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사울 레이터 100주년 기념 에디션’
조용한 사진가의 방대한 아카이브
사울 레이터 100주년 에디션은 작가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그의 작품 활동을 돌아볼 수 있도록 작품을 재구성한 사진집이다.
사울 레이터의 작품 중에는 이미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진들이 있다. 영화 <캐롤>의 영감이 된 것으로 유명한 흐릿한 거리 사진,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커리어의 정점에 있었다고 평가되는 ‘하퍼스 바자’ 매거진에서 일하며 찍은 패션 사진이 그것들이다.
이번 100주년 에디션은, 이처럼 이미 유명하고 널리 알려진 사진들 외에도, 그가 전 생애동안 꾸준히 남겨온 일상의 순간들, 그리고 회화 작업 중에서 그의 생애를 짐작해 볼 수 있는 작품을 세심하게 선정한 사진집이기도 하다.
시작-거리에서-패션-회화-사적인 시선 총 다섯 개의 장으로 나뉘는 사진집을 보고 있자면, 그의 사진을 고화질로 볼 수 있어 눈이 즐거운 한편 조용하고 자신을 노골적으로 알리는 것을 꺼렸던 이 겸손한 사진작가의 세계를 한눈에 파악할 기회이기도 하다.
‘나가서 사진을 찍는 것’의 어려움
거리 사진을 좋아한다.
이것은 내가 지난주에 일본 ‘여행’씩이나 가서 찍은 필름 사진을 아깝게 잃어버렸음을 방금 깨닫고 절망감을 느끼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 거리 사진은 특별하다. 매일매일 무심하게 지나치는 풍경에서 작가마다 찾아내는 피사체와 스토리가 다르다는 점, 일상적인 다양성은 거리에서 찍는 사진의 가장 큰 강점이다.
많은 사람이 경험하는 풍경이기 때문에 사진을 보는 사람이 전후의 맥락을 보지 않더라도 쉽게 상황과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 또한 거리 사진이 즐거운 이유다. 이런 사진에는 우리가 반복적으로 느끼는 따분함과 앞으로 펼쳐질 인생에 대한 부담감, 너무 평범해 느끼는 무료함은 배제되어 있다. 어떤 순간이 포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에게서 느끼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 그게 내가 생각하는 거리 사진의 정수이다.
그런데 이런 거리 사진은 생각보다 찍기가 어렵다. 무엇보다도 일상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시선은 쉽게 얻을 수 없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사울 레이터가 2000년대에 들어와서 다시 회자된 것은 그의 패션 사진 때문이 아니라 거리 사진 때문이었다는 것은 이것에 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거리와 사람을 찍은 많은 작가의 사진들 중에 사울의 것이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 것의 증명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거리 사진이 다른 사진들보다 더 어려운 것에 관한 현실적인 이유를 하나 더하고 싶다. 초상권의 문제다.
거리 사진의 가장 큰 위험은 일반 시민을 타자화하고 대상화한다는 점에 있다. 이는 아카이브에 기록은 되더라도 방송에는 모자이크 되어 나가는 시민의 얼굴과는 다르다. 사진 작품에 모자이크를 하는 것은 검열이 된다. 사진 자체가 못생겨 지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서 주로 피사체가 되는 일반 시민의 동의를 얻기도 어렵다. 사진이 어디에 어떻게 쓰일 줄 알고? 요즘은 초상권에 ‘빠삭해진’ 시민들이 많아졌다.
@rex_papi. 이 계정의 주인은 케냐 거리의 사람들에게 무작위로 어깨동무를 하며 (대부분은 적대와 의심으로 가득 찬) 시민들의 반응을 기록한다. ‘숏폼 시대의 거리 사진’이라고 할까. 그가 언제쯤 어떤 이유로 기록을 그만두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그가 따로 설명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그 이유를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울 레이터는 이런 거리 사진의 치명적인 단점을 교묘하게 잘 피해 간 작가다. 그리고 그렇게 피해가는 것이 예술가에게는 지키면 좋은 윤리적 미덕임을 잘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기록한 거리 풍경 속 사람들은 대부분 얼굴이 잘 보이지 않거나 가려지거나 뒷모습만 나온다.
간혹 누구인지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얼굴이 잘 나온 사진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오늘날 보았을 때 ‘저것이 나야’라고 판단하기 어려운 이미지들이다. 어떨 땐 중형 카메라를 몸의 상반신에 딱 붙이고 사람들이 기분 나빠하는 것을 감안하면서까지 피사체와의 거리감을 없애며 사진을 찍었던 비비안 마이어와는 확실히 다른 스타일이다.
그는 평생동안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작품들 대부분은 세간에 잘 공개되지 않았다. 20세기 후반에는 생활고를 겪을 정도로 돈이 필요했음에도 방대한 아카이브를 풀지 않은 것은 그가 기록한 시민들에 대한 존중이 아니었을지. 사울은 사진을 구성하는 요소부터 사진이라는 매체를 다루는 방식까지 모두 세심함이 드러나는 작가다.
마지막 장은 누드 사진으로
사울의 누드 사진 역시 특유의 조심스러운 시선이 들어있다. 사진집의 마지막 장은 그가 생전 알고 지내던 여성들과 작업한 신체 사진이다. 이렇게 편집한 것은 그의 작품 중 가장 나중에 알려진 작품들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사진에 대한 태도를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이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예술가가 찍은 여성의 사진 하면 떠오르는 관능적이고 도발적이며 어떨 땐 난잡하기도 한 이미지와는 다르다. 정적이고 나른하고 포근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가 잘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다. 라포가 형성된 사진은 정말 아름답다. 피사체가 촬영자에게 갖는 애정을 직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자신이 찍히는 입장에서는 아주 보수적으로 굴다가도, 카메라나 붓, 그리고 펜을 잡으면 이상하게 대담해지는 경우가 많다. 생각해 보면 좀 부끄러운 일이다. 손에 무언가를 쥐었다는 이유만으로 권력을 쥔 것으로 알고, 보이는 모든 것을 사물로 본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울은 그것이 부끄러운 짓이라는 것을 잘 알았던 작가였던 것 같다. 그것을 아는 작가는 정말 흔치 않다.
그렇기에 그는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작가다.
원문: #아트인사이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7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