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번째 기업에서의 면접이 끝나고, 그는 하염없이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그가 판단하기에 성장 가능성 있는 제품, 충분히 의미 부여할 수 있을 만한 직무와 시장이다. 그는 23번째 기업에 입사하여 일할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무언가 뒤가 켕기거나 불길한 예감은 기가 막히게 잘 맞아떨어진다. 23번째 기업은, 내부 인사팀에서 협의가 길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면접 당일 인사팀 직원과 면접관이 말했듯, 원래는 1번만 진행할 면접을 2번까지 진행할 것인가로 씨름 중인 듯하다. 기다림 이후의 과실은 더 달콤한 법이니, 그는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
1) 자X설닷컴 채팅방, 예비 합격
2주일 정도 지난 어느 날, 자X설닷컴 채팅방이 울린다. 23번째 기업 해외영업 직무 면접 결과가 발표되었으며, 결과 메일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가 메일함을 확인해보니, 아무것도 도착해 있지 않다.
채팅방에는 결과 발표 메일을 받았다는 증언이 계속해서 늘어난다. 그는 하루를 더 기다리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는 인사팀에 전화를 건다. 서류 합격 당시, 면접 안내를 받았던 메일에 적혀있던 전화번호다.
신호음이 간다.
23번째 기업 인사팀 : 여보세요.
그 : 네 안녕하세요, 23번째 기업 인사팀 맞나요?
인사팀 : 네, 맞습니다.
그 : 아, 안녕하세요, 저 23번째 기업 해외영업에 지원했던 지원자입니다. 면접 결과가 나왔다고 하는데, 아직 메일을 못 받아서요.
인사팀 : 아,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그 : 하얀 얼굴 입니다.
인사팀 : 하얀 얼굴 지원자님, ... ...
그 : (입이 바싹 마른다)
인사팀 : 아, 하얀 얼굴 지원자님. 지원자님은 현재, '예비 합격자' 리스트에 있는 상태입니다. 지금 메일을 받는 분들은, 면접에서 탈락하신 분들이에요.
그 : (어쨌든 합격이란 말에 기분이 좋아지며)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인사팀 : 네, 추후에 저희가 다시 연락을 드릴 겁니다. 조금 늦어지고 있어서 죄송해요. 빨리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 네, 감사합니다!
기쁘게 전화를 끊는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생각해보니 이해가 되질 않는다. 합격이면 합격이고 불합격이면 불합격이지, 예비 합격은 또 뭔가. 그는 이전에 어느 썰을 읽은 적이 있다. 예비 합격으로 통보해놓고, 더 나은 지원자가 나타나면 탈락시키고, 그렇지 않으면 뽑겠다는 말을 인사팀으로부터 대놓고 들었다고 한다. 그의 경우 인사팀이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결국 그가 읽었던 어떤 이의 상황과 똑같은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는 취준생이다. 과정이 어찌 되었든, 붙기만 하면 된다. 그만큼 면접을 잘 볼 사람을 또 찾기는 힘들 것이다. 긍정적으로, 밝게 생각하자. 그렇게 생각할수록 합격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그다.
2) 다시 올린 채용공고, 면접 결과 발표 지연 메일
그런데, 전화 통화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는데 일이 터진다. 23번째 기업은, 그가 지원했던 해외영업직무로 똑같은 공고를 다시 올렸다. 마감 기한을 빼고는 전부 동일한, 똑같은 채용 공고다. 그는 살짝 꼭지가 돈다. 23번째 기업은 자사 채용 홈페이지가 없어, 사람X 표준 이력서를 받는다. 그는, 자신이 서류 합격했던 이력서를 토씨 하나 고치지 않고 그대로 지원한다.
그의 이런 지원을 눈치챈 것인지 무엇인지, 23번째 기업 인사팀은 갑작스레 메일을 날린다.
안녕하세요?
23번째 기업 인사그룹입니다.
