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 데이즈’ (2024)
이 영화는 근근이 살아가는, 사회에 분명히 존재하나 대부분은 천시받기도 하는, 그렇지만 사회가 돌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직업을 가진 사람의 일상을 그린다.
매일 반복되면서도 조금씩 변주되는 일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짐 자무시의 <패터슨>이 떠오르기도, 고립되고 도태된 중년 이후의 삶을 보여주며, 그들의 삶이 결국 ‘혈육’에 의해 균열하기 시작하는 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 웨일>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렇지만 여기엔 고요한 도쿄의 풍경과, 조용한 일상과 대비돼 복잡하고 어려운 꿈이 존재한다. <퍼펙트 데이즈>다.
<파리, 텍사스>, <베를린 천사의 시> 등의 영화로 알려진 빔 벤더스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도쿄의 청소부 ‘히라야마’의 소박하지만 충만한(그리고 어쩐지 힙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아날로그 일상을 보여준다. 주중에는 시부야의 공공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과 중간에 사진을 찍거나 올드 락을 듣는 등 소소한 취미를 보여주고, 주말에는 독서로 조용히 지내는 일상을 보여준다.
전반부에서는 고독하게 지내는 소시민의 일상을 보여주는 데 그치는 듯하지만, 점차 일상이 반복되며 인간관계가 심화하는 모습, 또는 심화한 인간관계의 뿌리를 조심히 캐내 털어내듯 조금씩 히라야마의 과거와 주변인을 보여준다.
<퍼펙트 데이즈>는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도쿄 시부야의 리뉴얼된 공공 화장실 17곳을 주목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처음 기획되었다. 그러나 도쿄 올림픽이 코로나19 등의 이유로 인해 연기되면서, 처음엔 다큐멘터리로 기획되었던 이 프로젝트는 빔 밴더스 감독 특유의 픽션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경력의 후기로 오면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피나>와 같은 다큐멘터리로 다시금 주목받은 감독의 이력을 생각하면, <퍼펙트 데이즈>는 빔 밴더스와 딱 맞는 프로젝트로 느껴진다. 도쿄의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의 이야기는 픽션이지만, 정적이고 관찰하는 이미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에 가깝기도 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빔 밴더스는 이 영화를 통해 조용히 살아가고자 하는 고독한 중년 히라야마를 건조하면서도 애정 있는 시선으로 그린다. 건조하게 그리지만, 그 시선은 방치가 아닌 애정에서 기인한 자유로운 방목에 더 가깝다.
매일 같은 일상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사실은 조금씩 변주되고 복잡해지는 히라야마의 일상을 지켜보는 것도 이 작품의 매력이다. 히라야마는 철저히 고립을 원한다. 항상 혼자 다니고 혼자 할 만한 취미만 가지며 과묵하다. 그렇게 해야 조용히 일상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게임에서 한 장면과 다른 장면 사이의 시스템적 공백을 메꾸는 ‘로딩 스크린’과 같이 히라야마의 밤과 아침 사이에는 그가 꾸는 꿈의 이미지가 반드시 나타난다. 각종 화면이 겹쳐 그 의미를 알 듯 말 듯하게 하는, 이야기라고는 짐작할 수도 없는 이미지를 고려하면, 그의 내면은 상당히 복잡하고 혼란스러워 보인다. 오히려 그렇기에 히라야마가 가장 원하는 것이 일상의 고요함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그토록 원하는 적막은 쉽게 유지되지 않는다. 타인이 있기 때문이다. 고립을 선택해도 주변에 존재하는 타인의 존재까지 막을 순 없는 법이다. 동료 청소부 타카시는 히라야마의 고집스러운 침묵에도 그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마음대로 자신의 여자친구를 소개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의 차를 운전해 이런 저런 곳에 데려가며, 여자친구와 하룻밤 보내기 위한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히라야마의 카세트테이프 컬렉션을 팔자며 테이프 가게로 이끈다.
히라야마의 일상에는 타카시 말고도 제법 많은 ‘타인’이 존재한다. 이러한 타인의 존재가 흥미로운 이유는, 삶의 깊은 부분을 공유하지 않는데도 하루의 일정한 시간을 함께한다는 점에서 그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이 타카시라는 청년의 이야기는 히라야마라는 주인공 곁에 등장하는 인물임에도 영화 전체적으로도 이야기의 발전을 불러온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가 없던 시작부터, 그가 나타나 여자친구를 데려오며 많은 사건을 일으키는 중간, 그리고 그가 사라지고 나서도 그를 좋아했던 공원의 동생이 히라야마를 다시 침묵에서 끌어내는 마지막까지. 이런 에피소드를 보고 있으면 인간은 자신이 원한다고 해도 절대로 완전한 고독에 도달할 수 없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히라야마는 강박적으로 일상을 일정한 형태로 유지하려 한다. 동그라미처럼 순환하는 인생. 이런 그의 ‘동그라미 그리기 프로젝트’는 매일 조금씩 다른 이유로 실패한다.
올해 3월에 긴 여정을 마친 라디오 프로그램,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는, DJ 김창완이 엽서로 받은 사연에 직접 쓴 답을 다시 발송해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많은 좋은 사연과 답변이 있지만, 역시 많은 사람들이 최고를 뽑는다면 ‘동그라미’ 일화를 선택할 것이다. 회사 생활이 완벽하지 않아 마음이 힘들어 마르고 있다는 사연자의 이야기. 그 사연자를 다그치지 않고 김창완은 40여 개의 동그라미를 써서 보낸다. 그리고 ‘찌그러져도 동그라미는 동그라미’라고 말한다.
히라야마의 생활을 보여주는 영화에서도 이러한 태도가 보인다. 히라야마의 마지막 눈물은 웃는 것인지 아닌지 애매한 얼굴이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아 고독을 선택했어도 고독할 수 없는 데서 오는 괴로움. 그러나 그 괴로움 속에서도 소소한 즐거움을 발견하고 새로운 관계를 갈망하는 자신을 볼 수밖에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 잘 드러난 장면이다. 히라야마는 오늘도 살짝 찌그러진 동그라미를 그렸고, 그럼에도 모두가 그것을 ‘동그라미’라 부를 것이다. 7월 3일 개봉.
원문: #아트인사이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06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