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nunna Jun 04. 2023

평생고독권


평생고독권




초등학생 시절, 고독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고 묘하게 끌렸다. 뭔가 어른의 단어랄까? 읊조리면 읊조릴수록 이 세상과 내가 분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나만의 세계가 펼쳐칠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어린 내 앞에 나타난 고독은 그저 내가 귀엽다고 했다. 고독이 사는 집 문턱에서 서성이는 나를 엄마한테 다시 데려다주었다. 평생 고독권을 아직은 쥐어주고 싶지 않았나 보다.     

 


중학생 시절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면서 혼자됨을 연습했다. 모두 잠든 새벽에 일어나 공부하는 그 순간은 철저한 고독이었다. 혼자됨을 온전히 견디고 그 시간을 계속 쌓는 것이다. 고독의 세계에서 조금씩 성장하고 단단해졌다. 아침 해가 뜨고 세상이 밝아올 때쯤 뭔가 뿌듯한 보람을 느꼈다. 내면의 나이테를 한 줄, 두 줄 새기는 기분이었다. 


     

고독이 흔들리면 바로 외로움이 달려와서 징징댔다. 내 옷자락을 잡고 쥐 흔든다. 고독한 건지 외로운 건지 헷갈리기 시작하면 강렬한 우울증이 찾아왔다. 누군가에게 지독하게 기대고 싶고 울고도 싶고 사랑받고 싶기도 하다. 남에게 의지하고 싶은 감정이 든다. 나의 외로움은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내가 나를 못미더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발비용이라는 것이 생긴 걸까?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고, 술을 먹고, 쇼핑하고, 이리저리 지르고 다니면서 답답한 가슴을 스스로 위로하고 싶은 것일까? 

     


외로움을 이기는 것은 고독이다. 고독의 힘은 나의 내면과 대화하고 새로운 몰입을 시작하게 한다. 나와 진지하게 대화하고 책을 읽고 공부하고 새로운 일을 찾아 도전의 시간을 갖게 한다. 홀로 있는 듯한 쓸쓸함을 견딜 수 없어 방황하고 우는 대신, 내가 내 자신을 끌어안아 줘야 한다. 외로움을 즐길 수 없다면 고독으로 달래야 한다.   


   

고독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고 읊조렸던 어린 시절, 난 이미 내가 평생 고독할 줄 알았는지도 모른다. 난 내가 고독할 수 있어서 좋다. 매일 나를 진지하게 구독하게 만드는 평생 고독권이 나에게 가장 좋은 선물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뭔가 효율적인 사람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