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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램 donggram Nov 07. 2023

버려야 할 것들

어떤 날은 설움의 파도가 너무 세다.

내가 이렇게 된 거 다 엄마 때문이잖아.


매사 뭐가 그리 삐딱하냐는 엄마의 말에 버럭 했다. 새아빠의 큰 딸이 임신을 했단다. 축하 전화 한 통 하라는 그녀의 부탁을 거절했다. 우리는 평소 안부를 주고받을 정도의 사이가 아니다. 간판만 가족인 관계일 뿐인데. 박수가 고프면 직접 소식을 전하면 될 일 아닌가? 게다가 나에겐 그리 기쁜 소식도 아니고 말이다. 마음에 없는 말이라면 목구멍에 걸려 도무지 뱉을 줄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억지웃음 섞인 '축하한다' 한 마디조차 쉽지 않다. “왜 그런 연락을 해줘야 하냐”는 말은 온갖 비난으로 돌아와 내 귀에 도로 꽂혔다. 예상치 못한 반응은 아니었다. 엄마는 누군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내 속까지 제 것이기를 바라왔으니까. 최근 그녀에 대한 글을 쓰며 지난날을 곱씹은 탓인가? 오늘은 도저히 물러설 수 없다. 부들거리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 설움을 토해냈다. 삐딱하다고? 날 이렇게 만든 게 누군데.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그 엄마에 그 딸. 우리는 볼륨을 높이는 법만 알았지 낮추는 법을 모른다. 지기 싫어 데시벨을 높여보지만 더 이상의 언쟁이 무의미하다는 걸 나는 너무 잘 안다. 눈을 질끈 감고 손가락이 부서져라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억울함이 파도처럼 밀려와 두 뺨을 적신다. 신랑에게 전화를 걸었다. 꾸역꾸역 입을 떼어 보지만 가쁜 호흡 탓에 몇 마디도 채 할 수가 없다. 그는 내 목소리만으로 상황을 파악한 듯했다. 우리에게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나지막한 음성으로 토닥이는 신랑의 따뜻함 덕에 겨우 안정을 되찾은 듯했다. 심호흡 한 번 하고 다시 일에 집중해야지. 컴퓨터 앞에 앉았다. 갑자기 시야가 흐려진다. 나는 괜찮지 않았다. 그렇게 침대에 가만히 누워 또다시, 자루를 품에 안고 또다시. 어떤 날은 설움의 파도가 너무 거세 그 속에 잠기고 만다.


그저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인데 버려야 할 것이 너무 많다. 나를 낳은 부모, 형제, 그리고 천륜을 등졌다는 이유로 짊어져야 하는 죄책감까지. 이런 내가 이해받는 날은 아마 오지 않을 거다. 우리 모두 너무 버거우므로. 각자의 매일이, 그리고 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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