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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꽃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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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냉이 Nov 11. 2024

애기똥풀에 붙임

애기똥풀에 붙임


어제  마신  술로  염증은 손목 아래까지 파고들었다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늘어  가는 세상에서

가끔 경계를 흔들어 보면 허벅지 안쪽으로 드는  멍

양귀비처럼 툭  불거진 듬성듬성 털이 난  꽃자루를

이슬  내리는  밤새 키워  터뜨리면 노란  꽃잎

아 봄이 아니었구나. 하늘 높은 어느 가을 오후

바람이 분다. 서걱 거리는 억새들 틈에서 

기타 소리를 떠올리며 방랑자를 부른다

길게 늘어지는 햇빛을 쫓아 고개를 든다

생각해 보면 위기가 아닌 때가 없었고

언제나 우리는 꽃을 피웠다. 

바람을 따라 거칠게 흔들리던 몸이 

견디지 못할 것 같을 때쯤이면 바람이 멈췄다

풀들이 참아 내지 못할 바람은 없다  

겨울이 오면 마른 잎을 널어두고 

햇빛 끊긴 동굴에서 겨울잠을 잔다 

잠을 잔다

세상의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일벌처럼 

스스로를 태울 필요는 없다

얼음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를 듣다

등짝의 각질이 부드러워질 때쯤

다시 뿌리를 내리면 된다

한동안 술을 마시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뜯어진 잎에서 나오는 노란 눈물로 너의 상처를 씻어주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보는 이 없는 산자락에서

다가오는 겨울을 조금씩 받아들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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