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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수 Oct 19. 2022

당신의 화양연화(花樣年華)는 언제인가요?

김미영 화기(花記, : 꽃의 기록),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자연, 나의 눈에는 달리 보이고]_오늘 이 시간이 내 생애 가장 멋진 날, 가장 황홀한 시간, 한창때



유년 시절의 어느 늦은 여름날. 나는 나무와 땅에 기쁨으로 입을 맞추었다.
여전히 마음과 땅이 닿았던 순간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살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길과 죽음으로 가고 있는 길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 가고 있다.
_작가노트 中에서



누구나 인생에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살았던 '여름'이 있다.

여름은 봄이 그러했듯 때가 되면 가을에게 자리를 내주고, 다시 가을은 겨울에게, 겨울은 이듬해 봄에게 내주며 자연은 순환한다. 자연에 빗대 인간이 자신의 존재와 생을 반추하는 것은 모든 예술을 관통하는 흔한 은유다. 특히 사시 사계가 명확한 동아시아에서 농경 생활을 통해 자신 그리고 일가족의 생을 의탁하고 운용해야 하는 이들에게 자연은 경이롭지만 두렵기도 한 거대한 존재, 신(神) 그 자체다. 오랜 시간에 걸쳐 동아시아인들이 꽃피운 문화 예술의 세계 그리고 그 바탕을 흐르는 사고는 자연과 참으로 견고한 하나의 몸으로 밀착해있다.


인간의 생애 역시 봄, 여름, 가을, 겨울 자연의 순환 체계처럼 흐른다. 누구나 철없이 순진무구하게 뛰놀아도 전혀 경박스럽지 않은 유아기, 청소년기의 파릇한 봄을 맞이한다. 그리고 뿌리를 깊게 땅 속에 내리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도전하고 반경을 넓히는 청명한 여름을 맞이한다. 봄과 여름의 번영을 누렸으면 성숙하고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떨구며 스스로를 반추하고 수렴하는 가을의 시기도 받아 들여야 한다. 세찬 눈바람이 오기 전 몸집을 줄이고 줄여 단단한 본질을 남기고 봄이 오면 띄울 싹이, 새롭게 뻗을 줄기가 제 나아갈 길을 갈 수 있도록 양분을 머금고 준비해야 하는 것은 겨울을 맞인한 자가 살아야 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가을, 겨울이 올 것을 알면서도 양(陽)에서 음(陰)으로 향하는 인간의 발걸음은 자꾸 활기차고 창창 했던 젊은 날의 여름이 그립다. 나는 지금 어느 계절을 지나고 있나? 이 계절을 보내고 우리는 또 어떤, 다른 계절을 맞이할까?



김미영,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2022, 도자, 38×38×10cm



작가 김미영은 식물을 소재로 화기(花器), 도판 등을 만든다. 식물의 줄기를 화기의 몸체로, 부피를 담음의 공간으로 해석한다. 작가는 식물을 담거나 꽂는 기능을 충족할 공예 용기를 만들지만, 꽃을 꽂지 않을 때도 심미적 아름다움이 있는 오브제를 추구한다.

작가가 식물을 소재로 삼는 것은 평소 자신이 산책을 즐기고 식물을 애정 하는 이유도 있지만, 작가는 몇 해 전부터 식물을 보면 작고한 아버지가 유독 생각난다고 했다. 생전 식물을 잘 키우시고, 예술을 사랑하며, 늘 딸이 예술가임을 자랑스러워하셨던 그녀의 아버지. 그가 생과 사의 고비에서 치열하게 분투하셨던 그 해 여름은 수국이 한창이었다. 작가는 2018년 대학로 이앙 갤러리 개인전 <그녀가 말했다>에서 ‘수국’을 소재로 손수 꽃잎, 잎 파리 한 장, 한 장을 흙으로 빚고 한데 모아 풍성한 꽃 무더기를 상부에 얹어 볼륨 있는 화기를 만든다. 그녀의 화기는 제의와 죽음, 기념과 추억, 기쁨과 심미적 행위가 혼재된 ‘누군가를 위한 헌화’ 혹은 자신의 복잡한 감정과 상황을 차근차근 다잡기 위한 ‘자기 치유’의 의미에 가깝지 않았을까?     



