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5대 비엔날레 중 하나로 꼽히는 ‘광주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이탈리아어로 ‘2년마다’라는 뜻의 비엔날레(biennale)는 2년에 한 번 열리는 국제미술전을 뜻한다. 아트페어가 갤러리들이 모여 작품을 판매하는 행사라면, 비엔날레는 실험적이면서도 비상업적인 작품이 주로 출품돼 동시대미술의 담론을 논의하는 장이 된다.
전 세계적으로 비엔날레가 처음 등장한 시점은 1990년대다. 이전까지는 예술가와 비평가가 주류를 차지했다면, 이때부터는 큐레이터가 주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한곳에 모아 일정 기간 동안 소개하는 비엔날레의 형식이 필연적으로 큐레이팅을 요하기 때문이다. 비평을 중심으로 미술 작품을 이해하던 시기를 지나 전시를 통해 작품 감상의 지평을 넓히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비엔날레의 예술감독이 누구인지에 따라 전시의 성격도 많이 달라지곤 한다.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영국 테이트모던의 이숙경 큐레이터가 예술감독을 맡았다. 최근 몇 년 간은 외국 출신의 감독이 주로 전시를 총괄했다면 이번에는 한국인 감독이 큐레이팅을 선보인 것이다.
광주비엔날레는 1995년 제1회 전시가 개최된 이후 제14회에 이르기까지 광주비엔날레만의 독자적 정체성을 형성해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2023년 4월 7일부터 7월 9일까지 진행되는 제14회 광주비엔날레에서는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라는 주제로 다양한 예술적 관점을 제시하고 있어 주목된다. 전시 장소로는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을 비롯해 회전축, 국립광주박물관, 무각사, 예술공간 집,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등을 선정해 ‘물’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 제목인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는 도가의 근본 사상을 담은 『도덕경』에서 온 것이다. 물은 자신과 다른 것들을 수용하는 속성을 지니는데, 이처럼 이번 비엔날레는 물의 은유를 통해 전환과 회복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사회적으로 ‘분열’과 ‘차이’가 갈등을 야기하고 있는 가운데 물의 힘을 통해 전하는 포용의 메시지가 시기적절하게 다가온다.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네 개의 소주제로 꾸려졌다. 은은한 광륜, 조상의 목소리, 일시적 주권, 행성의 시간들이 그것이다. 전시에서는 각각의 소주제를 ‘마디(nodes)’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마디는 나무줄기에서처럼 여러 갈래가 모이는 교점이라고 볼 수 있다.
메인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불레베즈웨 시와니(Buhlebezwe Siwani)의 장소 특정적 설치 작품을 마주하게 된다. 장소 특정적 미술은 특정 장소와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계획되고 배치된 미술 작품을 뜻한다. 작품이 놓인 장소 자체가 작품을 구성하는 중요 요소가 되는 것이다. 작가는 죽은 자의 세계와 산 자의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영적 치유자인 ‘상고마(sanggoma)’의 전수자로, 장소 특정적 작업을 통해 그가 전통적인 치유자로서 훈련을 받으며 얻은 개인적인 기억과 경험을 보여준다. 영혼을 치유하고 회복한다는 그의 예술적 주제가 작품에 잘 묻어나기에 첫 시작부터 강렬한 인상을 받게 된다.
