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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희로운 Jul 22. 2022

변화와 바꾼다는 것에 대하여

갤럭시 유저 10년 차의 아이폰 적응기

얼마전에 갤럭시에서 아이폰으로 넘어왔다. Z3를 구매한 지 8개월 만이었다. 갤럭시를 오래 써온 탓에 친구들도 다 내가 아이폰으로 바꾼다니 의아한 반응이었다.  핸드폰을 끼고 사는 나에게 z플립의 하루 3번 완충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버즈 프로에 갤 워치까지 갖고 있는 내가 아이폰이라니. 물론 나한테도 도전이었지만 주변 사람도 무슨 바람이 불었냐며 변했다고 신기해했다.


'난 진짜 핸드폰을 오래 쓰지를 못해, 2년을 채 못 넘겨. 뽑기 운이 안 좋은가 봐.'

볼멘소리를 늘어놓으면서 일일이 안드로이드의 자료들을 IOS로 넘기려니 한참 시간이 들었다. 왜 이렇게 어려워, 알아서 좀 되면 얼마나 좋아!


혼자 끙끙대며 적응할 때마다 문득 그 사람이 있었으면 적응하는데 더 편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맥북에 에어팟을 쓰고, 애플 워치를 갖고 있는 그는 나와 달리 쉽게 적응했겠지. 그의 옆에서 나는 그의 팁을 조금 얻어올 수도 있었을 거다.


매일 사용하는 기계 하나 다루지 못하는 나에게 자괴감이 들고 이깟게 뭐라고 고민하면서도 조금 짜증이 났다. 왜 이럴 때 그의 생각이 난 건지. 나 혼자 가능할까, 내가 그처럼 능숙한 아이폰 유저가 될 수 있을까?


아. 사람이 변할 수 있을까.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말 많이 들어봤지만 동시에 변하지 않으니 고쳐 쓸 수 없다는 말 또한 많이 들어봤다. 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이런 말은 정설로서 대를 거쳐 내려오는 말이기도 했다. 세상도 바뀌는데 왜 사람 사이는 100년 전 영화에 나오는 양상과 똑같은지.


세상을 바꿔온 것은 팔 할이 IT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산화되고 발전되고 있다. 바야흐로 소프트웨어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기술이 쏟아지고, 발 빠른 발전에 발맞추기 위해 그렇게도 내 전자기기들도 셀 수 없이 업데이트를 해댔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드웨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모든 기기는 사양이 존재하고 각자 그 사양에 맞춰 살아간다. 더 높은 사양을 원하는 경우, 냉정하게 기기를 교체하는 것이 빠르다.     


사람이 단순히 어찌 물건 따위에 비교하겠냐만은, 단순화하는 것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는 데에 일부 도움을 준다. 단순히 비교하기엔 슬프지만 바뀌어 가는 세상처럼 사람 또한 비슷한 듯하다. 사람의 감정은, 상황은, 변하지만 그 사람의 성격이나 성향이라던지 본성이라던지 버릇 같은 건 안 변한다는 것이다. 감정은 가끔 버그가 일어나기도 하고 상황 또한 꼬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개발자 몇몇의 아주아주 힘든 밤샘 야근의 결과물이라는 업데이트처럼, 시간을 들여 궁리하면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하기도 했다.


하지만 버릇을 바꾸는 것은 '나'라는 몸체에 새 하드웨어를 갈아 끼우는 것과 같다. 해외 영상에 의존한 채 구형 아이폰을 뜯어 더 사양이 좋은 배터리로 교체하고 기기 몇을 납땜 연결하여 수제 노트북을 만드는 작업과 같은 것이다. 실패할 가능성도 많고 노력 또한 많이 드는 중노동이다. 또한 분해에 대한 모든 책임은 스스로의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이유기도 했다.


이쯤 되니 혼란해지기 시작했다. 세상이 사람을 따라가는 걸까 사람이 세상을 따라가는 걸까. 사람이 만든 세상이 사람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기분이 들었다. 어차피 못 바꿔, 라는.