김미영, 매미 나뭇가지, 2022, 도자, 52×9×8cm



2022년 9월, 인덕대학교 아정 미술관의 전시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은 작가의 다섯 번째 개인전이다. 그녀의 전시 부제은 전시 회를 거듭하며 화기(花器)에서, 화기(花記)로, 다시 화기(話記)로 변화했다. 부제 화기((話記)에서 알 수 있듯 이 전시는 작가가 꽃에 빗대어 자신의 생을 반추하는 회고이자 성장 기록이며, 관객과의 말 걸기의 시도다. 전시 제목인 ‘여름’은 식물에게나 인간에게나 일생(生)중 가장 창성하고 화창했을, 빛났던 시절들 즉, 화양연화(花樣年華)를 의미한다. 2018년 이후, 새 작업의 주제로 식물을 매개로 작가의 생애를 반추하며 행복하고 즐거웠던 소소한 기억, 이야기들을 꺼냈다. 거리낌 없이 땅에 입을 맞추고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던 유년 시절부터 대학에 들어와 흙을 처음 만졌을 때 느꼈던 흙의 물컹한 촉감, 그리고 여전히 흙을 만지고 그 안에서 매일 다른 생명력과 즐거움을 느끼는 지금까지 작가는 자신의 생애를 구성하는 감정, 기억, 바람 들을 하나씩 자신의 바깥으로 꺼내어 흙으로 빚었다. 이 전시의 작업들은 욕심과 무모함은 덜고, 작가의 소소한 일상성과 감수성의 층위는 깊고 농밀해졌으며, 무엇보다 매무새 좋은 솜씨를 추구함으로써 전작에 비해 보다 심도 있는 표현을 보여주고 있다.   

전작이 화병 디자인에 수국의 생태적 특징을 가시화하고 유약, 형태 등 기술적 면모를 실험하는 데에 치중했다면, 이번 전시는 작가가 식물의 세계를 바라보는 사실적 묘사보다 자의성을 강조하고 자신이 불러낸 서사, 감정 등을 관객과의 동감을 하려는 교감의 시도가 가장 눈에 띈다. 작가는 전시장 바닥에 순백의 한지로 감싼 사각 패널 바탕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했다. 패널 가운데 색, 크기, 형태 다른 화기들을 올려 두었다. 벽에는 도판, 액자 등을 걸었다. 프레임을 이용한 전시 연출은 마치 작가가 수집한 다채로운 식물성의 세계를 표본으로 보는 듯하다. 결국 이 전시는 공예적 쓰임보다는 작가가 자신의 일생 중 식물들로부터 받은 인상과 교감을 모아놓은 일종의 ‘채집과 나열의 행위’ 임을 짐작할 수 있다.




작가는 패널과 도자기가 바둑판처럼 줄지어 자리한 구역마다 바닥에 짧은 문구들을 써놓았다. 관객이 작품을 왼쪽에 두고 영역을 크게 한 바퀴를 돌면, 작품 라인 바닥에 여러 마디로 잘렸던 짧은 문구들이 비로소 동선 끝에 온전한 문장, 스토리로 완성된다. 나 역시 작가의 권유에 따라, 화기들과 문구를 견주어 보고, 읽으며 걸었다. 그리고 작업실에서 작가가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전시를 앞두고 작업실에 방문해 대화를 나누던 중, 작가는 내게 흥미로운 말을 했다. 아버지의 장례와 2018년 전 시 이후, 자신의 상황, 여건이 크게 달라진 것이 없음에도 작가는 그간 자신의 생각, 감정, 작업의 의미 등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과거에는 꽃과 풀, 나무를 보면 위로, 그리움, 애잔한 기억, 감정이 떠올랐다면, 이제는 같은 것을 보아도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그것을 바라보는 자신의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다고 했다. 도심 속 콘크리트 건축 안에 살고 작업하는 이가 잠시 바깥을 거닐며 계절 변화에 따라 식물과 풍경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것을 보면, 자연스럽게 그를 보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삶의 근원적인 문제들을 사유하게 되고, 흔히 말하는 자연의 내재율도 눈이 아닌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기 마련이다. 누구든 자연 속에 있으면 작은 것 안에도 존재하는 거대한 우주를 발견하고 그와 연결된 자신의 실존을 발견한다. 자연을 바라보고, 냄새 맡고, 만져봄으로써 즐거움과 위안을 얻는다. 그 시간은 자연의 생명력이 어느덧 자신 안에 채워지는 것을, 내가 자연의 일부임을 오롯이 절감하는 시간이다. 수많은 작가들이 지속적으로 식물을 들여다보며 소재로 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가의 눈은 그냥 지나치기 쉬운 작은 생명에 연민과 신비로움을 느끼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이 그녀의 '식물'이다.



