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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Feb 12. 2024

40 - 이런 일 하려고 들어온 거 아니지 않냐

 바쁘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그, 시간이 어느덧 오후 5시 50분이다. 일이 바쁘지 않은 때였는지, 사업지원팀도 T 과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퇴근했다. 그도 즐거운 마음으로, 짐을 챙기며 퇴근을 준비 중이다. 바로 그때, T 과장이 그를 부른다.


  T 과장 : 얼굴아, 바쁘니?

  그 : 아닙니다!

  T 과장 : 어 그래. 퇴근 시간 다 됐으니까. 준비 다하고 퇴근 전에 잠깐 나한테 와. 할 얘기가 있으니까.

  그 : 알겠습니다!



 눈치가 빠르지 않은 그는, 퇴근 생각에 그저 싱글벙글이다. T 과장이 어떤 좋은 이야기를 해줄지 기대도 된다. 어서 좋은 이야기를 듣고, 퇴근해야겠다.


  그 : (T 과장 자리로 가서) 네 과장님

  T 과장 : 어 그래. 여기 앉아봐

  그 : (앉는다)

  T 과장 : 요즘 많이 바쁜 거 같은데, 어때.

  그 : 아, 아닙니다. 좋습니다!

  T 과장 : 어떤 일들 하고 있지?

  그 : 현장직 관리하고, 조직도, 전염병 전표, 창고 관리, 그리고 요즘 면접 안내하고 있습니다!

  T 과장 : 음, 그래.

  그 : (??) ...

  

 T 과장은 잠시 말이 없다,


  T 과장 : 지금 너가 하고 있는 일들 보면, 솔직히 중고등학생 데려다가 가르쳐도 다 할 수 있는 일들이야.

  그 : (??!!)

  T 과장 : 조직도를 너한테 주라고 하셔서 주긴 했지만, 그것도 원래는 파견직이 관리하던 거야.

  그 : 아 네. W 사원에게 인수인계 받았습니다.

  T 과장 : 물론 조직도 관리하면야 모두한테 좋지. 근데 그걸 왜 너가 해.

  그 : ...

  T 과장 : 창고 관리도, 총무팀에서 안 하니까 우리가 맡게 된 거고. 면접 안내도 똑같아. 인사팀에서 지금 사람 없다고 부탁해서 하는 거지. 우리 일이 아니야. 안 해도 되는 일이라고.

  그 : ...

  T 과장 : 전염병 전표도 마찬가지고. 너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입사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일들 하려고 들어온 거 아니잖아.

  그 : ... (!!)


 그는 딱히 무슨 일을 하고 싶다고 정하고 이 회사에 들어온 것이 아니다. 그가 원래 목표했던 1순위 직무는 '해외영업', 2순위가 '기획'이었으며 업계도 제조업을 원했다. 해외영업은 하필 창궐한 전염병으로 인해 국내로 귀국한 해외파들(주재원 아들)에게 밀렸고, 기획 업무도 사내 브레인 직무이기 때문에 학벌과 스펙을 본다고 하여 모조리 탈락했다.

 이 회사에 지원했던 직무조차도 '재무'였다. 그가 재무에 관심이 있거나 뜻이 있어서가 아니다. 당시 이 회사의 공고 중 그가 지원할 수 있는 직무가 재무밖에 없어서였다. 그나마도 지원한 직무에는 합격하지 않고 튕기고 튕겨 사업지원팀에 입사한 것이다. 그의 바람대로 이루어진 것은 없다. 애당초, 이 회사는 그의 바람과는 무관한 회사였다.


  

  T 과장 : (본론으로 들어가는 듯) 우리 사업부는, IT를 영위하는 회사야.

  그 : (최대한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며) 네.

  T 과장 : 너가 교육받은 거 있지? 우리는 Cloud, CDN, 그리고 콜센터 사업을 하는 회사야. 그래서... ...

  그 : 네, 네 ... ...


 T 과장은 그에게 회사 사업부 설명부터, 앞으로 그를 어떻게 키울 것이라는 계획을 이야기한다.


  T 과장 : 우선은, 나는 너한테 CDN 원가에 대해 가르쳐줄거야.

  그 : (왠지 있어보여) 오...

  T 과장 : 원가를 알아야, 사업을 볼 수 있거든. CDN 원가가 조금 명확하지 않긴 한데, 그래도 Cloud보다는 나으니까. 그리고 CDN 원가를 하고 나면, 이제는 Cloud 원가를 알려줄거야.

  그 : 오...

  T 과장 : 그러면 이제 너는, CDN이랑 Cloud 원가를 다 알게 되는거야. 그러면 더 볼 수 있는 것도 많아지고. 그다음에 U 과장한테 콜센터 원가까지 배우면 금상첨화지.

  그 : 오...

  T 과장 : 그렇게 매입, 그러니까 원가를 먼저 가르칠거야. 그러고 나서는 이제 매출을 해야지. 매출도 복잡하긴 한데, 매입보다는 쉬워. 먼저 매입을 하고 나면 매출도 잘 보일거야.

  그 : 오...


