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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Feb 12. 2024

39 - 제일 바쁜 신입사원

 이런저런 일들을 맡으며, 그는 조금씩 바빠진다. 여기저기서 그를 찾는 이들도 많고, 온갖 문의들이 쏟아진다. 어느샌가 주위를 돌아보니, 그는 함께 입사한 동기들 중 가장 바쁜 신입사원이 되어 있었다. 그의 일과는 아래와 같다.



1) 출근

 오전 6시 기상, 출근 준비하여 되도록 7시에 지하철을 탄다. 지하철로는 기본 1시간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 직장인들이 많이 쓰는 용어인 Door-to-Door(집에서 나와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의 시간)로는 넉넉하게 1시간 30분을 잡아야 한다. 그의 집과 회사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버스가 지하철보다 덜 우회하긴 하나, 특히나 출퇴근 시간의 이 거리는 상습 정체 구간이다. 이전에 한 번, 빠르게 출근하기 위해 택시를 이용했다가 지하철보다 더 오래 걸린 적이 있다.


 독특하게도, 그의 집에서 회사까지 가려면 지하철을 여러 번 환승해야 한다.

  Worst : 환승 1번, 소요 시간 1시간 40분

  Normal : 환승 2번, 소요 시간 1시간 30분

  Best : 환승 4번, 소요 시간 1시간 20분


 어떻게 돼먹은 경로인지, 환승을 할 때마다 시간이 약 5~10분 정도 단축된다. 환승 구간에서 느릿느릿 걸어선 안되고, 약간 잰걸음으로 바쁘게 움직였을 경우의 이야기다. 가뜩이나 사람이 넘쳐나 매일 서서 가는데, 거기에 환승까지 여러 번 추가되면 꽤나 신경이 쓰인다. 1시간 40분은 너무 오래 걸리고, 그렇다고 20분을 줄이기 위해 환승을 4번이나 하는 것도 너무 수고스럽다. 그는 중간 선택지, 환승을 2번만 하는 것으로 결정한다.



2) 신문

 오전 8시 반, 회사 건물에 도착한다. 다른 이들은 모두 엘리베이터로 직행하지만, 그는 들를 곳이 있다. 엘리베이터 반대편, 우편물들을 수령하는 우편함이다. 이 회사의 우편함은 나무로 만들어져 있어, 신발장 같은 느낌이 든다. 그가 속한 IT사업지원팀 우편함에서 신문을 꺼낸다. 총 3부로, 전자신문/조선일보/매일경제다.

 처음 지시는 S팀장이었다. 매일 신문을 읽고 기사를 공유하라는 지시를 받아, 매일 신문을 갖고 올라가기 시작했었다. 그런 그를 보며, 사업부장이 '매일경제'만 따로 가져다달라고 했다. 그는 신문 3부를 갖고 올라가서 2부는 자신의 자리에, 매일경제는 사업부장의 자리에 가지런히 올려놓는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볼 때마다 다른 직원들이 한 마디씩 한다.

  - 와, 신문을 읽어요? (아, 제가 아니라...)

  - 누가 시킨 거에요? (팀장님과 사업부장님께서...)

  - (측은한 눈빛으로) 고생하시네요...


 다른 이들의 관심은 고맙지만, 거기까지다. 신문 배달이나 하는 자신의 처지가 안쓰럽다던지, 4년제 대학까지 나와서 이런 허드렛일이나 하고 있나 하는 불만은 생기지 않는다. 30대 신입사원, 면접 50번 끝에 자신을 뽑아준 이곳이 감사할 따름인 그다.



3-1) 커피머신, 제빙기 세척

 사업부장실에 신문을 가져다 놓고, 커피머신과 제빙기를 청소한다. 우선 커피머신의 아랫부분을 분리한다. 커피머신에서 커피를 뽑으려면, '커피 캡슐'을 윗부분에 넣고 버튼을 눌러야 한다. 버튼을 누르면, 커피머신 물탱크에서 물을 끌어와서, 그 물이 커피 캡슐을 통과하도록 해서 커피를 내리는 구조로 보인다. 물이 통과하여, 제 쓸모를 다한 1회용 커피 캡슐은 어디로 가는가. 똑똑한 커피머신은, 사용이 끝난 커피 캡슐을 자동으로 아래로 똑 떨어트린다. 자연스레 이 커피 캡슐 쓰레기가 머신 내부에 쌓이는데, 이를 주기적으로 비워줘야 한다.


