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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시일 Aug 24. 2024

소설: 너의 뒤에서 #4

#4 아빠는 히어로

4. 아빠는 히어로



강남의 한 고급 일식당

서울 강남의 한 고급 일식당, 세련된 조명이 반짝이는 가운데 윤호네 가족이 VIP 룸에 앉아 있었다. 오랜만의 외식이었다. 윤호는 부모님과 함께하는 이 시간을 스마트폰과 이어폰으로 차단하고 있었다. 그는 스마트폰 화면 속 세상에 빠져 있었다.


"윤호야, 오랜만에 다 같이 외식하는데 핸드폰은 끄면 어떨까?" 엄마는 아빠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윤호는 눈앞에 놓인 화려한 초밥을 본체만체하며 여전히 스마트폰에만 집중했다. 그 순간, 아빠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다. 아빠는 젓가락을 탁 내려놓으며 윤호의 이름을 불렀다.


"김윤호!"


윤호는 힐끗 아빠를 쳐다봤다. 그리고 무심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뭐 어쩌라고요?"


아빠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옆에 놓인 고급 위스키를 한입에 들이켰다. 윤호는 어릴 때 부모님의 말씀을 잘 따르는 애교 많은 아이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과 대화를 끊고 SNS 세계에서 따로 살고 있었다. 어릴 때 가장 좋아하던 연어 초밥도 이날은 한 점도 손대지 않았다.


식사가 끝난 후, 가족들은 일식당을 나왔다. 윤호는 부모님보다 50미터 뒤에서 천천히 걸었다. 그때 주차장에 도착했을 무렵, 건장한 남성 세 명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이곳은 CCTV도 없고 인적도 드문 주차장이었다. 한 남성이 윤호의 눈빛이 마음에 안 든다며 시비를 걸었다. 윤호는 내심 겁이 났지만 큰 소리로 말했다.


"그냥 가시던 길 가세요!"


“이 싸가지없는 어린놈의 새끼가 말투 보소!” 세 명의 성인 중 한 명이 말했다.


윤호의 아빠는 실랑이가 벌어지는 것을 보고 재빨리 뛰어와 외쳤다.


“당신들 뭐야?”


"당신이 이 싸가지 없는 새끼 아빠야? 교육 좀 똑바로 시켜야지! 이게 뭐야?" 덩치가 가장 큰 남성이 말했다.


"어른이라는 사람들이 3명이나 되는데 중학생 혼내서 뭐합니까? 그냥 가던 길 가세요." 윤호 아빠가 말했다.


그러자 또 다른 남자가 욕설을 내뱉었다.


“씨발, 그 아비에 그 자식이네.”


아빠는 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뭐야! 이 새끼들이 정말 사람으로 대해주니까!"


그때, 장신의 남성이 조롱하듯 대답했다.


“이런 개새끼가 뵈는 게 없나?”


그러더니 가슴속에서 작은 칼을 꺼내 윤호의 아빠를 향해 다가갔다. 윤호는 그 장면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졌다. 아빠는 그의 배를 여러 차례 찔렸다.


윤호의 엄마는 비명을 지르며 남편에게 달려갔다. 윤호의 아빠는 주차장 바닥에 쓰러졌다. 윤호의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그의 머릿속은 아비규환이었다. 자신 때문에 부모님이 다쳤다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윤호는 멍하니 그 장면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세 명의 남자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제야 정신이 든 윤호는 한 남성의 팔을 잡으려 했지만, 작은 체격의 윤호는 주차장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윤... 윤호야... 빨리 응급차를 불러...” 아빠를 지혈하고 있는 엄마가 다급하게 말했다.


그때 주차장에 청년 두 명이 들어왔다. 상황을 본 두 청년은 자신들이 간호사라고 말했다.


“출혈이 너무 심해요. 기다릴 시간이 없어서 빨리 인근 병원으로 옮겨야 할 것 같아요.”


두 청년은 자신의 차로 아빠를 실어 인근 병원으로 달렸다. 윤호는 충격에 빠진 엄마를 부축하고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했다.

윤호는 병원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죄책감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늘 부모님이 곁에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부족함만 탓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왜 나는 부모님에게 그렇게 무심했을까?' 아빠에게 미안했다.


바쁜 일 때문에 자신에게 무관심했던 아빠에게 서운함을 느꼈던 윤호는 이제 자신이 아빠에게 한 행동들이 후회스러웠다.


'내가 없었으면, 아빠가 칼에 찔리지는 않았을 텐데...'


윤호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경솔했는지를. 아빠는 항상 그를 걱정하고 있었고,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던 것이다.


병원에 도착하자, 아빠는 이미 수술실로 들어가 있었다. 윤호는 수술실 앞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동안의 잘못을 되돌릴 수 있기를 바라며, 아빠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4시간 후, 아빠는 병실로 옮겨졌다. 담당 수술 의사로부터 수술은 잘 끝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윤호와 엄마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행복의 눈물을 흘렸다.


