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하다 보면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다. 육아에 집안일에, 식재료 정리까지 부지런한 개미처럼 한참을 움직이다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깜깜한 밤이다.
햇살이 쨍쨍한 낮에 아기를 부엌에 앉혀놓고 다음날 마실 야채 스무디를 준비한다. 깨끗하게 흐르는 물에 레몬을 씻고, 양배추와 브로콜리를 꺼내 들었다. 헹굼 볼에 브로콜리를 내려놓자 발 근처에서 웃음소리가 들린다. 바운서에 앉아 있던 아기가 브로콜리가 통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꺄르르 웃는다. 서둘러 만들려던 생각은 잠시 접고, 아기와 한참을 브로콜리를 통에 떨어뜨리면서 논다. 텅 빈 집이 아기의 웃음으로 가득 찬다.
부엌 정리를 해놓고, 아기를 거실 놀이 매트로 데려온다. 기저귀가 젖지는 않았는지, 침을 너무 많이 흘리진 않았는지 확인한다. 기저귀를 갈아주는데 채워놓은 기저귀가 모두 소진된 걸 발견한다. 부랴부랴 새 기저귀 한 팩을 뜯어 기저귀 수납함을 채운다. 기저귀 포장 비닐이 바스락거리자 아기는 옆에서 새까만 눈을 반달 모양으로 만들며 킬킬 웃는다. 기저귀 수납함은 뒷전으로 두고, 아기의 웃음소리를 더 듣고 싶은 마음에 보라색 비닐을 손에 쥐고 한참을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만든다.
이외에도 영양제를 챙겨 먹으려다가 영양제 통에서 ‘통통’ 나는 소리에 아기는 꺄르륵 웃고, 저녁을 먹다가 콧물이 난 아빠가 코를 ‘킁’하고 삼키는 소리에 웃는다. 그럴 때면 우리는 영양제가 멋들어진 장단을 만들어내는 악기인 양, 남편의 콧물 삼키는 소리가 재미있는 음악인 양 유치하게 큰 몸짓으로 반복한다. 끊이지 않는 아기의 웃음소리는 우리를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충만하고, 행복한 사람으로 만든다. 세상 그 무엇도 부럽지 않은 존재가 되는 순간이다.
아기는 이 세계의 모든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운다. 아기에게는 브로콜리가 볼에 떨어지는 소리도, 세면대에 물 흐르는 소리도, 아빠의 재채기 소리도 모두 새롭고 즐겁다. 아기의 웃음을 듣다 보면, 아기의 웃음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진실함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싶다. 한 번도 기저귀의 포장 봉투가 내게 즐거움을 줄 거라곤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브로콜리가 볼에 떨어지는 소리가 특별히 다르게 들렸던 적도 없다. 무의식적으로 소거하던 세상의 소리를 아기를 통해 다시 듣는 요즘이다.
태어난 지 반 년도 안 된 아기와 함께 휴지통에 들어가기 전의 기저귀 봉투와 한참 낄낄거리다 보면 수월하게 마음이 가뿐해지고, 즐거워진다. 이 작은 아기 천사는 내게 무엇을 가르쳐 주려고 찾아왔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까맣게 칠해버린 이 세계의 다채로운 소리를 다시 한번 들어보라고 알려주기 위해서 와주었을까.
세상에는 온 가족이 행복해질 만한 것들이 곳곳에 보물처럼 숨어 있다고, 즐거움으로 덧칠해서 엄마 아빠에게 보여주겠다고 우리에게 찾아온 걸까.
아기가 찾아온 뒤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것 같다고 말하는 이들은, 어쩌면 오늘의 나처럼 이전에는 감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아기로 하여금 다시 감각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기와 함께라면 어쩐지 내가 사는 세계를 조금 더 순수하고 진실되게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어쩌면 아기 천사들은 음소거된 세상의 아름다움을 들려주기 위해 어른들을 찾아온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