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는 매년 ‘타이틀 매치’ 전시가 열리며, 올해 10년째를 맞는 이번 기획의 주제는 ‘한국의 팝 아트’이다.
미술관은 한국의 팝 아트를 대표하는 작가로 이동기(1967-)를 선정하고, 대중매체 이미지 실험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강상우(1977-)를 상대편으로 배치했다.
두 작가는 한국적 팝 아트의 앞면과 뒷면을 다루면서 우리로 하여금 소비사회와 대중매체 이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고찰하게 만든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는 매년 ‘타이틀 매치’ 전시가 열린다. ‘타이틀 매치(Title match)’는 본래 프로복싱에서 각급 선수권을 걸고 하는 경기를 뜻하는데, 서울시립미술관은 여기에 착안해 매년 두 작가를 초대하여 경쟁과 대화, 협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기획을 진행하고 있다. 북서울미술관의 ‘타이틀 매치’는 벌써 10주년을 맞이했다. 예전에는 원로작가와 신진작가를 한 자리에 초대해 세대 간 상생을 모색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면 지금은 세대와 장르를 넘어 개성이 뚜렷한 두 작가의 협업으로 꾸며진다.
올해 타이틀 매치의 주제는 ‘한국의 팝 아트’이다. 팝 아트는 대중매체의 이미지를 차용한 예술을 뜻한다.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미국의 팝 아트 작가들이 잘 알려져 있지만, 한국적 팝 또한 진지한 실험과 위트 있는 태도로 사회적 현상을 탐구해왔다.
미술관은 한국의 팝 아트를 대표하는 작가로 이동기(1967-)를 선정하고, 대중매체 이미지 실험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강상우(1977-)를 상대편으로 배치했다. 이동기 작가가 워낙에 독보적인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지만, 강상우 작가도 이에 못지않게 자신만의 실험 요소들을 담아내고 있어 기획 의도에서처럼 보는 재미가 쏠쏠한 타이틀 매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동기와 강상우의 공통점은 사회에 대한 관심을 지녔다는 것이다. 팝 아트라는 장르는 대중매체를 다루는 예술이고, 대중매체는 사회를 비추는 창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사회적 무의식을 담아내게 된다. 특히 이들은 사회의 모습을 언캐니(uncanny)한 형상으로 표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언캐니’는 ‘엄청난, 무시무시해서 기분 나쁜, 괴기한, 신비스러운’이라는 뜻으로, 세심하고 기분 좋다는 뜻의 ‘캐니(canny)’와 반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언캐니는 익숙하지 않은 것을 접했을 때 느끼는 불안, 음울, 실망 등의 감정을 뜻한다. 오랫동안 친숙하게 느껴왔던 것들에 대해서도 언제든지 언캐니함을 느낄 수 있다. 두 작가가 사회적 현상을 어떻게 언캐니한 느낌으로 표현했는지 살펴보는 것이 감상의 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사회적 관심을 언캐니한 형상으로 표현한 것이 공통점이라면, 두 작가의 뚜렷한 차이점도 존재한다. 먼저 이동기의 작업은 마치 텔레토비 꽃동산처럼, ‘매끈한’ 형태로 등장한다. 이동기는 캔버스 표면 뒤에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며, 단번에 작품의 의미나 작가의 의도, 존재를 포착할 수 없도록 작업한다.
반면 강상우는 딩동댕 유치원의 거친 세트나 신데렐라의 호박 마차처럼 ‘투박한’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강상우는 화려한 앞면과는 다른 세트 뒷면을 자꾸 노출시키고, 작가 머릿속 이미지 기억 창고에서 생생했던 이미지를 건져 올리자 눈앞에서 풍화되어버렸음을 보여준다.
전시의 시작은 이동기의 <가상정신병>이라는 작품으로 시작된다. 이 작품은 작가를 대표하는 캐릭터인 ‘아토마우스(Atomaus)’가 무한히 반복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토마우스는 일본의 아톰(Atom)과 미국의 미키마우스(Mickey Mouse)를 섞어 만든 작가의 고유한 캐릭터이다. 아토마우스는 당시 작가가 어렸을 적부터 대중매체를 통해 봐왔던 이미지에서부터 비롯된 것으로, 작가는 아토마우스가 자신의 삶 속에서 자연스레 태어난 이미지라 말한다.
