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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로시 Jun 26. 2023

죽지 않고 살기를 잘했다

동방신기 덕질이 삶에 미치는 영향 


그걸 나는 숨이라고 한다


"슬픔을 오래 유지하려는 물거품, 그걸 너는 숨이라고 해"(정현우 詩, '마들렌' 중)

삶을 오래 유지하려는 덕질, 그걸 나는 숨이라고 한다.

17살,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았고 검정고시를 했으며 첫 식이장애가 발병한 시기이다. 삶에 모든 것이 엉망으로 되어 캄캄한 방 안에 갇혀 나오지 않게 되었을 때. 세상을 등지고,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철저하게 혼자가 되었을 때. 그때 나는 내가 그 삶에서 유지하기 위한 호흡법을 취했다. 그것은 바로 아이돌 덕질이었다. 당시 동방신기를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좋아하게 되었고, 동방신기 덕질을 하며 그나마 어두운 방에 빛이 스며들었고, 숨을 쉴 틈이 생겼고, 쉴 숨이 되었다. 동방신기를 좋아하면서 살아야 할 이유를 붙잡곤 했다.

동방신기의 노래, 영상을 수없이 반복해서 보며 살아 있는 순간은 살아 있는 것이 너무 아프지 않았다. 어둡고 매캐하기만 한 내 삶에 유일하게 반짝반짝 빛이 났으며, 부서져도 내 삶에 유일하게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동방신기의 노래를 들으며 추락하는 순간도 함께라서 아프지 않다며, 나락으로 떨어져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까지도 함께 했다. 

물론 죽지 않고 살았지만, 죽으려고 했던 순간까지도 동방신기 중 최애의 멤버 티셔츠를 입고 내 삶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삶과 죽음의 맞닿은 결계에 동방신기가 있었다. 동방신기의 멤버 유노윤호 선착순 선입금 굿즈에 응모하던 날, 그리고 응모가 떨어지던 날 나는 그때 죽고 싶었다. 매일 밤 내일이 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도 끈질기게 살았던 삶에 미련을 두지 않게 되었고, 응모에서 떨어진 것을 기회로 내가 삶을 오래 유지하려 했던, 숨을 멈추려 했다.


덕질은 나를 살렸다

30대가 되어도 동방신기를 좋아하고, 유노윤호를 좋아한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비웃음 거리가 되기도 하고, 조롱거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유노윤호가 남편보다 더 나를 살린다. 그렇기 때문에 유노윤호가 힘든 순간에도, 위기의 순간에도 그 시간이 잘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끝까지 응원하고, 지지했다. 그것을 남편이 조롱하며 내 애정을 비난할 때도, 나는 내게서 향하는 애정이 숭고하기만 했다. 숭고한 사랑의 결정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17살 때부터 좋아했던, 그리고 10년 넘은 지금 순간까지 동방신기를 좋아한 건 어쩌면 살아 있게 된 순간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는 것도 같다. 여전히 동방신기를 좋아하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고, 살아 있기 때문에 아직도 좋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살아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덕질'은 의미 없는 삶에 의미가 되기도 하고, 활력이 없는 삶에 유일한 활력이기도 하다. 내 삶에 애정을 가질 수 있던 건, 오로지 동방신기와 함께 했던 순간순간이다. 그때마다 살아 있음을 느꼈고, 전율했고, 그들이 노래하는 순간에 내가 있도록 삶을 유지하게 했다.

이전에 동방신기 5인 체제일 때 (당시는 생각지도 못했지만) 마지막 5인 콘서트가 된 도쿄돔 콘서트에 너무나도 가고 싶어서 부모님을 졸랐지만, 나는 당시 10대였기 때문에 허락되지 않았고, 결국 도쿄돔에 갈 수 없었다. 그리고 이후 5인 동방신기는 해체되었다. 그게 마지막일 줄 알았다면 갔었어야 했다고 울고 불고 난리를 치며, 평생의 한으로 남은 도쿄돔 콘서트. 

그리고 이번에 2023년 도쿄돔 콘서트 투어 패키지가 오픈이 되었을 때, 이제야 비로소 그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와 달리 2인체제라 하여도, 최애 유노윤호를 봐야겠다며.  빚을 내서라도 '빛'을 봐야 했기 때문에 빚도 거뜬히 지고서는 동방신기 2023년 투어 '클래식' 도쿄돔 콘서트에 참석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나에겐 모든 것이 유리하고, 이로웠다. 동방신기 덕분에 도쿄 여행도 즐길 수 있었고, 지겨웠던 삶에 일탈이 되어주었다. 사는 것이 무료했던 삶에 유일하게 가슴을 뛰게 하는 순간이었다. 방방 뛰며 소리 지르며 따라 부르는 노래까지도. 우습게도 동방신기 콘서트는 미련 없던(;) 나의 삶에 애착을 갖게 했다.


