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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주하 Mar 15. 2024

나를 채찍질하고플때 말려줄 글

독서 후 사유하기 20240314-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인쇄하여 가슴속(사실은 가방 속이겠지만)에 간직하고 싶은 글이 생겼다. 오늘 이 부분을 읽다 눈물이 솟아 눈 안에 가득 고였다.


아래는 심채경 교수님께서 쓰신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의 일부이다. 본인 강의의 수강생들에게 보냈던 이메일들.

J학생,
안녕하세요. J 씨는 한 학기 동안 수업을 열심히 들어줘서 고맙게 생각하는 학생 중 하나인데, 만족스럽지 않은 성적을 받았다니 안타깝네요. 성적 처리한 것을 다시 한번 찬찬히 확인해 보았어요.
다른 것보다도, 첫 번째 과제에서 14점을 받았네요. 주제는 좋았지만 적절한 자료 검색 및 분석이 부족했던 것으로 제가 채점해놓았습니다. 사실 반 평균에 가까운 점수인데, 본인의 다른 점수에 비하면 부족하게 느낄 것 같네요. 두 번째 과제는 20점. 기말시험은 29점을 받았어요. 출석 점수는 10점 만점으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발표에서 추가점수 7점 받아서 총 80점인데, A+를 받은 학생 중에 가장 낮은 점수가 90점입니다. 발표나 과제 점수를 2, 3점씩 더 후하게 줄 수는 있겠지만, 전체 100점 중에서 10점이나 올려주는 것 은 어렵습니다. 원하는 답을 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나는 J 씨를 A+를 받지 못한 학생'으로 기억하고 있지 않아 요. 한 학기 동안 누구보다 진지하게. 온 마음을 다하여 수업에 임해주었던 모습을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지요. J 씨는 성 실함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으니까, 사회에 나가면 스펙보다 존재 그 자체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늘 행하는 대로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가만 보면, 사람은 타인을 위로할 때 마음속 깊은 곳의 또 다른 '나'가 듣고 싶은 말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심채경 교수님도 'A+를 받지 못한 학생'으로 기억에 남을까 봐 두려웠던 적이 있으신 걸까.


 나는 대학생활 내내 나를 '갈구고' 괴롭혔다. 사실 일생 동안 계속 그랬다.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건 확실한데 그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모두 결과에만 주목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를 'A+받지 못한 학생.'으로 생각할까 봐 너무나 두려웠다. 계속해서 채찍질하다 보니 몸과 마음이 망가져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나를 한계로 몰았었다. 그러나 좋은 성과를 내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동시에 나의 존재 그 자체(진지하게 온 마음을 다하는 '나')로 인정받길 간절히 바랐었다. 그때의 내가 이런 메일을 받았다면 왈칵 울어버렸을지도. 나를 너무 다그치지 말아야지.

L학생,
천문대 방문 보고서 잘 받았습니다. 번거로웠을 텐데 다녀오느라 수고 많았어요. 대중교통편이 좋지 않은 곳에 있어 선 뜻 추천하기가 좀 그랬는데, 차로 친구들까지 데리고 다녀와줘서 고마워요. 공연 연습으로 수업에 들어오지 못한 날 결석으로 처리되었 다는 얘기 들었을 텐데, 학교 규정에 따라 공연 당일이 아니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천문대 견학 다녀온 것으로 출석 인정하겠습니다. 내게 보낸 메일에 '죄송하다'는 얘기를 여러 번 적어서 마음이 쓰였습니다. 전공 수업과 관련 행사 때 문에 바쁘다는 것 잘 알고 있어요. 미래 진로에 관한 것이니 때로는 교양 강의보다 우선이라는 것도 알고,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살다 보면 본인의 삶에서 강의보다 더 중요한 것도 많이 생기니까 선택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죠. 강의에 빠지는 대신 중요하고 알찬 시간을 보냈다면, 그게 L. 학생의 삶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요. 그 '중요하고 알찬 시간'이란 전공 분야 행사일 수도 있고, 연애일 수도 있고, 신나는 취미 생활일 수도 있고, 돈벌이나 가족 문제, 또는 그저 좌절하는 데 들어간 시간일 수도 있죠. 다 중요한 시간이고 인생에 꼭 필요한 경험이에요. 본인의 삶에 있어 이 강의보다 더 중요한 것을 하고 있었으니까. 결석이 많다고 해서 죄송한 건 없어요. 출결 상황을 기록하는 게 내 직업의 일부라서 확인하는 것뿐이고,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해서 기분이 나쁘진 않아요. 시험도 마찬가지예요. 세세한 지식이야 인터넷 찾아보면 다 나오는 시대잖아요. 다만 문화센터도 아니고 대학이니까, 평가하고 성적을 내야 하니 과제도 내고 시험도 보는 것이지, 시 험을 못 봤다고 해서 내가 불쾌해하는 것도 아니고, 점수가 낮은 학생들을 한심하게 생각하지도 않아요. 이런 강의가 있다는 것을 접한 순간부터, 강의를 듣겠다고 결정하고, 백 퍼센트 출석은 아니지만 수업을 듣고 과제도 하 는 동안 천문학뿐 아니라 과학 전반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고, 혹시 있었을지도 모르는 막연한 거부감 같은 것도 좀 줄어들었다면,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과학관이나 천문 대, 천체투영관을 구경하러 가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그게 내가 비전공자에게 천문학 강의를 하는 가장 큰 목표고 보람이에요. 여러 가지로 마음 불편했을 텐데 먼저 얘기해 줘서 고마워요. 보강에 협조해 줘서 고맙고, 한 학기 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하늘에서 신기한 것 보면 또 연락해요.

