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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Apr 28. 2024

42 - 전염병 검사전표 (4)

결산, 파견직 업무

 그가 맡은 No.1 Main Job이었던 전염병 검사전표는, 약 1년 뒤 다른 팀원에게 넘어가게 된다. 원래 전표 처리라는 업무 자체는, 파견 계약직인 W 사원의 담당이다. 공교롭게도 그의 입사 시기와 W 사원의 퇴사 시기가 겹쳤었다. 그리 길지 않은 인수인계 후, 후임자인 W2 사원은 곧바로 '월 마감'을 맞이한다. '전표 처리'라는 업무는 필연적으로 회계와 엮이기 때문에, 당월 마지막에서 익월초에 이뤄지는 '마감' 때에 상당히 힘들다고 한다. 훗날 들려오는 이야기에, W2 사원은 초창기 업무 적응이 너무 어려워 울었다고 한다.


 W 사원의 퇴사와 W2 사원의 적응기로 인해, 사업지원팀 업무가 약간 휘청인다. 이 모습을 본 사업부장은 '여직원 리스크를 헷지'하라며, 갓 입사한 그에게도 전표 업무를 가르칠 것을 지시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업지원팀의 상사들은 사업부장의 이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다만 흉내는 낼 심산이었던 듯싶다. 이러한 배경 속에 그에게 할당된 업무가 바로 '전염병 검사비 처리' 업무다. 원래는 W2 사원이 해야 할 업무를 그가 분담해서 맡은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경험을 통해, 그는 파견직 사원들의 업무 고충을 조금이나마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1) 본인이 사용하지 않은 비용을 취합하여 처리

   2) 수직적이고 보수적인 이 회사에서는 모든 전표와 증빙을 출력하여 수기 제출

   3) 수직적인 관리 부서 대면, 반려 기준 불투명

   4) 증빙 오류, 상황 설명 등의 책임은 전적으로 취합자의 몫



 현장직 관리 업무와도 비슷하다. 업무의 시작과 끝에 관여할 여지는 없다. 업무의 시작은 이미 비용을 발생시켜 버린 직원들이며, 업무의 끝은 비용 처리를 승인하는 재무팀이다. 중간에서 행정 처리(증빙 취합/전표 작성)하여 제출할 뿐이지만, 관리 부서에서 호출하는 것은 비용을 쓴 당사자가 아닌 중간 취합자다. 왜 증빙이 이것뿐이냐. 이건 왜 검사비가 다른 것들보다 크냐. 상황이 뭐냐. 알 턱이 있나. 제출자는 그때마다 가면을 쓰고 죄송하다 말할 뿐이다. 반려받은 전표를 갖고 내려와, 당사자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묻는다.


 그는 이러한 중간자 역할을 하며, 작지만 은근한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는다. 하지만 그가 받는 스트레스는 다른 파견직들의 스트레스에 비해 적은 편이었으리라. 그는 '전염병 검사비 전표' 하나만 맡았다. 파견직 사원들은 온갖 종류의 비용을 모두 맡으며, 적용하는 계정과목의 수도 많다. 전염병 검사비 전표는 비용 중에서도 그나마 덜 까다로운 편에 속한다. 아니, 제출자인 그가 정규직이어서 은연중에 더 쉽게 결재해 줬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조차도 스트레스가 없진 않았다.



 모종의 사유로 인하여, W2 사원 이후 W3 사원이 입사한다. 경력직인 W3 사원은 말수가 적어 눈에 띄는 인물이 아니었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일이 제대로 되고는 있는 건지 파악이 안 될 때도 많았다. 업무가 조용하다는 것은, 어쨌든 큰 문제가 터지진 않는다는 것이다. 이 경우 둘 중 하나다. 일을 정말 잘하고 있거나, 아니면 일을 아예 안 하고 있거나. W3 사원은 전자였다.


 W3 사원 입사 후, 그는 '전염병 검사비 전표' 업무를 W3 사원에게 인수인계하라고 지시받는다. 입사하여 처음으로 맡았던 정식 업무다. 그는 온갖 신경을 써서 인수인계를 한다. 자신이 받아왔던 스트레스까지도 넘어갈 것이라는 생각에 약간 미안하기도 하다. 이후 몇 번 사고가 날 수도 있으려나 생각했지만, W3 사원은 너무나도 능숙하게 전염병 검사비 전표 업무를 처리해버린다.


 전염병 검사비 전표 업무를 넘겼던 시기는, 전염병이 누그러들어 업무도 편해진 시점이었다. 그는 자신의 첫 1년을 함께한 업무를 넘기는 것에 대해 조금 서운하기까지 했다. 그런 애증의 업무를 너무나도 쉽게, 아무렇지 않게 처리하는 W3 사원이 내심 차갑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전염병 검사비 전표 업무를 넘기며, 그는 결산을 해본다. 커리어에 있어서 경력기술서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물론, 취업 시장에서 이 업무가 통할 리는 만무하다. 전염병 검사비 전표 처리 능력자를 두 팔 벌려 환영하는 회사는 없다. 전표 처리 업무는 성과랄 것이 딱히 없고, 그리 전문성 필요한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의미를 남겨야하지 않겠는가. 가뜩이나 처음으로 맡아서 나름 열심히 했던 업무인데. 그는 시스템에서, 자신이 처리했던 전표들의 목록을 엑셀로 다운로드한다. 엑셀 데이터를 약간 가공한 뒤 '피벗 테이블'을 건다.


  - 2월부터 1월까지 딱 1년

  - 전염병 검사비 전표 처리금액 : 2,172만

  - 처리 전표 : 388건



 시스템에서 출력한 숫자는, 그가 간직하고 부풀렸던 추억에 비해 담백하고 건조하다. 그는 자신이 친 전표가 억 단위를 넘길 것이라 예상했으나, 실상은 반의 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처리한 전표 수도 기대에 못 미친다. 일주일에 약 3일, 순수 시간으로는 거의 하루 정도를 써가며 전염병 전표만 처리한 그다. 투자 대비 성과가 미미하다. 그의 능력 부족일 수도, 아니면 얼마 되지 않은 전표임에도 계속된 반려와 증빙 불충분에 튕기고 튕겨 시간만 잡아먹은 것일 수도 있다.


 그의 첫 메인 Job이 그렇게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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