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산 카페 소풍농월
아이들이 방학을 했다.
여름방학이 길어 (화장실공사, 석면공사등으로 인해) 다른 학교보다 방학이 늦었다.
신기하게 카페 가는 걸 좋아해서 종종 데리고 가는데 이번에는 좀 멀리 가보기로 했다.
(돈은 세배로 깨진다. 커피만 마시는 나에 비해 아이들은 뭔가 사이드를 더 먹는...)
이번에 간 곳은 문산에 있는 <소풍농월>이라는 곳이다.
이름이 너무 예뻐 기억하고 있었던 곳인데 도착하니 한 번 온 적이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이 날은 도장쿠폰을 받았다. 또 올 것 같아서.
매립등이 대세다.
가정집이든, 카페든 이런 매립등을 많이 보게 된다. 이곳의 등도 매립등이 여러 개 보였다.
천장에 달린 등을 찍는 이유. 어느 곳인지 알 수 없지만 이곳을 다녀갔다는 인증 같으므로. (뻘소리임.)
별관이 있어서 건너가 보았다.
따뜻하고 아늑했다.
아이들은 본관으로 가자고 해 그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아마도 가지고 다시 오려니 힘들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ㅋㅋ
큰 창과 내부 벽에 뚫린 창들이 있어 좋았다.
벽을 뚫는다는 생각은 안 해봤는데 이렇게 인테리어를 하는 것도 괜찮을 듯.
어서어서 돈을 모아 리모델링을 해보자.
이곳은 베이커리 카페인데 빵이 꽤 맛있다. 마늘빵이 제일 맛났다.
요즘 카페인을 줄일 목적으로 디카페인 카페라테와 생우유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아이스티가 없다는 이유로 넝쿨이는 음료를 거부하고 물을 마셨다.
계속 읽고 싶었던 책.
한강 작가의 [흰]은 작가의 작품들 중 쉽게 읽히는 작품이다.
읽는 내내 '시적 산문'이라는 게 이런 걸 일컫는구나 하고 감탄했다.
이 책의 내용은 그리 많지 않다. 두꺼워 보이나 시처럼 짧은 글이고 하루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먹먹한 에피소드가 있지만 가슴을 아리게 하는 건 없어서 마음 편히 읽을 수 있다.
책을 구입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이 책을 미루고 미루고 있었다.
어떻게 읽을까 고민하고 있던 찰나 '독파'라는 챌린지를 운영하고 있는 문학동네 출판사의 SNS 게시물을 보게 되었고 그렇게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며 미션이 올라오면 그에 맞는 답변을 쓴다.
하나만 소개하자면 이런 것이다.
'흰'이라는 제목은 어떤 느낌인가요?라는 질문과 함께 독자의 생각을 적어보라는 미션이다.
나는 이 미션에
새하얗게 변해버린 백발이 생각난다. 햇빛을 받으면 은빛으로 빛나고 저녁 무렵엔 회색빛으로 보이는 할머니의 백발.
이라고 썼다.
내 얼굴 테두리를 감싸고 있는 머리칼의 색깔이 흰색으로 변하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느 순간 2주에 한 번씩 염색을 하고 있다.
탈모는 예정된 수순. ㅠㅠ
차라리 빨리 다 하얀 머리로 바뀌면 염색을 안 해도 되지 않을까 라는 철없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필사를 했다.
쓰고 보니 책 한 권을 다 베껴써야 할 것 같았다.
모든 문장이 좋았다.
어둠 속에서 어떤 사물들은 희어 보인다.
어렴풋한 빛이 어둠 속으로 새어 들어올 때, 그리 희지 않던 것들까지도 창백하게 빛을 발한다. p30
흰색은 검은색에 대비하면 훨씬 잘 보인다.
어둠 속에서 어떤 것을 볼 때, 온 세상이 새까만 그곳에 뭔가 자리하고 있다면 그것은 '희게' 보인다.
주위의 어둠이 익숙해질 때쯤이면 그 '흰' 것들이 '희지' 않게 보이기도 한다.
'흰'하면 눈이 떠오른다.
겨울이 되면 기다려지는 이유가 눈이 내려서다. 움직이지도 못하게 내린다면 힘들겠지만 어느 정도 소복하게 쌓인 눈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작가는 이에 눈송이에 대한 글을 실었다.
눈송이가 성글게 흩날린다.
가로등의 불빛이 닿지 않는 검은 허공에.
말없는 검은 나뭇가지들 위에.
고개를 수그리고 걷는 행인들의 머리에. p55
'검은' 뭔가에 올라가 있는 '흰' 뭔가가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글이다.
배냇저고리가 수의가 되어버린 그 시간을 오롯이 견딜 수 있을까?
담담히 언니 이야기를 이어가는 작가의 마음이 글귀에서 비치는 것 같아서 아팠다.
두고두고 읽어도 가슴에 남을 책.
언젠가 이 책 전체를 필사할 것 같다.
- 설연휴가 지나고 '읽게 될 것' 마지막 호가 발행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