 나의 전공은 경제학이다. 속에 감성 가득한 또 다른 교수님이 들어있을 수도 있으나 겉으론 다들 시니컬하시다. 어느 날은 교수님께서 출석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는데 출석을 부르는 것 자체가 못마땅하신 듯했다. 학교에서 시키니 어쩔 수 없이 한다는 식. '다 개인의 선택이니 출석을 강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하셨는데 그 얘기를 낭만적으로, 부드럽게 풀어내면 이렇지 않을까.


그래, 매 순간에 충실한다면 무얼 하든 낭비란 없다. 좌절을 겪으면 극복하려고 노력하면 되고, 그것도 어려운 상황이라면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된다. 모든 일엔 양면성이 있으니까.

K 씨.
방학 잘 보내고 있나요? 어떻게 하고 있나 궁금했는데 다시 연락 줘서 고마워요. 유학 가서도 천문학 강의를 신청한 게 반 갚고 고맙긴 했지만, AST 101이나 AST 301 같은 기초 강의가 아니라 AST 309라는 중간 단계의 수업이라 접근하기가 쉽지 않을까 봐 내심 걱정했어요. 그런데 잘 적응했다니, 성적마저 잘 받았다니 정말 자랑스럽네요! 새로운 나라와 그곳의 대학 시스템, 외국인 교수진이며 전공도 아닌 천문학 괄목까 지 모든 게 낯설고 애로사항이 많았을 텐데, 잘 이겨내고 한 학기 훌륭하게 완주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해요. 앞으로 더 많이 남은 학교생활도 지금처럼 현명하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즐기면서 잘해나가길 바랄게요. 나도 대학, 대학원에서 한 과목 한 과목 새로 배울 때마다 기초부터 다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고등학교 때 공부 좀 더 할걸. 대학 1학년 때 기초과목 공부 좀 더 할걸, 학부생 때 연습문제 좀 꼼꼼하게 풀어볼걸...... 그러나 기초부터 차근차근 되짚어볼 기회는 쉬이 오지 않고 그럴 시간도 만들기 어렵더군요. 하지만 대신 깨달은 건 있었어요. 연습이 부족해서 생긴 빈틈은 그 원리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보는 것으로 메꿀 수 있다는 것. 우리가 구구단은 달달 외워도 인도 학생처럼 19단까지 외우진 못하지만, 곱하기의 원리를 이해하고 있으니 계산해 보면 19 곱하기 19까지 써 내려갈 수 있듯이요. 괴로울 때는 '왜 그때 더 잘하지 못했을까? 하고 과거의 자신을 질책하게 되지만, 그땐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삶의 다른 면을 돌보고 있었잖아요. 어쩌면 K 씨에게 AST 309는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을 거예요. 이제 301은 굳이 듣 지 않아도  되는 쉬운 과목이 됐겠네요. 나는 지난달부터 출산휴가 중이에요. 아이는 예쁘지만, 남들 은 열심히 연구하는데 쉬는 동안 뒤처지지 않을까 조바심 도나요. 나도 K 씨처럼 한 템포 쉬어가는 방학이라 생각해야겠 네요. 잘 쉬고 나면 다시 잘 달릴 수 있겠죠? 우리, 즐거움과 쉼이 충만한 방학 보냅시다. 성공적인 한 학기, 축하해요


아, 내가 굉장히 많이 하는 생각이다. 예를 들면 스텝 3을 하다가 스텝 2 파트 공부가 부족했던 게 느껴지면 차근차근 되짚어 보고 싶어 진다. 스텝 1,2,3 책을 만들어 놓고 '스텝 1,2,3을 차례로 공부하면 가장 좋지만 시간이 부족하다면 스텝 1을 마친 후 스텝 3으로 넘어가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라는 가이드라인 따위를 굉장히 싫어한다. 시간이 부족해서 스텝 2를 못하게 될 것 같으면 스텝 1에 손대기부터 꺼려한다.


 '매사 구구단 외우듯이 훈련되지 않았어도 원리를 이해하고 있으면 메꿀 수 있다.' 이걸 계속 생각해야겠다. 그럼 보나 마나 '구구단 외듯 완벽히 훈련된 타인과의 경쟁에서 밀릴 텐데.' 하는 생각이 들겠지.

 그땐(남들이 이걸 완벽하게 익힐 시간) 내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삶의 다른 면을 돌보고 있었지. 하고 생각해야겠다. 남이 들으면 핑계라고 , 자기 위로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나의 정당성은 내가 잘 인정해 주면 된다. 나의 대한 평가의 기준을 내 안에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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