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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미친 듯이 그린 화가, 루이스 웨인

by 와이아트



“루이스 웨인은 고양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는 고양이 스타일을, 고양이 사회를, 고양이 세계 전체를 창조했다.”
-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작가



고양이 그림을 그린 여러 화가가 있지만, 그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아마도 루이스 웨인(Louis Wain, 1860-1939)이 아닐까 한다. 웨인은 평생에 걸쳐 고양이를 그린 영국의 화가인데, 오늘은 그의 고양이 그림들을 소개해보려 한다.


caroling.png 루이스 웨인, <캐롤 부르는 고양이들>


루이스 웨인이 그린 고양이들은 인간을 흉내 낸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웨인의 고양이들은 옷을 차려입고, 식탁에서 맛있는 음식을 기다리며, 야외에서 운동을 하고, 친구 고양이와 수다를 즐긴다. 고양이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기보다는 ‘사람처럼’ 그린 것이다.


전통적으로 영국은 동물이 주인공이 되어 인간세상을 풍자하는 문화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루이스 캐럴이나, 『동물농장』의 조지 오웰이 그 예이다. 루이스 웨인 또한 이들의 계보 사이에 위치한다.


louis_wain_with_pet_cat.jpg 루이스 웨인과 고양이


19세기 중반 영국에서는 저널이 활발히 발행되고 대중적으로도 많은 인기를 끌었다. 웨인은 이러한 저널에 실리는 삽화를 그린 일러스트레이터(삽화가)였다. 당시에는 일러스트레이션을 예술로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대중의 호응은 매우 좋았다고 한다. 고급미술의 진지함보다는 대중미술의 유쾌함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일러스트는 작품 가격이 비싸지 않아 이미지를 소유하기도 쉬웠기 때문이다.


ISIMG-684141.JPG 루이스 웨인이 그린 ‘피터’


루이스 웨인이 고양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일찍 세상을 떠난 아내 때문이었다. 웨인은 23살 때 여동생들의 가정교사였던 10살 연상의 에밀리 리처드슨(Emily Richardson)과 결혼했는데, 아내가 유방암에 걸렸을 당시 길에서 구조한 고양이 ‘피터’가 아내에게 많은 위안을 주었다고 전해진다. 웨인은 아내를 위해 ‘피터’를 자주 그려주었다.


2006AN0607.jpg 약 200여 마리의 고양이가 등장하는 <새끼고양이들의 크리스마스 파티>


처음에는 고양이 그림이 잘 팔리지 않았으나, ‘피터’를 통해 계속해서 습작한 끝에 <새끼고양이들의 크리스마스 파티>라는 그림을 완성한다. 이 그림은 그가 연재를 하던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에 실리며 곧장 성공을 거두었다. 웨인이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졌고 사방에서 문의가 쏟아졌다”라고 말했을 만큼, 이 그림이 발표된 이후 일감이 떨어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image-asset.jpeg <챔피언 고양이 다섯 마리>


“나에게는 별난 버릇이 하나 있다. 고양이를 그릴 때 나는 언제나 귀부터 그리기 시작한다. 어떤 경우든 그렇게 한다. 만약 다른 식으로 그리면 비율이 확실히 잘못된다. 왜 그러는지는 나도 모른다.”
- 루이스 웨인


하지만 불행하게도 웨인은 경제 감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일감이 넘쳐나고 그림도 나오는 족족 팔렸지만, 인세나 저작권을 협상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의 명성은 최고조에 달했지만, 역설적으로 작품을 파는 데는 극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루이스 웨인은 수줍고도 괴팍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의 세계관 또한 독특했다고 하는데, 실제 일어난 일과 상상한 일 사이의 경계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현재의 의학용어로 분류하면 정신분열증을 앓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다섯 명의 여동생을 돌봐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좋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한창 때는 1년에 600여 점의 고양이 그림을 그렸다니, 정말 대단한 인물인 듯하다.


Cat+wearing+monocle+by+Louis+Wain.jpg 외알 안경을 쓴 웨인의 고양이


웨인 스타일 하면 떠오르는 모습은 ‘외알 안경(monocle)을 쓴 고양이’다. 외알 안경은 서양에서 주로 나타나는 ‘멋쟁이 신사’의 상징으로, 눈언저리의 근육에 상하로 눌러 끼우는 방식으로 착용할 수 있다. 서양인은 동양인에 비해 눈 부분이 움푹 파인 경우가 더 많은데, 서양 고양이가 외알 안경을 끼고 있는 모습을 보니 참 귀엽게 느껴진다.


<고양이들의 크리스마스 댄스>


<고양이들의 크리스마스 댄스>라는 그림에서는 루이스 웨인의 고양이가 집약적으로 나타난다. 외알 안경을 쓴 고양이도 있다. 나비넥타이를 하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서 파티를 즐기는 모습이 돋보인다. 그림이 발전할수록 고양이들이 점점 더 고양이스럽지 않은 모습이다.


3a5a7da07f71e5a20bf4337dfd20d611.jpg <고양이들의 크리스마스>


실제로 웨인의 고양이는 실제 고양이를 사실적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웨인은 고양이에 대한 해부학적 지식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더 다양한 고양이로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이 ‘고양이 화가’를 ‘고양이 전문가’로 생각했던 것 같다. 저널에 고양이 그림을 연재하는 동안 그는 국제고양이클럽(National Cat Club)의 회장직을 맡았고, 고양이와 관련한 다양한 직책이 주어졌다.