마치 세포 분열하듯 무한 복제되는 아토마우스는 작가가 ‘반복’과 ‘증식’이라는 개념을 염두에 두고 만든 이미지다. 마치 한 곡의 노래 안에 반복되는 가사, 즉 훅(hook)과 같은 것으로 설명된다. 디지털 매체 시대의 조형적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이미지로 읽힌다. 아토마우스가 반복적으로 그려진 <가상정신병>은 작가가 영국의 애시드 재즈 그룹 자미로콰이(Jamiroquai)의 1996년 발표곡 <버추얼 인새니티(Virtual Insanity)>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떠올린 작품이다. 이 뮤직비디오에는 사방이 막힌 방의 바닥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모습이 나온다. 보컬 제이 케이(Jay Kay)는 이 위에서 걷거나 뛰면서 ‘신기술에 대한 가상의 광기(Virtual Insanity)’를 노래한다. 이동기 작가의 작품 중 가장 공간감이 느껴지는 작품으로, 이번 전시에서 벽과 바닥으로 확장하여 선보인다.
전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서브웨이 코믹 스트립(지하철 만화띠)>를 재현한 작품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미디어_시티 서울 2000》의 <지하철 프로젝트>에서 처음 선보인 것으로, 당시 젊은 현대미술가의 작품을 공적 장소인 지하철역에 30미터에 가까운 벽화로 제작한 것은 거의 최초의 시도였다. 벽화가 완성된 후 2년 정도 유지되었는데, 2002년 7월 26일 벽화에 누군가 검정 스프레이로 “다시 그려요!”라고 써넣었다. 이후 훼손된 그림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민원이 이어졌고, 공청회나 여론조사 없이 벽화는 2002년 11월 중순 벽화 윗부분인 꽃그림들만 남겨놓고 철거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재현된 작품을 살펴볼 수 있다.
이동기의 <희생>이라는 작품도 주목할 만하다. <희생>은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의 초상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메이플소프는 유명인의 초상화, 자화상, 누드, 정물화 등을 흑백 사진으로 표현한 미국의 대표적인 사진가이다.
이동기 작가가 어떤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제작했는지는 작품 설명에 나와 있지 않으나, 대략 이런 자화상의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한다. 이동기 작가에게 메이플소프의 사진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모습과 비슷해 종교적 도상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작가는 종교적인 세계와 대비되는 비루하고 저급한 현실 세계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주사기를 결합한다. 주사기는 에이즈에 걸려 세상을 떠난 메이플소프의 삶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고, 현대 문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마약 문화를 은유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현대미술가 브루스 나우만(Bruce Nauman)을 참조한 작품도 있다. 나우만은 조각, 사진, 영화, 비디오, 퍼포먼스, 설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온 작가이다. <샘>은 마치 분수대에서 볼 수 있는 누드 조각처럼 옷을 벗고 입으로 물을 뿜고 있는 사진 작품인 브루스 나우만의 <샘으로서 자화상(Self-portrait as a Fountain)>(1966)을 차용하고, 상단에 추상화를 얹은 작품이다.
그런데 나우만의 <샘으로서 자화상>은 마르셀 뒤샹의 <샘(Fountain)>(1917)을 차용하여 만든 것이었다. 이동기 작가에 따르면 나우만의 샘은 뒤샹의 샘을 작가 자신의 신체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예술에 대한 뒤샹의 논의를 진전시켰다고 본다. 이동기 작가는 여기서 구체적인 인간의 신체를 다시 아토마우스라는 가상의 인물로 대체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회화라는 장르를 새롭게 해석한다.
이처럼 이동기 작가는 아토마우스에 미술사적 의미를 결합시켜 자신만의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현대미술은 선배 예술가들의 업적을 재해석하는 것이 주요 창작 동기인 만큼, 자신만의 방법으로 메이플소프와 나우만을 오마주한 작품들을 주목해 볼만하다.
다음으로 타이틀 매치의 상대편인 강상우 작가의 작품은 ‘B-side’라는 단어로 요약해볼 수 있을 것 같다. ‘B-side’는 싱글 앨범에 들어있는 곡 중 정규 앨범의 수록곡을 제외한 나머지 곡, 혹은 앨범 제작 과정에서 정규 앨범에 실리지 못한 곡을 가리키는 말로, 레코드의 앞뒷면에서 파생된 용어이다.
강상우 작가의 작품을 이렇게 표현해본 이유는 그가 뒤편의 이야기들을 포착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가령 유튜브를 통해 옛 광고 이미지들을 접하고, 그중 뭔가 괴상한 이미지들을 포착하는 식이다. <자기는 손오공1>에서 작가는 1974년 흑백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된 과자 광고 ‘손오공, 자야’를 소재로 하여 광고 이미지가 은유하는 사회적 욕망을 표현했다.
