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수 May 23. 2021

제가 폰트 저작권을 침해했다고요?

폰트 저작권 남용에 대처하는 법

평소 법 없이도 산다고 자부하는 A씨,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A 씨는 환자들에게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안내문을 제작해서 나눠주고, 공익적인 내용이라고 생각해서 홈페이지에도 이를 올렸는데요. 문서를 작성한 프로그램은 당연히 정품으로 설치하였고, 프로그램에서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예쁜 폰트로 사용해서 안내문을 제작했어요. 


그런데 몇 달 후 - 두둥 - A씨는 X폰트디자인 업체를 대리하는 Y법무법인으로부터 폰트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경고장을 받게 됩니다. 


깜짝 놀란 A씨가 Y법무법인에 연락해보니, A씨의 행위는 빼도 박도 못하는 저작권법 침해인데, 소송으로 가게 되면 어마어마한 손해배상액을 물어야 하고 형사 처벌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A씨가 자진해서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고 X  폰트디자인 업체의 폰트패키지를 200만 원에 구입한다면 없었던 일로 해주겠다는 말을 듣게 되죠. 


변호사 상담을 하고 혹시나 소송까지 가게 된다면 200만 원보다 훨씬 더 큰돈이 들 것은 명확하고, 안 그래도 바쁜데 경찰, 검찰 조사까지 받게 되면 어쩌지...  두려워서 그냥 똥 밟은 셈 치고 200만 원 보내고 끝낼까 싶다가도 이 상황이 너무너무 억울한 A씨.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Photo by  Max Kleinen @ Unplash


폰트 프로그램 파일에 저작권이 인정되는 것은 사실!


초등학교 때 친구의 예쁜 글씨를 그대로 따라서 써 본 경험 있지 않나요?

이처럼 글씨 자체에는 저작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의 태도(대법원 1996. 8. 23 선고 94누5632 판결 등)이므로, 예쁜 글씨를 그대로 따라 쓰거나 태블릿에서 따라 그리는 것 등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러면서도 예쁜 서체들을 파일로 만든 '폰트 프로그램 파일'에 대해서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서의 저작권을 인정해 줍니다(대법원 2001. 6. 26 선고 99다50552 판결 등). 어쨌든 그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드는 노력은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 폰트 프로그램 파일에 저작권이 인정된다고 치자근데 난 정품 사용했는데? 혹은 창작자가 무료로 인터넷에서 뿌린 서체파일 사용했는데?? 그래도 저작권 침해야???

  

네, 안타깝게도, 그럼에도 침해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ㅠㅠ


지적재산권에는 권리소진 이론이라는 것이 있어요. 즉, 내가 한 번 돈 주고 음원을 사면 그 음원을 수십 번을 듣든, 내 친구들한테 들려주든 상관이 없고, 지적재산권자는 이러한 행위까지는 뭐라 할 수 없어요. 그런데, 그러한 범위를 넘어서 그 음원을 인터넷에 올리고 모르는 사람도 다운받을 수 있게 한다거나 이런 행위는 문제가 돼요. 이는 사적인 이용을 넘어선 것으로 그러한 권리까지 소진되었다고 보지는 않거든요. 


따라서 정품 프로그램 안에서 내가 그 폰트를 신나게 사용하는 것이나, 다운받은 폰트를 사용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걸 사용해서 다른 사람에게 인쇄물을 배포하고 홈페이지에 올리는 행위는 사적인 이용을 넘어선 것으로 저작권의 침해라고 인정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 무료 제공되는 폰트 파일들도 그냥 가정에서의 사용을 넘어 '상업적 이용'까지 허용하는 것인지를 주의해서 확인해야 합니다.


Photo by geralt @ pixabay


그래서 수년 전에 한글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수많은 공공기관, 교육기관, 유치원 등의 홈페이지나 안내문 등에 특정 폰트를 사용한 것을 모니터링하여 대대적으로 경고장을 보낸 업체가 있었고요. 최근에는 병원이나 치과 등의 홈페이지, 안내문에 폰트 사용에 대해서 또 대량으로 경고장을 발송한 사례가 다수 있었습니다.    

 

당한 입장에서는 정말 뒤통수가 얼얼할 일이에요. 내가 저작권 침해인 줄 알았더라면, 별로 대단히 이쁜 것도 아닌 그 서체 썼겠냐고 항변하고 싶지만... 법적으로 저작권 침해라고 하니 이를 어쩔까요?

  

대응 방법은 !! 


1. 우선 변호사 상담 없이, 또는 인터넷 검색 없이 절대로 먼저 A씨처럼 전화해서 물어보거나 회신하지 마세요!


