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이아트 Mar 02. 2024

미스치프, 소비사회를 돌아보다

3줄 요약

현재 대림미술관에서는 아티스트 그룹 ‘미스치프(MSCHF)’의 개인전 《MSCHF: NOTHING IS SACRED》가 열리고 있다. 

미스치프의 작업은 표면적으로는 상업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자본주의 소비사회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 많다. 

미스치프는 자신들이 비판하려고 했던 소비주의의 중심에 스스로를 놓아둠으로써 논란에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우리에게 성역은 없다. 판매할 수 없는 것도 없다.



현재 대림미술관에서는 아티스트 그룹 ‘미스치프(MSCHF)’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미술관은 갤러리와 달리 작품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기에, “판매할 수 없는 것은 없다”라고 말하는 이들의 전시를 ‘미술관’에서 여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 물음표가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곧 고개가 끄덕여졌다. 미술관에서는 전시된 작품을 판매하지는 않으며 그저 사회 현상을 재치 있게 비꼬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미스치프 누구?


미스치프는 이번에 대림미술관에서 《MSCHF: NOTHING IS SACRED》 (2023. 11. 10. ~ 2024. 3. 31.)라는 전시를 통해 소개되기 이전까지는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그룹이다. 실제로 활동 기간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2019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하여 가브리엘 웨일리, 케빈 와이즈너, 루카스 벤텔, 스티븐 테트로가 설립했다. 예술가들의 그룹이지만 하나의 기업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미스치프는 스스로를 무엇이라고 정의 내리지 않고 ‘장난(mischief)’이라는 이름에서처럼 유쾌하지만 도발적인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들의 작업은 표면적으로는 상업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사회 현상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 많다. 예술, 패션, 기술 및 사회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경계를 무너뜨리는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 익숙한 일상의 제품에 자신들만의 아이디어를 접목해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사회적 현상을 다루는 것이다. 



의료비 청구서 회화 


미스치프의 작품 중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미국 의료 시스템의 허점을 꼬집은 ‘의료비 청구서 회화(Medical Bill Art)’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의료보험이 상당히 비싼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러다보니 한 번 아프면 병원비가 ‘빚’이 되어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힘든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MSCHF, <Medical Bill Art>, 2020. (출처: 대림미술관 제공)


미스치프는 잡지에 광고를 실어 프로젝트의 참여자를 모았다. 약 100명이 연락을 했고, 참여자의 의료 부채가 개인 부주의가 아닌 부상이나 사고로 인한 것인지 확인했다. 그런 뒤 무작위로 3명을 선택했고, 6ft(약 180cm)의 캔버스에 그들의 진료비 영수증을 유화로 그렸다. 


이 그림은 뉴욕 소재의 갤러리에 7만3360달러(한화 약 1억 원)에 판매되었다. 수익금은 수만 달러의 의료비로 고통을 겪던 영수증 주인들의 빚을 탕감하는 데 사용되었고, 개인의 빚을 청산하는 것을 넘어 미국 의료시스템에 대한 수많은 논평을 만들어냈다. 미스치프의 이 작품은 현대 사회의 불합리한 구조에 저항하고자 한 것으로, 미국 의료 부채의 시스템적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버킨스탁


미스치프의 작품 중에서도 유독 아이디어가 좋다고 생각했던 작품은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Hermes)의 대표적인 가방인 버킨백(Birkin Bag)을 ‘잘라서’ 만든 슬리퍼이다. 신발 브랜드 버켄스탁(Birkenstock) 디자인의 샌들로 만들어서 ‘버킨스탁(Birkinstock)’이라는 이름을 붙인 작품이다. 

MSCHF, <Birkinstock>,  2021. (출처: 대림미술관 제공)


비싼 가방의 대명사인 버킨백을 자른다는 것도 충격적인데, 가방 가죽으로 만든 슬리퍼를 더 비싼 가격에 판매한 것은 더욱 놀랍다. 사용된 가죽의 종류와 신발 사이즈에 따라 가격은 달랐는데, 최소 3만4000달러(한화 약 3700만 원)에서 최대 7만 6000달러(한화 약 8462만원)에 달하는 가격에 판매가 완료되었다. 


이미 최상급의 재료로 만들어진 가장 럭셔리한 명품이 다시금 원자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으로 읽히는데, 이는 새로운 변화를 더해 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줌과 동시에 소비주의를 비판하는 의미로 다가온다. 



초미니 핸드백 


미스치프는 계속해서 현대의 소비주의와 관련한 작업들을 선보인다. 소금 한 톨보다 작은 루이비통 가방이 상상되는가. 

