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색과 짙은 갈색이 화면 위를 가득 채우고 있다. 단순해 보이는 이 색면은 시간이 스며든 흔적처럼 번지고, 물감은 마치 아래로 가라앉듯 캔버스를 타고 흐른다. 윤형근의 회화를 처음 마주하면 우리는 ‘이것이 무엇을 그린 것인가’보다, ‘이것이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먼저 닿게 된다. 그의 작업은 어떤 대상을 재현하기보다, 물감과 시간, 그리고 존재의 상태를 드러내는 회화이기 때문이다.
윤형근의 작품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의 작품은 검정색에 가까운 짙고 두꺼운 띠로 구성돼 있는데, 윤형근의 작품 해석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색’이다. 청색(Ultra-marine)과 암갈색(Umber)을 섞어 만든 오묘한 검정색인데, 윤형근은 이 색을 ‘청다색(靑茶色)’이라고 불렀다. 영어로는 ‘엠버-블루(Umber-blue)’라고 한다. 지금부터 살펴볼 윤형근의 작품에서 청다색 띠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감상 포인트의 하나로 삼아보자.
요즘 ‘나다움’을 찾아가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내 삶의 기준은 타인이 아닌 ‘나’이며, 진짜의 나를 만나야 자유로워질 수 있기도 하기에,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윤형근 작가는 1928년생으로 2007년 작고하였는데, 윤형근 작가의 작품이 ‘나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요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다.
예술가들의 작품세계를 살피다보면, 자신의 삶을 작품에 그대로 녹여낸 예술가가 있는 반면, 작품과 삶을 분리하는 예술가도 있다. 윤형근 작가는 ‘삶=작품’을 실천한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윤형근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삶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꼭 필요하다.
윤형근은 1928년 충청북도 청원군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선비의 가풍이 있어 사군자나 산수화를 접하며 성장했다고 한다. 소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미술에 재능이 있어 일본으로 유학을 가고자 했지만 유학은 가지 못한다. 미술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상경한 그는 1947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제1회 입학생으로 입학한다.
하지만 이내 곧 6.25. 전쟁이 터지고, 가세가 기울어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리며 생활을 이어나간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 서울대학교로 복학을 하고자 했으나 시위 참여로 제적을 당했던 터라 그마저도 무산된다. 전쟁 직후 학창 시절 시위 전력으로 인해 ‘보도연맹’으로 끌려가 총살 위기 중 간신히 탈출한 적도 있다.
계속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그는 홍익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던 화가 김환기(1913-1974)의 도움으로 홍대로 편입할 수 있었다. 1957년 서른의 나이로 졸업한 그는 스승 김환기의 댁에 드나들던 중 김환기의 장녀 김영숙 여사를 만났고, 1960년 결혼해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이어나간다. 1961년부터 작품 발표를 시작해 1966년 첫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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