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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 Aug 09. 2022

눈에 들어오는 것

우울증 환자의 살짝 정신 나간 독일 여행 에세이

몇달을 묵었던 한 숙소는 모든 여행의 출발점이 되었다. 목적지는 다르지만 그 길을 가기위해 출발지 부터 이어지는 한적한 동네길을 걷는 것은 여행을 알리는 시작이 되었다. 같은 길을 여러번 다니면서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계속 변화 했다. 처음 그 길을 걸었을때는 이국적인 건물들의 모양새와 다채로운 빛깔의 벽돌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에 그길을 다시 걸었을 때엔 당장 크리스마스 트리로 써도 될 멋있는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어느 날 그 길을 다시 지날 때, 길가의 집 대문기둥에 올려져 있는 사각형의 토분이 보였다. 이름은 모르지만 동그란 앙증맞은 잎을 덩굴처럼 달고 있는 식물이 심겨져 있었는데 그 모습은 내가 예전에 기르던 트리안이라는 식물을 연상시켰다.


식물이 식재된 황토빛의 토분은 우리나라에서 많이들 소비하는 이태리토분과 독일토분과는 많이 다른 모양이었다. 모서리가 둥은 직사각형 기둥 모양의 토분이었는데 이런 화분은 한국엔 거의 없는 형태였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모양새의 화분을 한국에는 왜 들이지 않는 것일까. 내 짧은 생각으로나마 예측해보건데 아마도 화분을 겹쳐 쌓을 수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반적인 토분은 아래로 갈수록 살짝 좁아지는 형태인데, 때문에 화분을 여러 개로 쌓아서 물류이동시 공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직사각 기둥의 화분은 겹쳐 쌓을 수가 없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발생했을테고 그래서 우리나라에 수입이 안되었을 수도 있다.한국에서 독일토분하면 저렴하면서도 내구성이 좋은 토분으로 인식하고 많이들 사는데 독일에서 직접 본 토분의 느낌은 조금 색다르다. 그것도 한적한 동네에 평범한 독일집 대문을 지키고 있는 화분이라니 왠지 편안하게 앉아 여유롭게 사색을 즐기며 지나가는 사람들과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것 같다.





어떤 날엔 동네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눈에 들어왔다. 어느집 하나 튀는 일이 없고 따뜻한 무채색계열의 톤으로 서로 어울려 하나의 군상 이루고 있다. 햇빛이 비치는 부분은 밝은 노란색과 아이보리색, 황금색이 주를 이루는 듯 했고 그림자 안에 있는 부분들에서는 따뜻한 회색, 옅은 보라색 , 붉은 계열이 느껴졌다. 이처럼 다채로운 색이 녹아들어간 마을이라니. 새삼 새롭다.


나는 될 수 있으면 나의 모든 감각기관을 열어놓고 그것을 의식하려 노력하면서 여행을 했다. 시각으로 들어온 이미지는 내 머릿속에 사진처럼 저장이 되어 있을테지만 내 기억에서 금방 사라질 수 있다. 우리는 기억하고 싶은 것 만 기억을 하고 별 특징이 없다 싶으면 기억속에서 지워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더욱 길을 걷다가 화단에서 풍기는 이끼와 풀의 냄새, 은은하게 퍼져 코를 즐겁게 하는 꽃냄새와 따뜻한 햇살에 데워진 포근한 바람까지도 온전히 느끼려 했다. 그래야 사진첩에서나 대화 속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게된 그곳을 온전히 기억하고 그곳에 다시 간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사실 그곳은 내게 그렇게 크게 의미가 없는 곳이기는 했다. 구시가지에서 본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들에 비해서는 한없이 초라해 보일 수도 있는 풍경이다. 그저 목적지로 가다가 어쩔 수 없이 지나치게되는 곳 정도. 그런데 매번 걸을 때마다 감각을 조금 더 열어두고 다니면 신기하게도 그곳에 의미가 하나 둘 생기고 애정이 생긴다. 나와 기분좋게 여행의 시작을 함께하는 여행친구가 되는 것이다. 그 길에 피어있는 향기로운 꽃냄새 , 비가 오면 올라오는 흙냄새, 오크나무의 기분좋은 내음이 내가 시작하는 여행을 더욱 재밌게 만들어 줄 것 같고 왠지 좋은 일들만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모든 감각을 편안하게 열어두고 여행을 해보면 어떨까. 훨씬 풍성하고 아름다운 느낌이 들지 않을까. 우연히 사진에서 어렸을때 먹었던 과자를 보게 되었을때의 느낌 처럼. 좋은 기억이 있던 특정한 단어를 듣게 되면 그 단어가 나를 그때의 과거로 데려다 놓는 여행을 시켜주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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