이 광고에서 손오공은 과자의 하루 판매 250만 개를 강조하기 위해 엄청난 숫자에 놀란 표정의 상투적인 표현으로 빠르게 눈알을 돌린다. 작품 앞을 지나가면 손오공의 눈알이 움직이는데, 이런 표현은 작가에게 현대사회의 병적인 속도감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손오공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분신술 능력처럼 끊임없이 자가 복제되는 현대사회의 시각물을 상상한 작품이다.
팝 아트는 애니메이션이나 광고 이미지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강상우의 작품에서도 이러한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몽실통통> 시리즈는 조립식 로봇 장난감을 형상화한 것인데, <몽실통통 1>은 박스 디자인을, <몽실통통 2>는 완성된 조립 로봇의 모습을 띠고 있다. ‘몽실통통’은 유년기 작가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집 근처 문방구 이름이다.
작가는 박스 디자인에 표시된 멋진 모습과 비교해 실제 장난감 로봇은 초라하고 경직되어 보였다고 회고한다. 작가는 박스 위의 로봇 이미지는 화려하게 연출하고, 조립 로봇의 결과물은 작가 자신의 키와 일치하는 사이즈로 제작하여 자신의 조형적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가상과 실재가 서로를 비추며 공존하는 상황을 마주해보실 수 있다.
시각적으로 눈길을 끈 작품은 <홍익볼>이었다. 이 작품은 작가가 홍익대학교 회화과에 재학 중이었던 1997년에 해태제과의 홈런볼 포장지 디자인을 평면 회화로 해석했던 작품을 입체화의 방법으로 복각한 작품이다.
작품 겉면의 인물들에 주목해보자. 좌측 상단부에는 당시 교수님이었던 고(故) 이두식 작가가 배트를 들고 오른쪽 하단부의 작가에게 “옷 잘 입도록”이라는 말씀을 내리고 있다. 대학생이었던 작가가 지금은 실제 작가가 되어 제도권 미술교육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물론 ‘홈런볼’이 300원이었던 시대를 공유하고 때의 정서를 환기하기도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강상우 작가의 설치 작품들도 흥미롭지만, 작가는 회화 전공자인 만큼 그의 드로잉과 회화 작품을 눈여겨보시면 좋을 것 같다. <새로 나온 액션 페인팅>은 1980년대 치약 광고와 핸드폰의 지문 뭍은 스크린을 중첩시킨 작품이다. 본래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은 미국의 비평가 해럴드 로젠버그가 명명한 전후 미국의 대표적인 표현양식으로, 잭슨 폴록의 흩뿌리기 기법을 떠올리시면 쉽다.
작가는 이러한 액션 페인팅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재해석하여 <새로 나온 액션 페인팅>이라는 작업을 선보인다. 작품에는 두 가지 이미지가 중첩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유튜브에 고해상도로 박제되어 상영되는 광고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바라보는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과 강상우의 ‘새로 나온’ 액션 페인팅을 중첩하여 바라보는 것도 작품 감상의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강상우 작가의 작품들이 다양하게 전시돼 있어서 그의 작품세계에 한 발 더 다가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한 코너에서는 작가가 10여 년 동안 다뤄왔던 전시들의 주요 부산물들을 살펴볼 수 있는데, <Leftover>라는 이름이 붙은 이 코너에서 우리는 그저 ‘남은 것’들이 아니라 작가의 본질과 내면을 보여주는 에너지를 마주할 수 있다.
강상우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천양의 시인의 <뒤편>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우리는 뒤편을 주목하지 않지만 뒤편은 항상 현상 저 너머에 존재하며 ‘진실’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성당의 종소리 끝없이 울려퍼진다
저 소리 뒤편에는
무수한 기도문이 박혀 있을 것이다
백화점 마네킹 앞모습이 화려하다
저 모습 뒤편에는
무수한 시침이 꽂혀 있을 것이다
뒤편이 없다면 생의 곡선도 없을 것이다
이동기, 강상우 작가는 한국적 팝 아트의 앞면과 뒷면을 다룬다. 두 작가의 서로 다른 시선을 통해 우리는 소비사회와 대중매체 이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고찰하게 된다. 특히 한국적 팝 아트란 무엇인지 탐구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한 번쯤 들러보아도 좋을 전시이다.
본 글은 '프럼에이'에 발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