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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아트 Jul 07. 2023

요즘 미술이 어려운 진짜 이유

책 <요즘 미술은 진짜 모르겠더라>의 프롤로그를 소개합니다.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왠지 모를 장벽이 느껴지셨나요? 특히 현대미술 작품을 볼 때 '저 정도는 나도 그리겠다'라고 생각한 적도 있으시죠? 그럼에도 우리 대부분은 작품 앞에 서서 그림을 응시하며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입니다. 작품에서 무언가 느껴지기를 기다려보는 것이죠.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는 ‘느낌’이 중요하다고 알고 있으니까요. 


작가가 작품을 만든 의도가 있겠거니 생각하면서 머릿속으로 비슷한 작품들을 떠올려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작품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 이유는 요즘 미술이 과거의 미술과는 상당히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경미, <고양이우주인 나나아스트로> ⓒLee Kyoungmi


먼저 ‘요즘 미술’이라고 불리는 '현대미술'의 뜻부터 짚어보려 합니다. 현대미술은 말 그대로 현대에 나타난 미술을 뜻합니다. 언제부터 언제까지를 ‘현대’로 규정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르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을 기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현대미술 이전은 ‘근대미술’, 그리고 현대미술을 거쳐 1989년 이후로는 ‘동시대 미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현대미술은 이해하기 난해하다는 반응이 대다수인데,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근대미술까지는 우리가 맨눈으로 보는 시각 체계와 유사한 것을 보여주었거든요. 자연 풍경이나 인물을 캔버스에 최대한 비슷하게 옮겨놓으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감상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니 미술이 특별히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죠. 


하지만 현대미술은 평상시에 우리가 시각적으로 경험하는 것 들을 재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각적으로 익숙한 형상을 파괴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죠. 이는 ‘사진’ 기술의 등장과도 연관 이 있답니다. 그림으로 아무리 똑같이 재현한다 한들 사진 만큼 완벽하게 표현할 수는 없으니까요. 사진이 발명된 이후로는 굳이 세상을 그대로 옮겨놓을 필요가 없어진 것이죠. 


바실리 칸딘스키, <Colour study, Squares with concentric circles>, 1913.


현대미술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추상’도 이러한 맥락에서 등장했습니다. 추상이 어렵게 느껴지는 단어이기는 하지만, 단순하게는 대상에서 어떤 ‘본질’을 뽑아내는 일이라고 이해하면 조금 쉬울 것 같아요. 눈앞에 보이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시각화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들 간의 공통된 특성이나 속성을 추출해 점·선·면, 그리고 색으로 표현하는 것이죠. 이처럼 현대 미술에서는 외형의 세계를 재현하기보다 내면의 것을 드러내고자 하는 시도가 나타납니다.  


현대미술을 기존 미술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려는 시도가 실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작품 앞에서 무엇을 느끼느냐에 감상의 초점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사실 현대미술은 ‘미(美)’가 아닌 ‘추(醜)’를 다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작품 앞에서 미감(美感)을 느끼는 것이 감상의 올바른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그 작품이 나오게 된 맥락을 아는 것이 도움이 되죠. 현대미술이 다루고 있는 주제와 표현 등은 기존의 미술이 집중했던 ‘미’를 넘어 다원주의 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으니까요. 


산드로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1485. (출처: 위키피디아)


19세기까지의 미술은 ‘아름다운 대상의 표현’이라는 단일한 주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대미술은 ‘추’까지 묘사하는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죠. 주제, 소재, 기법, 매체의 사용 등에 있어서 기존의 범주를 벗어납니다. 개념이 확장되고 범위가 넓어지면서 복잡한 양상을 띠는 것이죠. 이제는 어떻게 새로운 관계들을 관찰하고 총체적인 문맥을 파악할 것인지가 더 중요해집니다. 


작품을 평가하는 기준이 달라졌다는 사실만 인지하고 있어도 작품 앞에서의 당혹감을 줄일 수 있습니다. 가령 현대미술에서는 묘사 능력보다 아이디어가 좋은 작품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거나, 뛰어난 퍼포먼스와 뛰어난 회화 작품의 평가 기준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으면 작품 감상에 도움이 됩니다. 이러한 기준들을 소개하고 여러분들이 좋은 작품을 보는 안목을 기를 수 있도록 제안하는 것이 이 책의 역할 중 하나입니다. 




현대미술이 난해하게 느껴지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작가들이 선배 예술가의 작품을 ‘참조’하는 경향이 짙다는 데에 있습니다. 사실 현대미술 자체가 ‘이전 세대에 대한 이의 제기’라 고 볼 수 있어요. 이 작품은 누구의 영향을 받았고, 어떤 작품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재해석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작품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죠. 예술 작품에 대한 감성적 접근 이 절반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이성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이 미술 작품에 대한 장벽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사이먼 후지와라, <Who’s Identity Soup? (Four Options)>, 2022. (출처: 갤러리현대)


그런 이유로 이 책에서는 현대미술을 ‘키워드’를 통해 살펴보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현대미술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파악하면 처음 보는 작품이라도 대략적인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기존처럼 개별 작가를 통해 미술 지식을 습득하는 방식은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에 치중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다 보 면 야사(野史)를 전달하는 데에 그치는 경우가 많죠. 이 책에서는 미술계의 뒷이야기보다는 예술의 본질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미술사를 통째로 서술하는 방식은 택하지 않을 거예요. 그런 책들은 이미 시중에 많이 나와 있기도 하고, 유행이 지나가버린 주제들도 포함되어 있어서 저는 ‘요즘 미술’에 가장 잘 어울리는 키워드 열두 개를 골라보았습니다. 




제가 파악하기에 현대미술은 미술이라는 범주 안에서만 고려할 수는 없어요. 그 이유는 현대미술이 다양한 매체를 수용하면서 재료의 한계를 뛰어넘고 표현 방식을 다양화했기 때문입니다. 현대미술은 회화, 조각 같은 전통적인 장르뿐만 아니라 사진, 영화, 광고, 게임, 애니메이션, 일러스트, TV, 비디오 등 다양한 시각 이미지를 포괄합니다. 가상현실(VR), 인공지능(AI)과 같은 기술들과도 결합하죠. 새로운 문화적·기술적 현상에 대한 이해 없이 현대미술을 순수미술 분야로 한정하는 것은 오류를 범하는 일일 거예요. 


지금까지 나온 분석들은 미술 전공자가 순수미술의 관점에서 서술한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물론 저도 미술 이론을 전공하긴 했지만, 이전에는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일하면서 문화연구와 대중문화 등을 연구한 경험을 통해 기존의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특히 현대미술은 이제 순수미술보다는 시각예술 혹은 시각 커뮤니케이션으로 확장해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 작품이 등장 한 사회문화적 맥락을 고려해 다른 분야와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죠. 


이 책에서는 주로 현대미술의 확장된 개념과 범주를 다루면서 새로운 미술 형태와 기법에 대한 내용을 전달할 예정입니다. 특히 기술 매체의 등장이 어떻게 작품 제작 방식에 변화를 가져왔는지도 다룰 거니까 끝까지 함께해주세요.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될 거예요. 나만의 미술 취향을 갖게 되는 건 덤일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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