VIP 특실 병실로 옮겨진 아빠는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방이 고요해지자, 가운을 입고 들어온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아빠에게 물었다.


“프로그램은 잘 끝났습니까?”


남자는 마스크를 벗으며 답했다.


"네, 김 사장님. 모든 역할이 완벽하게 끝났으며, 윤호 역시 많은 것을 느끼고 있는 듯합니다. 약 한 시간 후에 가족들 면회가 가능하다고 이야기해 놓겠습니다. 그리고 배에 수술한 자국처럼 보이게 레이저 수술해 놨으니, 아프시면 말씀 주세요."


“다... 다행입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럼 한숨 자고 일어나겠습니다.”


“네, 사장님. 이따가 윤호 반응 보시고 마음에 드시면 계약서대로 나머지 잔액 5,000만 원 송금해 주시면 됩니다.”


윤호 아빠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그 순간, 그는 아들이 잘못을 깨닫고 돌아오기를 바랐다. 그리고 이 모든 계획이 잘 마무리되었음을 느꼈다.


약 한 시간 후, 윤호는 병실에 들어와 아빠의 품에 안겼다.


“아빠, 그동안 미안해요. 앞으로는 말 잘 들을게요.”


윤호 아빠는 흐뭇한 미소로 아들을 안아주었다. 윤호 가족은 긴박했던 사건을 이야기하며 서로에 대한 애정을 확인했다. 그들은 아빠가 무사해서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침, 경찰은 세 명의 남성을 체포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윤호와 엄마는 귀가하고, 병실에 혼자 남은 윤호 아빠는 휴대폰으로 영상을 하나 전송 받았다. 영상을 클릭하자 'THE PROGRAM'이라는 글자와 함께 "환경은 사람을 만듭니다."라는 슬로건이 등장했다. 잔잔한 배경음악과 함께, 윤호가 수술실 대기실에서 눈물 흘리며 반성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아빠는 영상을 보며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자가 도착했다.


“김 사장님,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모든 프로그램은 계약자인 김 사장님이 비밀을 누설할 시 가족에게 모든 정보가 공유됩니다. 기밀 유지 꼭 부탁드립니다.”


윤호는 병원을 나서며 의사의 말처럼, 1센티미터만 옆으로 찔렸어도 아빠가 죽을 수 있었을 거란 이야기에 아빠가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다행이라 여겼다.


며칠 후, 윤호 엄마는 우연히 남편의 휴대폰에 도착한 메시지를 보게 되었다. 


"김 사장님, 저희 프로그램은 계약자인 김 사장님이 비밀을 누설할 시 가족에게 모든 정보가 공유됩니다. 기밀 유지 부탁드립니다."


그 순간, 윤호 엄마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녀는 남편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게 무슨 말이야? 프로그램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냐고!"


남편은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진정을 찾고 진실을 털어놓았다.


"여보, 사실은... 윤호가 정신 차리고 공부를 열심히 하게 만들기 위해, 이 모든 것이 연출된 상황이었어."


윤호 엄마는 충격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당신, 제정신이야? 어떻게 우리 아들을 속일 수가 있어! 그리고 나한테도 말 안 하고 이런 일을 벌인 거야?"

윤호 아빠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미안해. 하지만 윤호를 위해서 였어. 윤호가 어떻게 커 갈지 뻔했잖아. 이번 일이 윤호에게 소중한 교훈이 될 거라고 생각해."


엄마는 남편의 말을 듣고도 마음이 복잡했다. 하지만 차마 남편의 결정을 비난할 수만은 없었다. 윤호가 정말로 변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간 윤호 엄마는 남편과 말 한마디 섞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남편의 방법이 옳았는지에 대한 의문과 윤호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안도감이 공존하고 있었다.


윤호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눈치챘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더 착실히 공부하고 집안일도 도우며 부모님께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다. 윤호의 노력은 눈에 띄게 드러났고, 점차 부모님과의 관계도 회복되었다.


어느 날 밤, 윤호는 엄마에게 다가가 물었다.


"엄마, 요즘 무슨 일이 있어? 뭔가 걱정이 많아 보여..."


윤호의 진지한 눈빛을 보며, 엄마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야, 윤호야. 그냥 엄마가 요즘 피곤해서 그래. 넌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서 대견해."


윤호는 엄마의 말을 믿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윤호 엄마는 남편과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윤호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했고, 남편의 계획이 효과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기로 했다.


“여보, 나는 아직도 우리가 윤호에게 이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야. 윤호가 진짜 변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 변화가 오래도록 지속되길 바래.”


윤호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내의 손을 잡았다.


“그래, 나도 알아. 윤호가 변했으니까. 이 비밀은 우리가 가슴 속 깊이 묻어 두자. 윤호를 위해서.”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윤호의 변화를 지켜 보기로 했다. 비록 비밀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의 사랑과 이해는 더욱 깊어졌다.

윤호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성숙해졌다. 그는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학교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친구들 과의 관계도 원만해 졌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윤호가 착실히 공부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와 아빠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비밀을 지키기로 한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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