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더 뷰티 앤드 더 블러드쉐드

ALL THE BEAUTY AND THE BLOODSHED

by Vera Ryu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를 보고.


Cucurrucucu Paloma - Caetano Veloso



1. 낸 골딘

은 예술을 조금 좋아한다면 다들 아는 거물이다. 거물. 이라기보다는... 마더? 기록자?

아무튼 그를, 특히 그가 과거에 연인에게 죽기 직전까지 맞고 찍은 사진을 많은 사람이 좋아한다.

그의 전성기가 에이즈로 사람이 죽어나던 80년대여서 그런지, 나는 그 역시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퀴어 커뮤니티에 있었고, 퀴어 커뮤니티에 있는 사람들은 폭력에도 종종 노출되고 또 자살을 많이 하기도 하니까. 그래서 당연히 그에 대한 회고록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좌석에 앉은 순간부터 그는 이미 시위를 하고 있었다.


"충격, 낸 골딘 여사 살아계심!"



2. 언니, 바바라

이 다큐는 낸 골딘이라는 인물을 주축으로 해서, 그가 속했고, 여전히 속한 커뮤니티, 즉 LGBT 커뮤니티와 약물 과의존 환자들의 이야기와 싸움을 그린다.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가 낸 골딘의 언니 바바라로 시작하고 끝이 나며, 심지어는 제목도 언니의 정신과 주치의가 상담 과정에서 환자의 발언을 바탕으로 쓴 소견서 내지는 상담 일지에 적힌 글을 인용한 것이다.

(참고로 나는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라는 말이 정신과 상담 일지에 존재하기엔 너무 어색하고 낭만적인 단어들이라 생각한다)


낸 골딘은, (영화에서는 그 과정을 생략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지만) 언니의 죽음을 집요하게 파헤쳐왔다. 그도 그럴 게, 엄마가 하지 않았던 보살핌을 언니가 대신해주었고, 그러면서 언니와의 친밀감이 각별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부모님의 '사고사'라는 변명을 믿지 않는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언니의 죽음이 사고에 의한 것으로 둔갑하는 그 순간, 다시 말해 사실과 다른 것이 역사가 되는 것을 목격한 바로 그 순간을 그는 다큐의 가장 초반에 내세워 이야기한다.


그 순간은 그가 앞으로 모든 ‘기록되지 않고 사라져 결국엔 왜곡되고 마는 주변의 존재’를, 사실대로 남겨두겠다고 결심하게 되는 순간이었기도 하다. 그 이후부터 낸은 평생을 '더러운 현실'이 아름다운 기억으로 둔갑하지 않도록 (어쩌면 강박적으로) 그것을 경계한다.


낸이 기록한 모든 사람의 원형이 그의 언니였을 것이다. 딱 평균적인 사춘기 여자애다운 삶을 살았고, 가끔은 여자애들에게도 호감을 품었던 언니. 그러나 힘이 세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던 (정신과 의사의 소견으로 미루어 보아, 정작 정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엄마였다) 부모에 의해 왜곡된 삶으로 기록된 언니.



3. '픽션'의 진짜 정의

최근에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다시 읽었다. 거기에는 해설도 있었는데, 처음엔 어떤 고리타분한 교수의 점잖은 말이겠지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해설의 골자는, 이 소설(Fiction)은 엄밀히 말하면 모두가 오해하듯이 작가의 자서전으로 볼 수 없다는 것, 박완서라는 작가는 픽션이라는 글의 장르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고, 그 장르에 걸맞은 글을 써낸 흔치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소설'과 '자서전'은 각각 허구와 사실의 장르가 아니던가? 아니다. 소설(Fiction)은 일상의 기억들에 살을 붙여 새로운 맥락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고, 그래서 사실에 대한 검증을 명확히 해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자서전(Autobiography)이라는 장르와는 차별점이 있다는 게 소설에 대한 설명. 그러므로 이 픽션은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판단보다, 작가 개인의 기억과 그로부터 느끼고 만들어낸 의미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4. 그 모든 아름다움과 (내 마음의) 유혈사태.