절대 절대 절대!!! 변호사 상담 전에, 혹은 지금 여러분이 읽는 것 같은 이런 글들을 읽기 전에 먼저 해당 법무법인에 접촉하거나 이메일로 회신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회신 전에 반드시 충분히 인터넷 검색을 하시고, 저작권 위원회나 법률구조공단에 문의를 해보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여러분들이 그 폰트 프로그램을 사용했다는 것에 대한 입증책임은 상대방에게 있거든요. 그래서 경고장에도 항상 반성문이나 사과문까지는 아니어도 '침해사실을 인정하는 서면'을 작성하도록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법률에 비전문가인 여러분들은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에게 폰트 프로그램의 사용 사실을 자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상대방이 저작권 침해사실을 단정하면서 합의금을 대폭 깎아주겠다는 제안을 하게 되면, 더 깎아 달라는 취지의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침해사실을 인정하기 쉽거든요. 


여러분의 전화 내용은 언제나 녹음될 수 있고, 이메일은 추후에 전부 민, 형사 절차에서 증거로서 활용될 수 있어요. 그런데 이와 같이 내가 침해 사실을 인정해버리면 아래 2번의 주장은 영영 할 수없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2. 우선은 '박박 우겨볼 것'을 권해드립니다.


문제 되는 폰트를 사용한 글자가 몇 글자 안된다면 그 폰트 안 썼다고 박박 우겨보는 것을 추천드려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폰트 프로그램에는 저작권이 인정되지만 폰트 자체에는 저작권이 인정되지 않거든요. 나는 너네 폰트 안 썼고, 인터넷에서 본 폰트가 너무 이뻐서 그대로 그림 프로그램으로 폰트를 그려서 갖다 붙인 건데? 하고 우기는 겁니다. 몇 글자 안될 때는 이런 항변이 가능할 수 있어요. 


하지만 십수 글자가 넘어간다면, '직접 그린 폰트인데 모든 글자에 모든 좌표값이 동일하다'는 취지의 항변은 받아들여질 수 없을 거예요. 특히 상대방의 폰트를 여기저기에 너무 많이 이용한 경우라면, 억울하더라도 합의금의 수준을 보고 합의하는 것이 낫겠지요.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판례도 나왔어요. 

서울서부지방법원 2019. 10. 18 선고 2019나32013 판결

피고가 제출한 증거에 의하면, 이 사건 서체 프로그램을 다운로드받지 않은 컴퓨터에서 문서를 작성하더라도 이 사건 서체를 사용한 제3자가 작성한 문서의 일부를 복사하여 붙여넣기 하는 경우, 문서정보에 이 사건 서체가 포함된 것으로 표시 될 수 있는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 그러한 이상 피고의 주장과 같이 이 사건 서체를 사용한 문서가 피고 소관 컴퓨터를 통해 게시되었다는 사실만으로는 피고 소관 컴퓨터에 이 사건 프로그램이 다운로드 되어 있다고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 그런데 앞서 본 것과 같이 이 사건 서체도안이 저작물에 해당 한다고 볼 수 없고,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가 이 사건 서체 프로그램을 다운로드받았다고 인정할 수 없는 이상, 이 사건 서체 파일 자체의 이용이나 결과물인 이미지의 이용은 저작권의 침해가 아니므로, 피고가 원고의 저작권을 침해하였다고 볼 수 없다.

또한 원고가 제출한 증거에 의하더라도 원고가 인쇄업체에 문서의 인쇄를 의뢰하면서 도급인으로서 도급 또는 지시에 관하여 중대한 과실이 있었다거나 수급인인 인쇄업자의 일의 진행 및 방법에 관하여 구체적인 지휘ㆍ감독권을 유보하였다는 점에 관한 주장ㆍ입증이 없으므로, 인쇄업자가 편집한 문서에 이 사건 서체가 사용되었다 하더라도, 피고가 도급인으로서 원고에 대한 저작권 침해의 책임을 부담한다고 볼 수 없다.


즉, '이건 내가 작성한 것이 아니고, 남이 작성한 문서를 베껴온 것인데 그 서체가 그대로 복사되어 온 것이고 나는 이 서체를 사용한 적이 없어'라고 항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런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남이 작성한 문서를 제시할 수 있어야 신빙성을 얻을 수 있겠죠.  


한편, 다른 외주 업체 등 에서 제작한 것이 문제된 것이라면, '그 업체가 알아서 한 거고 난 몰라'라는 항변도 가능합니다. 그 경우에는 인쇄업자가 그 폰트 프로그램을 사용한 것이지, 난 그 결과물만 사용했을 뿐 내가 폰트 프로그램 자체를 사용한 것은 아니거든요.  