T 과장은 CDN, Cloud와 관련된 간략한 사업 내용과 회사의 역사에 대해 설명한다. 그가 이후에 들었더라면 더 잘 이해를 했겠지만, 당시의 그는 사업에 대해 심각한 무지 상태였다. T 과장이 설명해 준 대부분의 내용을 까먹는 그다. 회사의 역사 관련해서는, S 팀장이 이야기해준 내용과 겹치는 부분도 많다. 이런저런 설명을 듣다 보니, 시간은 근 1시간을 넘겨 어느새 6시 30분을 넘긴다. 파티션 건너편에 앉아있던 영업팀 B 대리가 불쑥 파티션 너머로 끼어든다.


  B 대리 : 아 저기, 근데 얼굴 씨 가야되는 거 아니에요?

  T 과장 : 응? 아..

  B 대리 : 얼굴 씨, 누가 기다리고 있는 거 아니에요?

  그 : 아, 아닙니다...

  B 대리 : 시간이 벌써 7시가 다되가는데..

  T 과장 : 거의 다 끝났어. 이거만 이야기하고.



 T 과장은 이후, 약 15분 정도 더 설명을 이어간다. 앞으로 그를 이러한 방향으로 키울 것이다. IT사업의 내용을 전부 알 수 있도록, 모든 것을 통달하는 인재로 키워가겠다는 내용이다. 듣기에는 좋지만, 그는 T 과장의 말을 들으며 그다지 열정이 불타오르거나 하진 않는다. 어떻게 키워가겠다는 내용에 귀를 기울이기엔, 초반부에 들었던 T 과장의 평이 너무 강렬하다. 지금 당장 그가 바삐 활동하는 업무들은 다 쓸모없는 것들이라니. 중학생 고등학생을 데려다가 앉혀도 다 할 수 있는 일들이라니. 이런 일 하려고 들어온 게 아니지 않냐는 그 말이, 오히려 눈과 귀를 감으려던 그 자신을 일깨워버린다. 그도 실제로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T 과장의 말에 고삐가 풀려버린 것이리라.


 이런 일, 이런 일은 아니다? 그러면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있다는 건데. 그렇다면 지금 이 팀은 왜 그를 이러한 상태로 만들고 내버려두나? 그런데, 지금 들은 가치 있다는 그 일들은, 그가 생각하기에 가치가 있는 일인가?


 그가 이런저런 생각으로 복잡한 가운데, T 과장의 이야기가 끝이 난다.



  T 과장 : ... ... 여튼 그러니까. 앞으로는 이렇게 할 생각이야. 회사 생활하면서 궁금한 거 있으면 뭐든지 물어봐. 궁금하거나 힘든 것도 전부. 회사 일적인 거든, 개인적인 거든 상관없으니까.

  B 대리 : (갑자기 끼어들며) 지금, 지금! 지금이 제일 힘든 거 아니야 얼굴 씨?

  그 : 아, 아닙니다.

  T 과장 : 그래, 퇴근 잘하고, 내일 보자.

  그 : 네! (시간은 어느새 7시가 다 되어가고 있다)



 퇴근길, 그는 머리가 복잡하다. T 과장의 말이 고깝진 않다. T 과장도 그를 위해 이러한 이야기를 해줬을 것이며, 일반적인 관점으로는 T 과장이 제시한 길이 더 좋아 보이긴 한다. 문제는, 그 자신이 보기에 그 길이 좋아보이는가. 그 길에 가치가 있어보이는가.


 예전 S 팀장이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우리 팀은 사업관리, 안전보건, 인사총무, 구매, 재무, 기획 일을 다 배울 수 있다'

 그는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열된 업무 중 그 어떤 것에서도 흥미가 느껴지지 않았었다. 경험해보지 못해서, 그저 무지하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경험을 해보면 달라지는 것일까. 아니면, 애초에 그는 잘못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일까.



 그는 또다시 판단을 유예한다. 멋대로 판단하기엔, 아는 것이 너무 없다. 사업관리도, 안전보건도, 인사총무도, 구매도, 재무도, 기획도, 매입 업무도 매출 업무도. 그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뭘 알아야 판단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아직 입사한 지 반년도 되지 않았고, 제대로 된 일도 맡지 않은 상태다. 조금 더 해보면, 일을 맡아보면 알 수 있게 되겠지.


 판단을 유예하고 나니, T 과장에 대한 고마움과 원망이 동시에 솟는다. 그래, 신경써주겠다는 것은 알겠다. 그러면 그런 이야기를 점심시간이나 다른 때 해도 충분할 텐데, 왜 굳이 퇴근 시간 10분 전에 붙잡고 한 시간 가량을 이야기하나. 막내인 자신을 챙겨주는 마음이겠거니. T 과장이 그를 지켜주고 있는 것이겠거니 생각하며 애써 마음을 다잡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T 과장은 그에게 매입 매출 업무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파티션 건너편에 있던 영업팀 B 대리는, 이 퇴근 직전 1시간 면담일로부터 약 일주일 뒤 이직이 정해졌다며 갑작스레 퇴사 준비를 시작한다. 그는 이때부터 눈치를 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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