 나누고, 그다음 날엔 천안으로 내려가서 친구를 잠깐 만나고 또 그다음 날엔 남산을 올라가서 비를 흠뻑 맞으며 내려오기도 했다.


토요일에는 그토록 해보고 싶었던 남산 공원에서 피크닉을 했다. 무알코올 샴페인과 비건 음식과 과일을 먹으며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요 근래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을 만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내가 이번 주말에 태국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한 해의 반 이상을 인도나 그 외 지역에서 요가 여행 인솔을 하고 쉬는 시간에는 요가 수련을 하고 겨울에는 작은 카페에서 커피와 빵을 만드는 시간을 보냈는데, 다시 올해부터 비슷하게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7월의 치앙마이 요가 여행, 그리고 8월, 9월의 인도 리시케시 요가 여행의 인솔을 위해 짐을 꾸리고 몇 개월을 밖에서 보낼 계획을 하고 있어서 친구들을 만나고 있다.

그리고 일요일인 오늘 마지막 빵 주문을 받고 열심히 빵을 구웠다. 오랜만에 구운 벽돌 식빵과 풀리시 바게트, 올리브 허브 브래드 그리고 포카치아.


이제 이번 주는 필요 없는 물건을 정리하고 알라딘에 중고 서적을 팔고, 머리를 자르고, 필요한 옷가지를 사고, 여행 가방을 꾸릴 계획이다.


그리고 금요일에 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탄다.

이번 한 주는 천천히 흘러가기를, 그래서 내가 준비를 잘하고 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를 바라본다.


망고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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