실제 일어난 일과 기억 속 재구성의 차이를 실감하게 된 건 고작 어제의 일이다. 나는 좀 어리석어서 내가 경험한 것과 그것으로부터 느낀 내 생각과 느낌이 정확한 편이라고 믿는 편인데, 이런 나에게도 기억의 부정확성이 있음을 바로 어제 실감하게 된 것이다.


나는 보통 이별을 하면 다음의 과정을 겪는다: a. 상대를 증오하고 상처받은 일을 곱씹음. b. 내가 상처 주었던 일들이 생각나며 미안함을 느끼고 반성함. c. 서로 잘못을, 그리고 아름다운 추억을 적절히 주고받았다고 결론 내리며 이별을 졸업함.


보통 3단계에 오게 되면 이미 시간이 많이 흐르기도 했고, 미운 감정은 이미 흘러갔기에 추억이 많이 남는다. 그러면 나와 함께했던 이전의 사람들도 편안히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내가 이 단계를 ‘졸업’이라고 일컫는 이유다.


유일하게 이 규칙이 통하지 않은 연애가 있었다. 마지막이 너무 괴로운 나머지 나는 관련된 모든 것을 한 번에 삭제하는 선택을 했고, 그래서 그 사람과 관련해서는 기억 속에도 남은 것이 얼마 없다.


남은 게 사라지자 요상한 미화가 일어났다. 그는 꿈에도 나왔고, 거기서는 우리가 행복했던 아주 짧은 시간, 육체적인 쾌락과 편안함과 물질적인 것, 서로를 사랑했다는 사실에서 느껴지는 애틋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사랑을 위험에 처하게 둔 외부의 방해와 억압.

그것들이 한데 뭉쳐 기괴할 만큼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했다.




지긋지긋하고 지저분한 연락이 또! 왔다. 사실 이 연애에 있어서만큼은 아직 졸업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어떤 맞지 않는 주기를 두고 서로를 생각하고 연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잘 잊고 지내던 나는 이 마지막 연락을 기점으로 과거의 부정적인 것들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는데, 그건 다음과 같다.


- 밤새 마시던 술과 숙취

- 사랑을 내세워 미룬 중요한 일들

- 의심과 우울과 집착

- 대화 없음

- 생각에 잠 못 이룬 밤들...


그러다 보니 또 우울해졌다. 애매한 쓸쓸함과 미적지근한 그리움에 그와 만나던 중 혼자 휘갈겨 놓은 메모를 찾아 읽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거기에서 그가 나에게 한 일종의 '만행들(이면서 그가 나에게 서운하게 굴었던 일들의 리스트)'을 발견했다.

그리고 세상에, 그곳에서야말로 '유혈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나의 멍들고 피난 자화상이었다. (참고로 이전 연애 때의 내 모습은 거의 다 삭제되었다. 고로 나는 이번에 거의 처음으로 그때의 나의 모습을 제대로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왜 그동안 힘들었는지, 왜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고 굳게 믿었는데도 그렇게 맞지 않고 괴로웠던 건지, 그리고 왜 우리는 이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인지.


그 해답이 그 짧은 메모에 들어있었다.



5. 해피투게더

에서는 보영의 피투성이 얼굴이 화면에 크게 잡힌다. 낸 골딘의 '그 작품'을 오마주 한 장면이다. 스크린 속 아휘와 보영 역시 Toxic Relationship에서 좀처럼 벗어나질 못한다.


나는 이 영화를 제법 좋아했다. 제목이 암시하듯 둘이 함께 있던 순간만큼은 그들이 정말로 행복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정말 그러기도 했을 거다. 나도 함께 있을 땐 정말 행복했다. 그러다가 정말 아휘와 보영 같은 관계에 갇혔던 것 같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와 보영의 시간을 남몰래 꺼내 봐, 아름답다며 탐닉하곤 했다. 이제는 영화의 결말이 새롭게 보인다. 과감히 보영에게서 벗어난 아휘, 보영을 떠난 아휘, 장을 발견한 아휘의 모습. ‘보영’은 어딘가에서 이불을 끌어안고 울고 있을까? 모르는 일이다. 그도 '아휘‘가 되어 이미 돌아갈 곳을 찾았을지도 모르는 일. 우리의 이구아수는 서로 다른 곳에 있었다.


확실한 건 이제는 나도 돌아갈 곳을 찾았다는 것이다.




2023.08.27.

매거진의 이전글근육통과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