300756@2x.jpg <목욕 고양이>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나가던 웨인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정신분열증이 급격하게 악화되면서 더 큰 재정난에 빠지게 된다. 주변으로부터 고립되고, 돈도 떨어지고, 그림도 많이 그리지 못했다. 결국 1924년 그는 정신이상 판정을 받고 스프링필드 병원에 수용된다. 하지만 그가 극빈자 병원에서 발견되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도우려 했고, 당시 총리까지 나서면서 웨인은 좀 더 나은 환경인 왕립 베들렘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 다음에는 하트퍼드셔 지역에 새로 지어진 냅스버리 병원으로 갔다.


IN THE VINEYARD by LOUIS WAIN.png <포토 밭에서>
그리고 밴드는 계속 연주한다.jpg <그리고 밴드는 계속 연주한다>
이리 와 새야, 이리 와.jpg <이리 와 새야, 이리 와>


병원에서 그린 작품들은 그가 예전에 그린 고양이들과는 사뭇 달랐다. 화려한 색채의 고양이가 광기어린 모습을 띠고 있고, 그림 속에는 편집증적 망상을 드러낸 글귀들이 잔뜩 써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봤을 때 그의 그림은 정신분열증이 드러난 것으로 해석된다.


cats-relaxing-in-the-grounds-at-napsbury-louis-wain.jpg <휴식을 취하고 있는 고양이들>


하지만 이때가 웨인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고 전해진다. 돈 문제나 누이를 돌보는 일 등 다른 문제들에 신경 쓸 필요 없이 그림만 그리면 되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광란에 휩싸인 고양이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저는 이때의 그림들도 독특하고 좋은 것 같다. 수채와 크레용, 색연필로 작업한 후기 작업들은 색감이 돋보이고 아이디어가 훨씬 대담한 느낌이 든다.


<당구치기>


정신병동에서 그린 그림 중 스포츠 시리즈가 있다. 그는 스포츠를 사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웨인은 크리켓, 축구, 폴로, 크로게, 볼링, 골프 등을 좋아했고, 특히 테니스와 조정을 즐겼다고 한다. <당구치기>와 <줄다리기> 같은 그림은 정신병동에서 직접 참여한 취미 활동을 그린 것이기도 하다. 웨인은 한때 자신의 집 이름을 권투선수 윌리엄 벤디고 톰슨의 이름을 따 ‘벤디고 오두막’이라고 짓기도 했다고 하니, 스포츠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그에게 스포츠는 승리를 뽐내기 위한 수단은 아니었던 것 같다. 패배하기 직전의 고양이, 부상 입은 고양이, 실패해서 웃긴 고양이들이 그림으로 표현돼 있다.


우린 이걸 버리고 리머릭 대회에 나갈까 생각 중이야.jpg <우린 이걸 버리고 리머릭 대회에 나갈까 생각 중이야>


웨인의 후기 작품 중 ‘벽지 고양이’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패턴이 점점 정교화하는 과정을 정신분열증의 악화로 보는 시각이 많지만, 어머니의 영향이 드러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의 어머니는 재능 있는 직물 디자이너였는데, 어머니와 함께 한 시절을 기억하며 패턴을 쌓아올린 것이다.




웨인의 후기 작품 중 ‘벽지 고양이’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패턴이 점점 정교화하는 과정을 정신분열증의 악화로 보는 시각이 많지만, 어머니의 영향이 드러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의 어머니는 재능 있는 직물 디자이너였는데, 어머니와 함께 한 시절을 기억하며 패턴을 쌓아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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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한 장식이 화려하게 표현된 <완벽한 고양이>라는 작품도 함께 보자. 기존 그림에는 없던 배경 표현이 두드러진다. 웨인은 이 그림에 대해 “이제부터 여기가 고양이들의 궁전이다”라는 설명을 달아놓기도 했다는데, 양손잡이였던 웨인이 양손을 동시에 사용해 대칭적인 배경을 만들어놓은 부분이 눈에 띈다.


<완벽한 고양이>


“<완벽한 고양이>의 배경에는 스페인의 알람브라궁전으로 짐작되는 것이 보인다. 이 장소는 특별히 중요한데, 왜냐하면 이로써 수많은 고양이들에게 집이 생겼기 때문이다.”
- 브라이언 리드(Brian Reade)


loius-wain-opener.jpg




루이스 웨인은 좋은 시설을 갖춘 병원에서 평화롭게 마지막 생애를 보냈다. 파란만장한 삶이었지만 생을 마감하기 전에는 마음껏 그림을 그리며 행복하게 지냈다는 이야기에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 그는 “말 못하는 모든 동물들을 사랑한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고, 실제로도 집에 다양한 동물들을 키웠다고 한다. 동물들에게 인간의 감정을 부여해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 그림에서 자연스레 느껴진다.


누군가는 그의 그림을 정신병리학적인 표현으로 보지만, 그의 그림을 감상하는 이들에게 기쁨과 활력을 준다는 것만으로도 작품 자체가 지닌 미학적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독특한 색감과 함께 감각적인 아름다움이 나타나는 후기 작품을 통해 그가 어떻게 진실한 예술에 가까워지는지 함께 느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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