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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 Aug 19. 2022

정신 행복의 조건

고통을 대하는 법

정신이 괴롭지 않아야 한다는 데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괴로운 생각이 들지 않았으면 하는 일념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것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나를 점점 놓아버리게 되었다. 생각하지 않으려는 마음 자체가 또 다른 생각이었고 더더욱 지울 수가 없었다. 눌러 없앨수록 삐져나오는 부정적인 생각과 과거의 기억들은 또 다른 고통을 낳고 고통은 또 다른 감정의 씨앗이 되어버린다. 끊을 수 없는 고통의 고리는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세상은 나와는 반대로 흘러가는 듯했고 점점 미련은 사라져 갔다. 그렇게 식물인간처럼 이불속에 누워 지낸 1년이 넘은 시간, 더 이상 살아야겠다는 의지는 남아있지 않았고 나는 죽기로 결심했다.


제일 편한 죽음이 무엇인지를 검색했다. 여러 죽음들을 비교하고 재면서 어떤 죽음이 제일 덜 고통스러울지 고민했다. 문득, 죽고 싶지만 죽는 게 두렵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 순간 내가 경멸스러워졌다. 고통스럽다는 두려움에 죽을 수 조차 없는 나. 이제 죽을힘으로 열심히 살아내야 하는 순서인가? 나는 인간이길 포기한 존재구나. 끝이 안나는 결론에 도달했고 늘 그렇듯 다시 이불을 덮고 잠을 청했다. 회피하는 것은 자신 있었다. 생각은 저절로 기능이 멈추었고 유일한 안식처인 깊은 꿈속에서 유영했다. 그것이 정말로 죽어가는 것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회피하고 외면하다 결국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죽으려는 것과 살려는 선택을 미룬다는게 결국은 죽음과 더 빨리 가까워진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을까.


병원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치료를 통해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대면하며 그 속에서 슬퍼하는 내면 아이를 위로해 주었다. 한 번으로 족하고 끝나지 않았다. 같은 과거에서의 감정이 또 올라오면 몇 번이고 같은 기억과 마주하며 스스로를 위로해 주었다. 그렇게 불안 우울 분노와 같은 감정을 조금씩 걷어내는 작업을 했다. 행복한 기분을 유지시켜주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과거의 기억에 갇혀 지내는 것은 면할 수 있었다.


끊임없는 고통 속에서 방황하며 내가 발견한 것은 행복한 기분이 유지되지는 못해도 적어도 고통의 기억만 줄여줘도 인간은 어느 정도의 행복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병적으로 괴롭히는 기억이 자꾸만 떠올라 일상생활까지 침범해버리고 일상이 기능을 못한다면 행복의 가능성과는 점점 멀어져 버린다. 스스로를 잠식시키는 분노, 슬픔, 강박적 사고, 반추, 관계사고 같은 것은 때로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어 도움을 받아야만 사라질 수 있는 것이 된다. 병원에서는 이런 것들을 중점적으로 치료해준다. 상담치료나 약물 치료를 통해서 말이다. 의외로 상담이나 약물의 효과는 상당하다. 일정기간 치료를 마치고 나면 새로 태어난 사람이 된 기분이 들거나 성격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과장된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그만큼 효과가 좋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일련의 치료행위가 모든 정신적인 고통을 없애준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치료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우리는 기억의 고통을 컨트롤할 수 있을 정도까지만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나쁜 기억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기억 자체가 아예 안 나도록 방어막을 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고통스러운 기억은 고통스러운 기억 자체로 남겨둬야 한다. 약으로 인해 고통이 무뎌지는 순간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 너무 많은 약의 용량은 부작용을 낳는다. 정신이 둔해진다거나 다른 기능에 이상이 생기는 것 등 말이다.  


정신적인 고통이 없다는 것을 다시 말해서 매 순간 행복감에 젖는 일, 슬프고 화나는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 일, 감정의 동요 없이 일정한 상태로 정신을 유지시키는 일 등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순수한 무고통의 상태는 마약 중독자라면 딱 그런 상태이지 않을까. 행복감과 쾌락에 취해서 현실을 외면한 채 자신을 파괴시키는 사람들 말이다. 고통이 없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고통이 있기에 행복이 있을 수 있다.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 서로를 지지하고 있어야만 각자가 성립될 수 있다. 정신적인 고통 뒤에 오는 행복감은 배가 된다. 고통이 있으므로 인해 행복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무엇이 진정 소중한 것인지 생각할 수 있게 되고 그것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러한 고통의 기억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면 그래서 보통으로서의 일상을 편하게 지낼 수 있다면 그것만큼 완벽한 상태가 있을까. 무엇 보다도 보통의 일상을 바라 온 우울증 환자인 나로서는 그것이 그렇게도 부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정신적 고통이 있음에 감사하자. 그리고 그것을 통제하는 힘이 있는 한 우리는 현실을 직시할 수 있고 반성할 수 있으며 희망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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