이번 저희 채용 건에 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해 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이번 채용 건 관련하여, 내부 사정상 최종합격 결과 안내가 많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안내 늦어진 점 죄송한 말씀 전해드리며, 지원자 분들의 넓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면접 결과는 합격/불합격 여부 상관없이 메일로 연락 드리고 있사오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최종 결과는 XX월 말 ~ XX월 중으로 발표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23번째 기업 인사그룹 드림.
그는 이미 인사팀으로부터 '예비 합격'이라는 답을 들었다. 그런데 23번째 기업은 똑같은 채용 공고를 다시 올렸다. 그가 똑같은 공고에 서류 지원을 다시 해버리자, 면접 결과 발표가 지연되고 있으니 기다리라는 메일이 날아왔다. 그가 인사팀으로부터 전화와 메일로 받은 답변과, 인사팀이 다시 채용 공고를 올린 행위는 일관성이 없다. 예비 합격자들에게 기다리라 해놓고 채용 공고를 다시 올린다니, 그는 납득하기가 힘들다. 그가 읽었던 최악의 사례처럼, 예비 합격자들은 보험으로 놔두고 혹시나 더 나은 지원자들이 있지 않을까 시간을 끌며 공고까지 다시 올리는 악덕 행위로 보인다.
3) 마침내, 탈락 통보
면접 당일로부터 2주 뒤 직접 전화를 걸어서야 예비 합격자 통보를 받았다. 그로부터 2주 뒤 채용 공고가 다시 올라오고, 인사팀은 4주 전에 봤던 면접의 결과 발표가 지연되고 있으니 기다리라고 메일을 날렸다. 그 메일이 날아온 시점으로부터, 2주가 지나도 결과 발표가 나지 않았다. 그는 기대를 접는다. 23번째 기업도, 면접자에게 결과 발표조차 해주지 않는 엉망인 기업이구나 생각하고는 다른 기업에 이력서를 난사한다.
그가 23번째 기업에서의 연락을 포기하고 2주 뒤, 갑작스럽게 23번째 기업으로부터 메일이 날아온다. 면접 당일로부터, 2달이 지나고서야 받은 결과 통보 메일이다.
안녕하세요?
23번째 기업 인사그룹입니다.
먼저 면접 결과가 지연된 점에 대해 죄송한 말씀 드립니다.
사내 계속되는 코로나 확진과 더불어 추가 면접이 지연 되면서 결과 발표가 늦었습니다.
추후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개선해나가겠습니다.
이번 저희 23번째 기업 채용 건에 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해 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아쉽게도 근소한 차이로 인해 귀하의 합격 소식을 전해드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이번 채용에서는 함께 하지 못하였지만,
더 좋은 기회에서 귀하의 꿈을 마음껏 펼치실 것이라고 확신하며, 귀하의 앞날에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귀하께서 보여주신 열정에 보답할 수 있도록 세계를 무대로 힘차게 도약하는 Global기업 23번째 기업이 되겠습니다.
앞으로도 23번째 기업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3번째 기업 인사그룹 드림.
(시간이 지난 뒤 메일을 다시 읽어보니, 23번째 기업은 최종 합격자가 자꾸 전염병에 걸려 격리 기간 동안 발표를 보류했거나 대타로 뽑을 후보군을 확보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그는 면접 이후 한 달 반을 기다리다 포기했다. 떨어졌다고 생각하고, 이미 정을 떼 버린 지 2주나 지난 것이다. 그런 그에게, 23번째 기업은 굳이 또 탈락 통보 메일을 날렸다. 차라리 탈락 메일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다른 어떤 기업처럼 탈락자에게는 굳이 메일을 주지 않는구나 기분 나쁘게만 생각하고 넘길 터였다. 하지만 23번째 기업은 지원자와 밀당을 하는 것인지, 계속해서 여지를 주다가 마지막마저 기분 나쁘게 끝냈다. 2달이 지난 뒤에야 날아온 탈락 메일이, 그에게는 약 올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23번째 기업을 향했던 그의 충성심과 애사심, 제품에 대한 동경이 한순간에 모조리 무너진다.
26번째 기업 인사팀은 지원자들로 하여금 적개심을 품도록 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