MSCHF, <Microscopic Handbag>, 2023. (출처: 대림미술관 제공)


현미경으로 봐야 겨우 보이는 초미니 루이비통 가방이다. 400만 원대 루이비통 온더고 토트백 디자인을 형광 초록색의 초미니 가방으로 만들었다. 가방의 크기 단위는 마이크로 미터로, 전시장에서는 현미경으로 감상하게끔 설치되어 있다. 이 작품 또한 8400만 원에 낙찰됐다고 하는데, 가방의 본래 기능을 무시한 채 ‘개념’만을 판매하는 현 세태를 비판하는 의도를 담은 작품이다.



빅 레드 부츠 


미스치프 하면 ‘빅 레드 부츠’를 빼놓을 수 없다. 만화 속 캐릭터의 부츠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그 모양 그대로 ‘실제 부츠’를 만들었다. 전 세계 셀럽들을 중심으로 ‘아톰 부츠’로 불리며 열풍을 일으켰는데, 실제로는 ‘아톰’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기보다는 미국 TV 만화 시리즈 '도라의 모험'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 말하는 원숭이가 신고 다니는 신발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한다. 누가 이런 걸 신을까 하지만 이 부츠를 신고 모습을 드러낸 인플루언서들이 셀 수 없이 많다. 

MSCHF, <Big Red Boots>, 2023. (출처: 대림미술관 제공)


대림미술관에서 이 부츠를 구매할 수는 없지만, 온라인에서는 ‘웃돈’을 얹어야 살 수 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끈 작업이다. 미스치프가 이러한 한정판 제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희소성 있는 것들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현대인들의 소비 심리를 꼬집기 위해서가 아닐까 한다. 우리는 점점 실제 필요에 의해 무언가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무언가를 구매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경고장 그랑프리


이쯤 되면 ‘상표권’ 문제에 부딪힐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지. 미스치프는 <경고장 그랑프리>라는 작품에서 코카콜라, 디즈니, 아마존, 테슬라, 써브웨이, 마이크로소프트, 월마트, 스타벅스 등 8개 대기업의 상표권을 의도적으로 침해한다.

MSCHF, <C&D Grand Prix>, 2022. (출처: 대림미술관 제공)


미스치프는 지난해 이들 기업의 로고를 이용한 옷을 만들어 판매하면서 이들 중 가장 먼저 상표 침해를 중단하라는 경고장(C&D)을 보낸 업체를 우승자로 선정하고, 우승자 기업의 로고가 찍힌 옷을 구입한 사람들에게 우승자 모자를 추가로 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우승자’로 많은 이들이 ‘디즈니’를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써브웨이’가 우승을 차지했다고 한다. 전시장에는 써브웨이에서 보낸 경고장이 동시에 걸려 있다. 



예수 신발과 사탄 신발 


전시된 100여 점의 작품 중 가장 도발적인 작품으로는 아무래도 <예수 신발>과 <사탄 신발>을 꼽아야 할 것 같다. ‘예수’와 콜라보레이션을 했다는 도발적인 문구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MSCHF, <Jesus Shoes>, 2019. (출처: 대림미술관 제공)


나이키 에어맥스 97을 커스텀하여 제작한 <예수 신발>에는 요르단강에서 가져온 ‘성수’가 들어 있다. 반면 래퍼인 릴 나스 엑스(Lil Nas X)와 협업해 만든 <사탄 신발>에는 사람의 피 한 방울이 들어가 있다. 미스치프가 이 작품으로 꼬집고자 했던 것은 상업계의 무분별한 콜라보레이션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브랜드를 섞는 콜라보레이션을 비판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나이키와 협의 없이 출시해 법정 분쟁에 휘말려 화제의 중심이 되었고, 비록 전량 회수 조치되었으나, 이 역시 마찬가지로 대중들에게 미스치프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신성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NOTHING IS SACRED)》라는 전시 제목처럼, 미스치프의 작업 에는 ‘성역’이 없다. ‘예수’와의 콜라보레이션 작품만 봐도 그렇다. 이처럼 미스치프는 이제까지 당연시 해온 사회적 관습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한편으로 미스치프의 행보에는 항상 물음표가 따라붙기도 한다. 기성 권력을 조롱하면서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미스치프가 한정판으로 판매한 상품들은 고가에 팔렸고, 재판매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미스치프는 자신들이 비판하려고 했던 소비의 중심에 스스로를 놓아둠으로써 논란에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본 글은 '프럼에이'에 발행되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붓을 들고 마주한 회화의 세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