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벌, 빛을 쫓아가다
밀양은 빽빽할 밀(密)에 볕양(陽)의 한자를 쓰는 도시입니다. 말 그대로 표현하면 햇볕이 가득한 도시라는 뜻입니다. 밀양에 처음으로 머무르는 방문을 한 것은 '밀양'이라는 영화가 상영될 무렵이었습니다. 영화를 본 것은 그 보다 뒤의 일이었지만 신문과 방송에서 들은 평론으로 마치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밀양이 햇볕이 많은 도시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마도 천황산의 억새밭을 한나절 동안 돌아다니면서 인 것 같습니다. 큰 나무들이 들어와 있지 않은 넓게 펼쳐진 억새밭을 걸으며, 수많은 억새잎 위로 떨어지는 햇살이 초록 윤슬이 되어 반짝거리는 것이 이곳은 햇빛이 많은 곳이다 싶은 생각이 절로 들게 하였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밀양의 어원이 햇볕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밀양은 '미리벌', '밀벌'로 불렸는데(*1) '미리'는 은하수가 빛나는 땅이라는 뜻의 '미리내벌'이나 용의 땅이라는 뜻의 '미르벌'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밀'은 물기, 물을 말하는 것으로 '밀벌'이라고 하면 물이 많은 벌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물벌'의 도시 한복판에는 밀양강이 흐르며, 목이 마른땅을 적셔주고 있습니다.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밀양강의 물줄기들이 이 지역을 적셔 역사와 문화의 발달을 이끌어 내었습니다. 어쨌든 나에게 밀양은 햇빛 가득한 도시입니다. 이곳에서 빛을 따라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의 초입까지 살펴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살펴보는 대상은 숲입니다. 아니 제대로 말하자면 숲을 즐기는 나의 모습을 적어 보자는 의도입니다.
밀양은 주변에 높고 낮은 산들이 빽빽하다 할 정도로 둘러싸고 있는 곳입니다. 밀양의 땅을 적시는 밀양강과 낙동강을 따라가며 넓고 기름진 농토가 많이 있지만 시 전체로 보면 산림의 비중이 높은 도시입니다. 1,000m가 넘는 운문산, 가지산, 그리고 천황산과 재약산이 시내의 동북쪽에 있으며, 정각산(860.1m), 향로산(979.1m), 실혜산(828.3m), 북암산(807m), 백마산(776m), 구만산(784.2m) 같은 만만치 않은 산들이 사방에 있습니다. 이 많은 산들을 다 돌아본다면 좋겠지만 그것은 좀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 중에서 밀양을 대표하는 천황산과 재약산의 숲들을 찾아갈 예정입니다. 등산을 즐기는 건 아니어서 등산 코스를 소개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냥 발길이 닿은 숲에서 우연히 만난 작은 관계들을 소개하는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숲을 소개할 때도 있을 것이고 숲에서 만난 거미 한 마리 같은 숲생태계의 구성원을 소개하기도 할 것입니다.
자, 그럼 이제부터 밀양의 숲에서 만난 사소한 이야기들을 시작해 보려 합니다.
(*1) 밀양 이름에 깃든 의미, 경남매일신문. 2023.2.20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