 커피머신 아랫부분을 열면, 제 역할을 다하고 떨어진 커피 캡슐들이 쌓여있다. 이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커피머신 이곳저곳을 물티슈로 닦는다. 커피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여기저기 커피 자국을 남기나 보다. 커피머신의 커피가 나오는 구멍, 즉 컵을 올려놓는 받침에는 언제나 커피가 말라붙어 있다. 물티슈로 이를 깨끗이 닦고, 물티슈를 반으로 접어 받침에 꼭 맞도록 깨끗하게 올려놓는다. 물론, 이 물티슈 받침은 다음날 아침이 되면 또 커피 범벅이 되어있을 것이다.


 커피머신 물탱크를 분리하고, 제빙기의 내부 상태를 본다. 제빙기 내부에 커피가 튀어 있는 경우가 있다. 얼음을 커피에 강렬하게 퍼담은 모양이다. 보통 얼음을 퍼담는 '얼음 주걱'에 커피가 튀어 있는 경우가 많다. 얼음 주걱도 함께 가져간다. (매주 월요일에는 제빙기를 통째로 화장실로 가져가 세척한다)



3-2) 커피머신, 제빙기 세척 (화장실)

 커피머신 물탱크, 제빙기 얼음 주걱, 커피를 휘젓는 스푼들, 그 스푼들을 보관하는 머그컵을 가지고 화장실에 도착한다. 그는 세면대에서, 이 집기들을 꼼꼼히 세척한다. 커피머신 물탱크의 경우, 깊이는 깊은데 폭이 좁아 그의 손이 끝까지 들어가지 않는다. 억지로 손을 집어넣다가 약간 금이 간 것 같기도 하다. 물과 막대 수세미를 이용하여 최대한 깨끗하게 닦는다. 커피머신 물탱크의 바닥 구석 쪽이, 초록색 물때가 가장 잘 낀다. 사업부장이 이 물때를 직접 언급한 적이 있기 때문에, 가장 신경써서 닦아야 할 부분이다. 나머지 스푼, 머그컵, 얼음 주걱은 닦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설거지를 끝내고, 각 부품들을 다시 커피머신과 제빙기에 결합한다. 사업지원팀 옆 커피 뽑는 구역이 제법 깔끔해진다. 커피 캡슐이 부족하다 싶으면 기다란 캡슐 박스를 뜯어서 채워놓고, 종이컵도 좀 채워놓는다. 반짝거리는 커피머신과 제빙기, 누런 커피 자국 없이 깔끔한 것을 보면 나름 뿌듯하다.



4) 기사 공유

 자리에 앉아, 아까 가져온 신문들을 펼친다. 이런저런 기사가 많다. 이 당시에는, 미 연준이 금리를 계속해서 올린다는 기사가 한창이었다. 어느덧 익숙해진 몸놀림으로 그는, 메인 기사들만 훑고 제목을 기억해 둔다. 기억해 둔 제목을 해당 뉴스 홈페이지에서 검색한 뒤, 링크들을 사업지원팀 단체방에 올린다. 상사들로부터 별다른 피드백은 없다.



5) 전염병 전표 치기

 그의 Main Job을 수행할 차례다. 계속해서 쌓이는 전염병 검사비 증빙들을 분류한 뒤 전표를 친다. 키트만 시행한 직원, 키트 이후 병원에서 PCR까지 받은 직원, PCR을 받았는데 양성이 나와서 다음날 키트 후 PCR을 또 받은 인원, 계속 양성이어서 2주일치 검사 증빙을 한꺼번에 제출한 직원 등 가지각색이다. 코로나 전표를 치고 있는 와중에도, 여기저기서 직원들이 다가와 그에게 검사비 증빙을 건네고 떠난다.

 

 사업부 모든 직원들의 얼굴과 이름, 소속과 사번까지 외울 수 있는 좋은 기회겠지. 그는 감사하다고 말하며 증빙을 건네받는다. 하지만 전표 치는 속도보다, 사업부 전체 인원들이 검사를 받는 속도가 더 빠르다. 처음에는 증빙을 받자마자 전표를 처리하곤 했으나, 전염병이 활개를 치면서 이는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그의 책상에는 언제나 전염병 검사비 증빙들이 쌓여 있다. 그도 반쯤은 포기했다.