김미영, 화기(花記), 2021, 도자, 左) 20×20×33cm 右)18×18×24cm
김미영, 화기(花記), 2022, 도자, 左) 8×18×24cm 右)15×16×23cm


김미영, 화기(花記), 2022, 도자



김미영 작가 역시 집과 작업실 주변 공원을 수시로 산책하고 마음에 든 식물을 묶어 말리고 바라보면서, 자신의 실존, 생의 역사를 불러냈다. 자연으로부터 얻은 경이로움, 충만함, 생명력을 자신의 생애 가장 창창하고 싱그러운 여름들 속에서 꽃을 닮은 화기로, 식물의 묶음이나 도판으로 불러냈다. 그것은 자신에게 가장 친숙하고 오래 동반한 재료, 방법, 언어인 도자예술로 재현한다. 우리가 이 전시에서 보고 있는 것은 ‘화기(花器)이지만, 작가가 작명한 전시 제목이 꽃의 기록, 증 작가 자신이 관찰하고 살고 있는 생(生)의 기록이기도 한 ‘화기(花記)’인 것은 이 때문이다. 이로서 작가의 작업 의도는 기능이 아니요, 현실 식물의 사실적 재현이 아님이 분명해졌다. 보기에 따라서는 현실 어느 장소에 있을 법한 꽃, 작은 나무, 야생 버섯 무리, 나무 등걸을 에둘러 싼 이끼 군락처럼 보이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가가 만든 것들은 식물도감에 있는 특정 식물의 생물학적 특징, 양태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오히려 사실에서 벗어난 것들-흙의 물성, 번조라는 화학적 변화로 만든 도자예술의 색, 물성, 흔적이 오히려 작가가 마음속에서 들여다보고 있는 식물성의 세계를 더욱 사실적이고 즉물적으로 가시화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붓으로 겹쳐 그린 것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모종의 깊이, 여러 유약을 섞고 수 회 고온 번조로 입혀 재현한 식물 표피의 색과 물성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터키 블루, 황색, 붉은 색등 여러 색 이 어우러진 표면 아래에 불끈 솟아 오른 식물의 근육 또한 생명의 근원과 에너지의 흐름으로 충만하다. 이번 김미영의 전시는 결국 자연이라는 광활한 영역을 생명의 근원과 에너지를 다른 생명체들과 함께 공유하며 살고, 변화하는 자신을 자연물의 형상에 빗대어 기록한 자기 반추, 자기 초상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작가의 자기 연민이나 일방적인 토로가 아니다. 작가가 관객에게 동선을 따라 식물과 글을 동시에 보며 천천히 걷기를 권유하는 것은, 자연을 걷고 작업실에서 흙을 빚던 자신처럼 짧은 시간 동안만이라도 관객 또한 자신의 생을 반추하는 고요하고 정적인 시간을 갖길 바라는 권유, 또는 전이(轉移)가 아닐까.





김미영, 화기(花記, : 꽃의 기록),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2022, 인덕대학교 아영 미술관



나는 전시를 보는 내내, 눈으로 전시장에 작가가 바닥에 쓴 글씨들 그리고 흙, 유약  그리고 불로 구워 불러낸 작품들을 아주 천천히 견주어 보았다. 한 발, 한 발을 앞으로 내밀 때마다 작가의 생, 나의 생, 그리고 이것을 볼 누군가의 생이 지나쳐 왔을 어느 여름의 기억 그리고 감정들을 천천히 곱씹어 보았다.

꿈꾸는 무엇이든 가능하고,  다 해낼 수 있고, 실패나 당돌함조차도 젊음으로 모두 용서받고 덮어질 거라

믿었던 나의 나이도 어느덧 백세의 반에 가까워지고 있다. 여름에서 가을로 향하고 있다.

정작 나의 여름은 어떻게 지나가고 있나?

나의 가장 뜨겁고 열정 가득한 여름은 바로 지금인가?

혹시 이미 나도 모른 사이 뜨거운 한 때는 지나가 버렸나?

그도 아니면 나는 아직 오지 않은 여름을 위해 설레는 봄의 시절을 살고 있나?

예술은 질문을 던진다. 답은 보는 사람들이 각자의 삶과 경험에 비추어 달리 찾아내는 것이다. ■홍지수_미술평론, 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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