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둘째 아이와 함께 정기검진을 다녀왔다. 갓난 아기일 때부터 입, 퇴원을 여러 번 반복하고, 계속해서 정기적으로 병원에 내원해야 하는 둘째가 안쓰러워서, 피검사를 할 때마다 장난감을 사주다 보니, 어느새 둘째의 머리속에 ‘병원 = 장난감’ 이라는 공식이 생겼나 보다.
생후 50일 경부터 병원 신세를 여러 번 졌던 우리 둘째는, 겨우 초등학생이지만 너무나 의젓하게 진료를 잘 받는 어린이로 자라났다. 대여섯살 때부터는 울지도 않고 씩씩하게 채혈을 하고 있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우와~ 너무 잘한다” 칭찬을 해 주고,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 둘째는 씩씩하게 피검사를 받는다.
둘째를 출산했을 때, 나는 엄마로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그리 건강하지 못했다. 첫째의 육아도 힘들었지만, 그 당시 남편과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가정을 잘 꾸려 나갈 자신조차 없는 상태였다. 예상치 못하게 둘째를 임신하고 출산하게 되어, 나는 충격속에 빠져 있었다.
둘째는 생후 50일 경이 되었던 어느 날 갑자기, 울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고, 축 처져서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이상하게 생각되어 집에서 가까운 S 병원의 응급실을 들르기는 했지만, 아무도 둘째가 큰 병을 갖고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수액을 맞으려고 아이의 피를 뽑았는데, 그 순간 응급실의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우리 부부 모두 시간이 멈춘 듯, 행동을 멈추었다. 피 색깔이 분홍색 딸기우유 색깔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피 색깔에 간호사와 의사도 매우 당황했었다.
그 때부터 둘째의 기약 없는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피검사를 수십 차례 했는데도,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내지 못하고 있었다. S 병원에서 둘째의 병명을 찾아내지 못하여, 우리는 앰뷸런스를 타고 전원되어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향했다. 내 평생 처음으로 ‘삐용~삐용~’ 하는 앰뷸런스를 타보았던 순간이었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도 수십차례 피검사를 해서 겨우 밝혀낸 것은, 둘째의 피 속은 대부분 중성지방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얀 색의 지방이 가득 차 있어서, 혈액이 딸기우유 분홍색으로 보였던 것이다. 둘째는 그 즉시 교환수혈 (혈장교환술) 이라고, 어찌 보면 투석과 비슷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둘째는 스스로 지방을 소화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진단되었기 때문에, 둘째의 몸속의 피를 그대로 밖으로 빼내고, 그 곳에 수혈 받은 다른 이의 피를 채우는 것이 교환수혈 이었다. 둘째는 여러 차례 교환수혈을 받았고, 둘째의 몸속에서 나온 피는 거의 흰색이었다!!! (그 때의 사진을 나는 모두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둘째의 진단 병명은 [LPLD, 지질 단백 분해 효소 결핍증] 이라고 했다. 둘째의 질환이 매우 희귀한 것이었기에, 담당교수님이 도움을 주셔서, 우리 부부는 의학 논문들을 찾아보며 공부를 했었다. 주위의 수많은 의학도들이 함께 내용을 찾아보고 걱정해 주었다. 둘째의 상태는 호전되는 것 같다가, 다시 나빠졌다가를 반복했다. 담당 교수님은 그 당시 엄마인 내게, 예후가 불량할 지 모른다고 마음의 준비까지 시키셨다.
나는 그 때 얼마나 많은 기도를 했는지 모른다. 감사하지 못했던 내 삶과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회개와 감사의 기도를 얼마나 눈물흘리며 많이 했었는지…. 그 당시 너무나 감사하게도 다니던 교회에서 둘째의 소식을 알게 되어, 성도분들이 모두 함께 둘째를 살려 달라고 매달려서 기도했다.
그렇게 내 원망과 화를 모두 내려놓고, 내게 주어진 모든 삶이 감사하다 생각하게 된 후에, 둘째는 기적적으로 상태가 좋아져서 퇴원할 수 있었다. 그 때부터 둘째는 MCT 분유라는 특수분유를 먹게 되었다. 지방을 소화 못하는 아이들을 위하여, 지방을 일부 분쇄시켜 만들어둔 특수분유였다. 특수분유를 계속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했었는데, 다행하게도 우리나라의 매일 유업에서 유일하게 특수분유를 생산하고 있었다.
특수분유를 생산하는 것은 이익이 되지 않고, 공장을 돌리는 것만으로도 적자라고 들었다. 그리고 특수분유를 먹는 아이의 수요도 많지 않다. 그런데 그 소수의 아이를 위해서 특수분유를 생산해주는 매일 유업에 매우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둘째는 이유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돌이 지나서도 거의 MCT 특수분유 만을 먹었다. 평생을 특수분유만 먹고, 주기적으로 교환수혈을 해야 할 것으로 의료진과 우리 부부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기적적으로 우리 둘째는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다. 교환수혈도 돌이 지나서는 더 이상 하지 않았고, MCT 특수 분유 외에도 다양한 일반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몇 년 전에 매일 유업에 이 감사함을 담아서, 특수 분유를 제작하는 일에 ‘후원’을 하고 싶노라고 이메일을 보냈었다. 그런데 매일 유업 측에서 특수 분유 제작 사업에서는 후원을 따로 받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그저 감사함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를 보면, 문득 문득 “감사함”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건강하게 살아있고, 자라준다는 것 만으로 얼마나 감사한가 말이다. 지금도 여전히 세브란스 병원의 담당 교수님에게 정기 검진을 다니고 있고, 혈 중 중성지방의 수치는 일반 성인의 5배~10배 가까이 되긴 하지만, 그럼에도 둘째는 많은 일반 음식을 먹고 있다. 음식을 먹는 일 만으로 감사할 수 있다는 것, 항상 낮은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일이다.
앞으로도 건강하게 자라다오, 사랑하는 아이들아.
※ 우리는 몇년후에 세브란스 어린이병원에 기부를 했다. 아픈 아이들을 1명이라도 더 살려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을 담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