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이 Aug 06. 2022

정신과 약으로 성격을 디자인할 수 있다고?

1N 년 차 우울증 환자의 정신과 약 복약 후기




정신과 약을 먹으면 마치 나의 성격을 디자인하는 느낌이 든다. 어떤 약을 추가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어떤 약을 추가하면 나른해지면서 세상 예민한 것들이 사라져 버린다. 또 어떤 약은 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도록 활동적인 성격으로 만들어 주기도 한다. 신기하지 않은가. 알약 몇 개로 그 사람의 정체성을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을. 십수 년간을 약을 먹어온 나로서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우울증을 겪고 나서 생긴 무기력함, 게을러짐, 많아진 잠, 예민해진 성격 등은 나를 하루하루 괴롭히는 적이었다.

몇 차례 자살을 생각하고 도저히 안 되겠다는 마음에 찾아간 병원에서는 상담과 함께 SSRI(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계열의 약을 처방해 주었다. 그간 나는 폭식증까지 앓고 있었으므로 꽤 과한 용량의 프로작을 처방받았었는데 감사하게도 그 약은 서서히 나를 바꾸어 주었다.


처음 몇 주간은 약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잠을 많이 잤었다. 밤에 12시간을 넘게 자고도 아침에 일어나서 조금 뭐하고 시간이 지나면 잠이 왔다. 그래서 또 잤다. 대충 계산해보면 하루에 잠을 17시간 이상을 잤던 것 같다. 그간 많이 휴식이 필요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 이후 잠은 서서히 줄었고 가장 눈에 띄게 보인 효과는 폭식증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사춘기 때부터 십 년 동안이나 나를 괴롭히던 구토 증세가 멈추었다. 그리고 짜증이 줄었다. 모든 것을 분노와 짜증으로 결부시키는 나의 못된 재주가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과의 대면에서 손을 떨거나 긴장하는 것이 많이 줄어들었다. 속에 있는 이야기도 꿍해 있지 않고 좋게 좋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이쯤 되면 기적의 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동안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던 나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보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진정으로 나를 위한 시간과 미래를 위한 시간에 에너지를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 조금씩 나를 책임질 수 있는 그런 보통의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예전이라면 조그만 일에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그만두기 일수였을텐데 그런 내가 사라지고 미래를 위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거창할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은 사실이다. 약 한 알에 나의 인생이 바뀌었다. 물론 드라마틱하게 확 바뀐 것은 아니었고 서서히 몇 년에 걸쳐 조금씩 좋아졌다.


 이 약을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주는 마법의 약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사실 이렇게 이야기한다면 사람의 성격을 결정짓는 데에 혹은 바꾸는 데(디자인)에 정신과 약이 쓰일 수 있구나 하면서 정신과 약에 잘못 접근할 우려가  된다. 이런 약들은 하루아침에 나의 몸에 딱 들어맞는 것이 아니다. 짧다면 몇 주 길다면 몇 년 씩이나 약의 용량이나 종류가 나의 몸에 맞는지 나의 지금 기분상태와 맞는지 맞추는 작업이 필요하다. 때문에 이 약을 먹어서 금방 이런 성격이 되고 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다고 보면 된다.

 

나의 경우에는 약을 10년 이상을 먹으면서 나에게 맞는 약을 찾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같은 약이라도 매우 무기력한 상황에서나 예민한 성격에서 다른 작용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선생님과의 상담을 통해 내 변화무쌍한 성격에 맞추는 작업을 꽤 오래 한 탓이다. 그래서 10년이 넘게 지나온 지금 나의 기분 상태에 따라 어떤 약을 더 쓰고 덜 쓰고를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때에 조절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내 성격이 바뀌는 느낌이 드는 것이 순전히 나의 느낌일 수고 있고 충분히 나를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를 잘못 바라보는 것일 수도 있다. 다만 가끔씩 매우 무기력한 날들을 보내다가 도파민과 관련된 약을 먹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활동적인 나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때만큼은 약이라는 게 참 신비로운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런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신과의 치료를 필요로 하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야기이다. 일반인들이 이런 약을 먹고 어떻게 잘못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가령 ADHD 약을 공부 잘하는 약으로 오남용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는 하는데 이약은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의존성이 생길 수 있는 약이다. 의사의 처방과 세심한 주의가 없다면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알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약을 일반인이 의사의 처방 없이 먹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결국 누구나 정신과 약으로 성격을 디자인할 수는 없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신과 약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이 약을 이해하고 스스로의 기분을 잘 이해하고 알아차렸을  경우에 한한다. 디자인이라는 말자체 역시도 거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목에서 어그로를 끈 탓이지만 결국은 환자들의 고통을 호전시켜주는 그래서 일반인들과 같이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약물의 진정한 역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