사람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나도 10년 전과 다른데, 사람이 한결같기도 어렵다던데 어쩌면 그게 좋은 방향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순간들. 어차피 바뀔 사람이라면 지금보다 나은 모습이 될 거라면 그게 내 옆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순간들. 내가 기다리면 언젠가 몇 년이 걸리더라도 그게 나의 시절이 되는 순간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들이 있었다.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하는 마음으로 아무리 많은 버그가 생겨도 이 프로그램을 버리는 일은 없어야지, 내 손으로 만든 지금을 놓지 말아야지, 했던 순간들.     


그러나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이는 나의 피조물이 아님을. 내가 개발에 참여했다고 하여 몇몇 수정을 함께 하였다고 하여 내가 그 제조사의, 그 프로그램의 오너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맘대로 설정을 바꿨다가 만들었다가 할 수는 없다.


또한 갑자기 DSLR 카메라가 핸드폰이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핸드폰이 최신 카메라 사양급이나 되는 것을 갖고 싶으면 내가 그럴 능력이 먼저 돼야 했다. 무거운 것을 감당하고 가성비의 최신 사양 폰을 사던가 백만 원이 훌쩍 넘는 돈을 지불하여 가볍고 좋은 것을 가져와야 하는 것이었다. 괜히 멀쩡히 잘 쓰던 갤럭시를 뜯어다가 너덜너덜하게 분해해놓고 왜 DSLR 같은 아이폰이 되지 않냐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것이 아니었다.      


내 옆에선 안 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좀 더 능력 있는 개발자였으면 가능했을 수도 있겠지만 내 앞에선 아이폰도 한낱 피쳐폰과 다름이 없는데 무슨 능력으로 뭘 바꾸려 했던 건지. 나한테 오면 딱 그 정도로만 발휘되는 것이라면, 내가 그 정도만 쓰게 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이상은 포기할 줄도 알았어야 했다. 혹여 쓰는 방법을 배우는 것보다 여전히 분해하는 것이 빠르다면 답은 없다. 쓸 줄 모르는 사람에게 구원은 없다.


“그래서 사람이 바뀐다는 거야, 안 바뀐다는 거야?”라고 묻는다면 애매하게 그 무엇도 아니라고밖에 대답할 수밖에 없겠다. 모든 분야에 뛰어난 모델도 배터리가 약하다면 쓸 수 없는 사람이 있을 거고 단순히 전화만 잘 통하면 된다는 사람은 뭐든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거다. 뭐든 단지 합이 중요하다. 핸드폰을 기본 기능으로 쓰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어플이든 다 깔고 보는 사람도 있겠지. 어플을 까는 것조차 귀찮아서 기본 기능에 다 포함되어있었으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바꾼다는 관점이 어플을 다운하는 정도라면 어느 정도 기능은 바꿀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바꾼다기보단 추가한다는 말에 가깝겠다. 그러나 바라는 기능과 사양이 달라서 단순히 어플을 다운하는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면 꼭 억지로 과부하가 걸리도록 수정하고 씨름할 필요는 없다. 만약 정말 뽑기 운이 안 좋아서 이상하게 나만 잘 작동이 안 되는 것 같다고 하여도 마찬가지다. 제조사에게 물어도 기기 교체는커녕 명확한 대답을 얻지 못할 확률이 높다. 그러한 증상은 매번 증명하기가 어렵다. 증명 가능한 오류라면 당연히 더 이상 함께할 이유가 없다.


뭐든 지금 함께 있기로 한 것은 나의 선택이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기기는, 상대는 죄가 없다.


문득 정신이 들었다.

함께하는 새로운 부분에 적응해야지, 안 되는 것을 탓하고만 있으면 좌절만 계속될 뿐이었다. 쓰는 방법을 배우지 않으면 또다시 하나를 잃을 뿐이었다.


그가 아닌 나에게서 이유를 찾은 지금,

저 멀리 희미하게 구원이 손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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