3. 경고장에 대한 회신은 최대한 간결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사유들이 명확히 있는 경우는 그러한 주장을 정확히 해서 상대방이 '소송해도 승산이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회신하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 폰트를 사용한 것이 맞고 좀 찜찜한 경우라면 귀사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나는 해당 폰트를 사용한 사실이 없으니, 부당한 주장은 삼가기 바란다는 내용으로 회신하면 족합니다. 실제로 소송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주장을 요리조리 바꾸시려면 첫 회신에서 이런저런 구체적인 내용을 적시하는 것은 불리하실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처럼 간단히 회신하면 상대방은 바로 민 형사상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별도로 변호사를 선임해야 해서 많은 부담이 되는 반면에, 상대방으로서는 수백, 수천 건을 동일한 내용으로 한꺼번에 처리하는 법무법인이 있어서 쉽게 소송을 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기는 합니다. 


4. 상대방이 민 형사상 조치를 취하게 되면, 본인이 직접 대응하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물론 본인이 너무 바쁘고 이런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요즘은 법률비용도 많이 저렴해졌으므로 이를 대리하는 변호사를 알아보는 것도 좋지만, 대부분은 앞서 말씀드린 합의금보다 더 큰 금액이 들게 될 것입니다. 


때문에, 이러한 글을 찾아 읽으시는 여러분들이라면, 저는 본인이 직접 대응해 보는 것을 권해 드립니다. 이런 저작권 남용의 사례는 법원이나 경찰, 검사 또한 (대놓고 말은 못 하지만) 뒤통수를 맞은 여러분의 편일 가능성이 많아요. 따라서 민 형사 절차에서 멘탈이 흔들리지 않고 본인의 입장을 담담하게 진술하실 수 있다면 크게 불이익한 일은 없을 거예요. 


다음 판례를 보면, 형사절차에서는 불기소 처분이 되었고, 손해배상액으로는 50만 원이 인정되었네요. 

서울중앙지방법원 2018. 6. 1 선고 2017나61562 판결

원고는 피고를 저작권위반죄로 고소하였으나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는 2016. 11. 18. '피고가 디자인 작업 과정에서 다수의 서체 프로그램을 사용한 사정을 고려하면 모든 서체 프로그램에 대해 사용자격이 있는지 확인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원고가 위 서체 프로그램을 무상 유포하면서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는 사례에 대해 적극 홍보하였다고 보이지도 아니하므로, 원고의 진술과 제출자료만으로는 피고에게 이 사건 서체 프로그램에 대한 저작권 침해의 인식과 의사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피고에 대하여 불기소결정(증거불충분)을 하였다.

(중략)

살피건대, 갑 제3호증(헤◑폰트 소프트웨어 사용권 계약서)의 기재에 의하면, 이 사건 서체 프로그램이 포함된 'H▣♡▣15' 서체 프로그램의 설치, 사용에 따른 기본 사용료가 1,980,000원이고, 사인물 제작을 위한 추가 사용계약 라이선스 비용이 1,100,000인 사실은 인정되나, 한편, 위 사용권 계약서에 의하더라도 위 'H▣♡▣15' 서체 프로그램에는 이 사건 서체 프로그램을 포함한 '214type 491종'의 서체 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으며, 개별 서체 프로그램에 대한 이용료는 별도로 산정되어 있지 않은 점에 비추어 보면, 갑 제3, 6 내지 10호증의 각 기재만으로는 원고가 주장하는 금액이 이 사건 서체 프로그램에 대한 권리의 행사로 통상 받을 수 있는 객관적인 금액이라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따라서 저작권에 의한 손해배상액 산정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결국 저작권의 규정에 의하여 변론 전체의 취지 및 증거조사의 결과를 참작하여 상당한 손해액을 산정하여야 할 것인바, 피고가 이 사건 서체 프로그램을 취득하게 된 경위, 피고의 저작권 침해행위의 내용과 침해기간, 그로 인해 피고가 얻은 경제적 이익 등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원고의 손해액을 500,000원으로 인정함이 상당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문제 상황에 휘말리지 않는 겁니다. 


나만 사용하는 문서가 아닌, 업무용, 공공용 문서에는 가장 기본의 폰트만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고, 외주 업체를 이용하는 경우에도 외주업체에 폰트 저작권 문제를 고지하여 문제없는 폰트로만 제작할 수 있도록 지시하는 등으로 분쟁을 피하시기 바랍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