“이 영적 기운들은 내 작업의 본질로, 이를 통해 우리 몸과 정신이 어떻게 땅과 물에 결부되어 있으며 이로부터 우리가 어떻게 태어나고 길러지는지를 깨닫고자 한다.” - 불레베즈웨 시와니·예술가
계속해서 2층 전시장에서는 유지원의 <한시적 운명>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벽면에 설치된 이 작품은 견고해보이지만 사실은 판지 상자, 시멘트, 페인트 등의 자재로 이루어진 것이다. 일종의 ‘모듈’이어서 장소의 성격에 따라 쉽게 재조립될 수 있는 모양을 지니고 있다. 작가는 동시대의 지속되는 생산에 대해 의문을 갖고 도시의 개발 과정에서 나타나는 환경 파괴에 주목하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그러면서도 현장에 직접 개입하는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 작품을 통해 건축적 언어를 간접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관람객들의 눈길을 끈 작품으로 엄정순의 <코없는 코끼리>가 있다. 전시장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코없는 코끼리>는 ‘만져도 되는’ 작품 중 하나로,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세상을 인지하는 다양한 방식에 대해 생각해볼 것을 제안한다. 작가는 약 600여 년 전 코끼리가 한반도에 처음 들어온 과정을 추적하면서 이러한 작품을 제작했다. 코끼리는 ‘다르게 보기’를 은유하는 동물이기도 한 만큼, 작가는 코가 사라진 코끼리를 통해 배제된 존재들을 소환하면서 우리에게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두 번째 마디인 ‘조상의 목소리’에서는 전통을 재해석해 탈국가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특히 ‘예향’이라는 광주의 역사적 정체성에 주목한 작품들이 돋보였다. 도시를 지탱한 오랜 예술적 실천과 감수성은 다른 문화권에서도 발견되는 조상의 가르침과 공명하게 마련이다. 본 마디에 소개되는 작가들은 직접 겪은 생생한 경험을 토대로 ‘전통’이나 ‘토속’이라는 이름으로 경시돼온 문화적 교훈에 집중하면서 이를 미래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지역 공동체에 기반을 두며 조상의 목소리를 전하는 작품으로 에밀리 카메 킁와레예의 <무제>를 예로 들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이 속한 선주민 공동체인 ‘안마티에레’에서 높은 지위에 있던 인물이었다. 70대가 되어서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안마티에레 여성들의 의식인 ‘아웰레’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 소개되었다. ‘아웰레’는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여성의 가슴과 어깨에 재, 흙, 숯으로 모양을 그리는 문양을 뜻한다. 몸에 물감을 발라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던 당시 선주민들의 실천을 서정적이고 표현적인 방식으로 담아냈다.
다음으로 차이쟈웨이는 문화적 신념, 영성, 무상함을 둘러싼 논의를 다루는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이다. 그는 특히 인간과 자연의 관계, 그리고 삶과 죽음의 순환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지속해오고 있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그의 작품 <나선형 향 만트라 – 반야심경>은 타이완 남부의 타이난 지역에서 주문 제작한 나선형 향으로 만들어졌다. 공중에 매달린 이 조형물은 가는 나무줄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향을 피우는 순간 작품이 재로 변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불교 경전인 『반야심경』의 구절들이 공중에 매달린 향의 나선에 각인되어 있으며, 불교의 공(空) 사상을 담아낸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가 중 한 명인 이건용의 작품도 살펴볼 수 있다. 이건용은 인간 신체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하는 작가로, 공간과 시간, 행위하는 신체에 대한 복합적인 사유를 보여주는 작업을 주로 한다. 가령 이건용의 초기 작품 중 <건빵 먹기>는 의자에 앉아 책상을 놓인 건빵을 먹는 행위를 반복하는 퍼포먼스이다. 처음에는 자유롭게 건빵을 집어먹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팔목, 팔꿈치, 어깨, 겨드랑이에 부목을 대고 붕대를 감은 채 건빵을 먹는다. 작가가 이러한 퍼포먼스를 한 이유는 신체의 제약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신체적 굴레를 넘어 다양한 사회적 압력에 저항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건빵을 손으로 집어 먹는 다분히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 세계를 탐구하고자 한 것이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1976년에 시작한 <바디스케이프 76-3>을 관객 참여형 작업으로 선보인다. 참여자는 벽 옆에 서서 크레용을 쥔 손을 벽면 위에 올린 후, 손을 몸 바깥 방향으로 올렸다가 곡선을 그리며 자유롭게 떨어트리면 된다. 그 다음 반대쪽 손을 이용하여 같은 시작점에서 같은 행위를 한 번 더 반복하면 드로잉이 완성되는 식이다. 작가가 신체를 활용해 작품을 만든 이유를 알게 되면 참여형 작품에도 보다 즐겁게 개입할 수 있다.
최근 몇 년 간 전 세계 비엔날레가 다루는 공통적인 주제로 ‘탈식민주의’를 꼽을 수 있다. 탈식민주의는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문화적 유산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로,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1978)이 출간되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한국도 일제강점기를 거쳤기 때문에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과 담론적 실천이 있었고, 특히 90년대 들어 탈식민주의에 대한 사상적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식민지의 경험은 한 민족의 넋에 드리운 그림자다. 결코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다.”
