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 2, 타인의 정보
잊고 있었지만, 그는 IT사업부의 인사 담당자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조직도와 인원 현황 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계속해서 이어졌던 조직도 수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을 무렵, 사업부장의 관심이 다른 곳에 꽂힌다. 이 시기 사업부장이 꽂혔던 정보는 '출생년도'와 '승진년도'다. 두 정보 모두 민감 정보에 해당한다. 팀원급은 스스로의 정보만 열람 가능하고, 타인의 정보는 접근이 불가하다. 팀장급도 자신의 팀에 속한 부서원들만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업부장이 원하는 것은, IT사업부 전체 임직원들의 나이다. 조회 권한을 갖고 있는 이는 인사팀과 사업부장뿐일 터다. 사업부장은 자신의 그룹웨어 ID와 비밀번호를 그에게 알려준다.
그가 다니는 이 회사 시스템은, 오래전에 구축한 구식이다. 한 화면에서 보여주는 정보가 상당히 제한적인 데다, 사업부 전체의 정보를 일괄적으로 출력하는 등의 기능이 상당히 떨어진다.
안타깝게도, 사업부장이 꽂힌 정보들은 일괄 출력이 불가능하다. 즉, 임직원 이름을 하나하나 검색한 뒤 클릭해서 들어가야지만 정보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나마 승진년도는 나와 있지도 않다. 입사년도를 기반으로 추측해야 한다.
1. 출생년도
IT사업부의 인원은 100명이 넘었다. 그는 임직원들의 이름을 일일이 클릭하여, 인사 정보를 열람한다. 조회하니, 확실히 민감 정보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 출생년도
- 가족관계
- 주거지 주소
- 이전 이력
- 평가 이력
- 기타 등
우연인지 무엇인지, 그는 군대 시절에도 이런 식으로 타인의 개인 정보를 열람할 수가 있었다. 군대라는 특성상, 해당 병사에 대한 지휘관의 면담 내용이 꽤 잘 기록되어 있었다. 더불어 관심병사 등급, 관심병사에 속했었는지 이력도 적혀있었다.
지금 이 회사에서도, 그는 다른 임직원들의 민감한 부분까지 파악할 수 있는 일종의 무기를 손에 넣은 것이다. 하지만 군대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그는 이러한 정보들에 별 관심이 없다. 누가 어느 대학을 나왔고, 어느 지역 출신이고, 지금은 어디에 살고 있고, 첫째인지 막내인지, 결혼을 했는지 등을 알고 싶지가 않다. 어찌 보면 그는 타인에게 지독하리만치 관심이 없는, 대부분의 관심이 스스로에게 향하는 일종의 나르시시스트라고 볼 수 있겠다.
그는 항상, 타인의 정보를 잘 기억하는 이들이 신기했다. 물론 그도, 친분이 있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정보는 기억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는 소수일 뿐이다.
그가 회사에서 만난 적지 않은 이들이, 타인의 학벌 및 정보를 꿰다시피 했다.
- 저 사람은 어느 대학교를 나왔고, 그 사람과 동문이고, 그래서 둘이 친하고.
- 이 사람은 어느 대학교에 어느 대학원을 나왔고, 그래서 그 대학원 지역 쪽에 살고 있고.
- 요 사람은 집안에서 장남이고, 결혼을 해서 지금은 애가 있고.
- 조 사람은 막내이고 지금 자취 중이며, 사는 지역은... ...
타인에 대한 정보가 많다는 것은, 배경 지식이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대학은 어느 지역에 있고, 뭐가 유명하고, 그 대학/지역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다' 는 등이다. 배경 지식이 많을수록, 처음 보는 사람과도 대화의 물꼬를 트기가 수월하다.
- 어느 대학 나오셨다고요? 아 거기 OO과가 유명하잖아요?
- 오 맞아요! 어떻게 아세요?
- 딱 알죠. 그리고 그 앞에 먹거리 골목도 있고요
- 맞아요. 거기가 핫플레이스죠... ...
그가 보기에, 타인의 정보를 많이 알게 되면 이를 근거하여 판단이 빨라지곤 한다.(그는 이를 양날의 검이라고 생각한다) 이 대학 나와서 이 지역 살고 있으니, 아 이 사람은 대강 이런 식이겠구나 하는 식이다. 기존 지식을 바탕으로 빠르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후 얻어낸 정보를 더해서 나름 성공률이 높은 결론을 도출해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방식을 부러워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하고자 노력하지도 않았다. 대학교, 지역 등의 배경지식이 별로 없으니, 판단할 근거 자체가 없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겪은 그대로 사람을 판단하고자 하는 주의다.(이 또한 양날의 검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그는 인사 업무 담당자로서 적합하기도 부적합하기도 하다. 임직원의 인사 정보를 남용하지 않고, 겪은 그대로 판단하며 미래 가능성을 꺾지 않는다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주어진 정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불확실성에 기반하며 의사 결정이 느리다는 측면에 있어서는 확실히 인사 담당자로서 부적합하다.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기업 측면에서 보자면, 부적합에 더 가까운 듯하다.
약 이틀에 걸친 단순 작업 끝에, IT사업부 임직원들의 출생년도 기입이 끝난다. 사업부장은 IT사업부의 평균 나이를 궁금해했다. 계산해 보니 결과는 약 37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