살기를 잘했다

23년 6월 24일 도쿄돔 콘서트. 일본어로 된 좌석표 때문에 좌석을 찾기까지 헤매고 또 헤매며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좋은 좌석에 앉게 되어서, 생애 처음으로 동방신기를 그렇게나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중간 무대하고도 바로 가까이에 있는 좌석자리여서 '내가 오빠들을 보려고 죽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까지 하게 했다. 그리고 라이브를 들어가며, 윤호오빠를 가까이에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보면서, 내가 동방신기를 그리고 유노윤호를 좋아했던 모든 순간을 사랑하게 되었다. 덕질의 애정은, 살아 있는 순간에 가장 빛을 발하는구나 싶었다. 나는 유노윤호를 좋아하지만, 유노윤호를 좋아하는 나에 대한 애정까지로도 확장이 되어, 살아 있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살기를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어 울컥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동방신기 라이브를 듣는데, 정말 수없이 울뻔했고, 눈물이 차올랐다. 살아 있음에 대한 환희였을까. 살아서 동방신기를 이렇게 가까이서 볼 날이 온 것에 대한 기쁨이었을까. 동방신기로 인해 살 수 있었던 순간들이 끊임없이 재생이 되고, 노래와 함께 한 편의 뮤직비디오처럼 펼쳐졌다. 살고자 붙잡았던 숨,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 함께 했던 숨, 그리고 살기 위해 다시 뛰는 숨. 모든 숨이 동방신기였고, 유노윤호였고, 그렇게라도 숨을 쉬어서 살아올 수 있었다. 

꿈에 그리던 무대,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던 소원까지도 모두 다 이루고 나니, 살아 있기를 잘했다고 나 자신을 칭찬해 줄 수 있었다. 살아 있어야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이니까. 앞으로 더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까지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빠를 보기 위해 빚을 냈기 때문에 일도 열심히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노동에 대한 의미부여까지. 빚을 냈지만, 가장 빛이 나는 순간을 함께 했고 가슴에 절절하게 스며들었던 라이브를 직접 느끼고, 눈앞에서 살아 있는(;) 오빠를 직접 보았기 때문에 여한이 없다. 아무래도 살기를 잘한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살아야겠다. 노동을 해야 할 이유가 되고, 사표를 쓰지 못하는 이유가 되고, 계속해서 일을 해야 할 이유가 된다. 그렇게 덕질은 늘 나를 살게 했고, 앞으로도 살아가게 할 것이다. 콘서트의 행복한 잔상을 잊고 싶지 않아 쓴다. 그리고 두고두고 기억하며 일할 이유, 살 이유를 되새기기 위해 기록한다. 

"죽지 않는 비밀은 울음의 끝으로" (정현우 詩, "피에타" 중) 

나에게 죽지 않는 비밀은, 덕질의 끝으로.

덕질은 나에게 죽지 않는 비밀이고, 벼랑 아래로 떨어져 부서져도, 붙어 있는 숨이고 꿈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라면 추락도 아름다울 것이다. 어떤 끝이 기다릴지라도, 

찬란하게 아프고, 찬란하게 반짝이고, 나를 살게 하기를. 

"그토록 뜨거운 심장을 가져본 적이 있다고 믿기 위해"(정현우 詩 '스콜') 

나는 동방신기를 애정하고, 여전히 덕질을 한다. 내가 가졌던 유일하게 뜨거운 심장이니까.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정현우 詩, '소멸하는 밤)


나를 살게 하는 것, 별빛들이 부서지며 노래하는 찬란한 꿈에 함께하는 것.

그래, 한 번도 울지 않았던 것처럼, 삶이 한 번도 아프지 않았던 것처럼 그렇게 살자.

너무 많은 숨은, 버거우니까. 이렇게 조금씩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 가자.

살아 있는 것이 아름답고 찬란하도록.


"살아남은 자들은 더 잘 살기 위해, 더 안전해지기 위해 그들의 죽음을 해석한다."
- 무브 투 헤븐



너의 노래를 들을 수 있고, 무대를 느낄 수 있어서 꿈만 같던 순간이

죽지 않으며 계속 살아야 했던 삶에 의미를 덧댄다.

더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내 삶에 대한 믿음, 애정, 모든 것이 덕질로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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