- 복거일, 『비명을 찾아서』 中
여기서 비엔날레가 ‘탈식민주의’를 다루는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엔날레는 탈식민주의 이론가인 가야트리 스피박이 말하는 ‘서발턴(Subaltern)’ 개념이 잘 드러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서발턴은 하위주체를 뜻하는 말로, 젠더, 인종, 계급 측면에서 배제되고 지워진 타자들을 의미한다. 비엔날레에서는 서발턴의 목소리를 통해 서구의 인식론적 폭력을 드러내는 작품들이 주로 제시된다.
가령 이번 광주비엔날레에 소개된 나이자 칸의 <깊은 정복>은 대영제국이 카라치항에 건설한 댐과 운하를 그리며 식민지의 역사를 조명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사진과 드로잉은 카라치항의 확장과 그에 따른 해안선의 변화, 해양 시설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등을 표현한 것이다. 칸의 설치 작품은 물이라는 매체가 제국주의 역사에 등장하는 방식을 그리며 권력 구조와 식민주의 역사를 추적한다.
과달루페 마라비야의 작품 또한 탈식민주의적 관점에서 비판적인 목소리를 담아낸다. 1980년도에 살바도르 내전을 겪은 작가는 고작 8살의 나이로 보호자도 서류도 없이 미국 국경에 오게 된다. 이러한 경험을 기반으로 그는 식민지 이전의 중앙아메리카의 역사를 중심으로 하여 ‘이주’의 문제를 추적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트라우마에 관한 공동체의 서사를 인내와 인류애의 상징으로 발전시키며, 이민자에 대한 구조적 폭력이 어떻게 몸에 물리적 상흔을 남기는지를 탐구한다. 작가가 ‘치유 기계’라 부르는 〈질병 투척기〉라는 제목의 거대한 조각들은 치료 효과가 있는 진동음을 생성하면서 회복의 상징이 된다.
최근 ‘행성적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봐야 한다는 논의에 힘이 실리고 있다. 네 번째 마디에서는 생태와 환경 정의에 대한 ‘행성적 비전’을 제시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행성적 관점은 국가와 지역의 경계에서 벗어나 모든 생명이 공생하는 지구 공동체의 관점에서 현재 세계를 조망하려는 시도로 해석해볼 수 있다. 《물결 위 우리》라는 제목으로 열린 ‘2022부산비엔날레’에서도 이주와 여성, 도시와 로컬리티를 다루며 생태계 담론을 담아냈고, ‘제3회 제주비엔날레’는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을 주제로 전 지구적 공생을 향한 예술적 실천을 풀어냈다. 이처럼 국내 비엔날레를 포함한 전 세계 비엔날레에서는 개최 지역의 로컬리티와 함께 행성적 관점에서 세계를 조망한다.
네 번째 마디를 구성하고 있는 작품으로는 유마 타루의 <천과 같은 혀>가 있다. 한족 출신 아버지와 아트얄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작가는 자신이 물려받은 문화적 유산에 대해 스스로 무지함을 깨닫고 자신의 뿌리와 마주하기로 결심했다고 전한다. 그는 전통 염색과 방직 기술이 마을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러한 전통을 기록하고 공유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번 비엔날레에 출품한 <천과 같은 혀>는 모시실을 손으로 엮어 짠 네 개의 천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천은 천장에 매달려 부드럽게 물결치는 형태를 띠며, 타루의 모국어를 시각적으로 재현한다.
영상 작품 중에서는 에밀리아 스카눌리터의 <아이쿠알리아>가 눈길을 끈다. 이 작품은 솔리몽에스강의 하얀 우윳빛 물과 네그로강의 탁한 검은 물이 만나는 합류 지점을 분홍돌고래가 헤엄쳐가는 모습이 담겨있다. 실제로 촬영한 아마존의 이미지들에 픽션을 합쳐 현실과 신화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모색하는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우리를 행성적 관점으로 이끌어낸다.