6) 창고 소모품 불출

 얼마 전 창고 열쇠를 복사한 이후부터 그가 맡게 된 부업이다. 사업부 민원 중, 아무리 못해도 하루에 한 번은 꼭 소모품을 잃어버리거나 교체해 달라는 문의가 들어온다. 그럴 때마다 그는 창고로 올라가 소모품을 전달해준다. 직접 창고 앞으로 찾아가겠다는 직원들도 있었으나, 시간을 맞추기가 애매하다. 또 그는 아직 사업부에 대한 근거 없는 열정과 호감이 남 신입사원이다. 주로 키보드/마우스/모니터가 필요하다는 문의가 많다. 그는 문의를 받을 때마다 창고의 재고 중 하나를 전달해준다.


 아예 불출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 전까지 문의받은 물품들을 한번에 불출하는 게 나았을 터다. 하지만 그는 아직 그런 식의 일처리 방법을 배우지 못했으며, 또 이외의 맡은 일도 없다. 팀에서도 아무 말 없는 것이, 창고 관리도 그의 주된 업무 중 하나인가 보다. 그는 하루에도 수차례, 심할 경우에는 창고를 다녀온 지 20분 만에 또 불출해달라는 문의를 받아 다시 창고로 올라간다. 그때는 다들 그렇게 일하는 건 줄 알았다. 얻은 게 아주 없진 않다. 이렇게 노가다스럽게 창고를 오가며 무조건적인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에 대한 평이 좋아진다.

 - 얼굴 사원님한테 요청하면 엄청 빨리 갖다줘!



7) 면접 안내

 인사팀으로부터 요청받아 시작하게 된 또다른 부업이다. 면접자들이 올 시간에 맞춰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다가, 면접자들을 대기실로 안내한다. 대기실에서 면접실로 안내하고, 면접이 끝나면 다시 대기실로 데려온다. 수고했다고 훈훈한 말 한마디를 건네고 귀가시키면 된다. 원래는 면접비 불출까지 담당했었는데, 못미더웠는지 면접비는 인사팀에서 맡겠다며 가져가버렸다. 상관없다. 그는 아직 면접 안내 업무에 환상이 가시지 않은 상태다. 면접 안내를 하며, 자신이 이 회사의 얼굴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을 즐긴다.



8) 이외 각종 업무

 근무복, 명함, 퀵 부르기, 퀵으로 물건 받기, 창고 올리기, 소모품 불출 및 구매 문의, 휴가 문의 등




 위의 각종 업무들을 수행하다가, 저녁 6시나 7시가 되면 퇴근한다. 팀의 다른 상사들과의 협업은 거의 없다. U 과장이 후에 현장직 관리 업무를 그에게 넘기긴 했으나, 해당 업무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솔직히 말해 자신의 팀이 무얼 하는 팀인지, 자신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파악이 되지 않는다.


 기분이 나쁘진 않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취업준비의 구렁텅이 속에서, 50번이 넘는 면접을 보면서 주구장창 탈락만 하던 그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그였기에, 지금의 상황이 꿈만 같기도 하다.

그렇게 탈락만 하던 나인데, 이곳에서는 이렇게 많은 이들이 나를 찾아주고 필요로 하는구나!


 하지만, 이러한 바쁨 속에서도 그는 뒷맛이 개운치 않다. 그의 신경을 계속해서 거슬리게 만드는, 형용하기는 힘들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무언가가 있다. 신입사원은 다 그런 거겠지. 그의 동기들은 IT엔지니어지만, 교육을 듣고 난 이후 아직까지 다들 하는 일이 없다. 업무 시간에 까페에 나가 음료만 마시고, 실무에는 아직 한 명도 투입되지 않은 상태다. 그런 동기들에 비하면, 그는 실무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바쁘고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신경이 거슬린다고 생각될수록, 그는 몸을 더 움직인다. 문의받은 소모품 불출하러 창고를 한 번 더 올라가고, 전표 하나 더 친다. 그렇게라도 하면서 불안함을 없애려고 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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