광주비엔날레는 다양한 외부 전시 공간들로 이루어진다. 그중에서도 국립광주박물관은 ‘물’이라는 주제에 대한 창조적인 실험과 에너지가 교차하는 합류점으로 기능한다. 1978년 개관한 국립광주박물관은 호남지역의 문화유산을 수집·보관하는 박물관으로, 역사적, 지역적 특수성에 기반한 다양한 장소 특정적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로비 공간에 마련된 김기라의 <편집증환자의 비밀정원>은 박물관을 대표하는 아시아 도자 유물의 역사를 작품의 주요 맥락으로 삼고 있다. 김기라는 소위 ‘동양적’ 혹은 ‘한국적’이라고 간주되는 사물을 집대성함으로써 서구중심적인 태도를 비판한다. 작가가 무작위적으로 수집한 도자기, 분재, 감시 카메라, 조각상, 가면, 액자, 스피커, 소형 모니터, 조명 등의 물건은 수집과 진열의 방법을 교차시키면서 진품과 가품, 허구와 실재, 역사와 픽션을 넘나든다.
국립광주박물관에 전시된 캔디스 린의 <공장의 리튬 섹스 악마들>은 동시대 글로벌 리튬 배터리 생산에 관한 작가의 장기 연구에서 출발한 것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리튬 배터리 생산 기업이 위치한 곳이자, 도자기를 대량 생산한 역사가 있는 장소다. 작가는 이 두 가지 이야기를 교차하면서 한국을 통해 지리적, 역사적 측면에서 리튬에 관한 연구를 심화시킨다. 이처럼 작가는 변이 가능한 재료를 통해 서구식 산업혁명을 비판하고 현대사회에 대한 저항을 표현한다.
외부 전시공간 중 하나인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은 양림산 기슭에 위치한 지역 예술공간으로, 일본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 근대화 과정에서의 기독교 복음 역사를 담고 있는 장소이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아마존 지역 풍경에 대한 회화적 해석을 담고 있는 작업부터 소설가 한강의 작품 『흰』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장소 특정적 사운드 설치에 이르기까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탐색한 다양한 작업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된 여러 작품 중 특히 비비안 수터의 작품은 비엔날레의 주제를 잘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과테말라를 둘러싼 열대 기후와 자연 화산암, 그리고 마야 문명의 역사를 주제로 작업한다. 특히 일반적인 캔버스가 아닌 천 위에 자유롭게 작업하는 그의 방식은 새로운 시각적 조합을 만들어낸다. 이번에 설치된 작품 또한 전시장의 벽과 천장, 나무 바닥과 같은 전시장 구조를 적극 활용한다. 각각의 그림은 개별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림들이 서로 중첩되는 방식에 따라 무한히 새로운 관련성을 갖게 된다. 이러한 열린 가능성을 통해 우리는 그때마다의 변형을 허용하는 민주성에 대해 다시금 사유할 수 있다.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주목할 만한 또 하나의 작품은 모리 유코의 <I/O>이다. 설치미술가인 모리 유코는 일상의 사물과 외부의 힘이 상호작용하는 기계 부품을 통해 키네틱 조형물을 선보인다. 그는 자성, 중력, 바람, 및 등 통제되지 않는 주변 환경 속 비인간 요소들이 설치 작품과 상호작용하게 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작품은 위에서 아래로 늘어지며 파도를 형상화하는 포물선 모양의 흰 종이로 구성되어 있다. 종이가 바닥에 닿으면 미세한 먼지와 잔해를 쓸어 모으는데, 사실 그 먼지는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작가는 작품을 둘러싼 공기의 흐름, 습도, 바닥의 굴곡 등을 ‘악보’로 표현한다. 이 작품은 소설가 한강의 『흰』(2016)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작가는 광주에서 수집한 재료들을 통해 “기록된 적 없는 수많은 역사들”을 그리면서 광주의 중층적 역사를 담아낸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해온 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세상에서는 물이 가장 유약하지만, 공력이 아무리 굳세고 강한 것이라도 그것을 이겨내지 못한다.”
도덕경 78장에 나오는 말이다.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물’의 은유를 통해 전환과 회복의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지구를 저항, 공존, 연대, 돌봄의 장소로 상상한 작품들을 펼쳐 보인다. 이질성과 모순을 포용하는 물의 속성에 주목함으로써 우리가 직면한 현실에 나름의 방향성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대안을 제시하는 예술적 실천들을 통해 우리는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본 글은 '프럼에이'에 발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