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레스 성과 브라쇼브 올드타운 그리고 솔로몬의 바위를 방문하다.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를 떠나 브라쇼브(Brașov)로 가는 날이다.
아침 해가 떠오르는 걸 보며 일찍 숙소에서 나섰는데 도중 시나이아(sinaia) 마을에 있는 루마니아 국보 1호로 지정된 '펠레스 성(Peleș Castle)'에 들러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침 일곱 시가 채 안 된 부쿠레슈티 거리가 출근하는 차들로 붐비는 걸 보니 근무 시작 시간이 이른 것 같다.
사실 와서 보니 부쿠레슈티 대부분의 관공서들은 오후 5시 이전에 문을 닫는 것 같았다.
박물관도 Information센터도 5시 이후에는 근무하는 사람이 없거나 문이 닫혀 있는 곳이 많았다.
더구나 공휴일에는 마켓도 박물관도 함께 쉬는 곳이 많다.
한국의 공휴일 관광지에는 평소보다 오히려 더 북적거리고 레스토랑과 가게들이 문을 여는데 이곳은 공휴일이 되면 많은 가게들이 함께 쉬고 있어 활기찬 북적함 대신 차분하고 조용하다.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브라쇼브 가는 길 멀리 앞에는 눈이 녹지 않은 부체지 산(Bucegi Mountain)이 보인다.
5월에 눈 덮인 산을 보니 신기하기도 하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기온이 낮아지기 때문인가 보다.
약 2시간 운전해 시나이아(Sinaia) 마을에 도착했는데 시나이아까지의 운전길은 아주 편안했다.
마을 시나이아(sinaia)는 이 마을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던 왕 카를 1세(루마니아 최초 국왕)가 시나이아 숲 속에 여름 별장을 짓기로 결정하고 1883년 마침내 루마니아의 국보 1호 펠레슈 성을 완공하면서 알려진 곳이다.
이후 많은 귀족들과 왕은 취향을 살려 화려하고 아름다운 저택들을 자연 속에 짓기 시작했고 결국 사람들이 몰려와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성장해 19세기말에는 왕실의 여름 휴양지 및 여름 수도의 역할을 하게 된 마을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주 조용하고 소박한 그렇지만 그 명성에 어울리듯 숲 속 곳곳에 화려한 저택이 자리하고 있다.
펠레스 성까지 가기 위해서는 자동차로 구불거리는 숲을 한참을 들어가야 했다.
이렇게 외진 숲 속에 성을 지은 이유는 무얼까?
자연과 함께 있고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였을까? 사냥을 하기위해서?
드디어 펠레스 성에 도착.
아뿔싸! 오늘은 휴관이다. 정보가 부족했나 보다.
하지만 다행히 펠레스 성 외관과 주변을 둘러볼 수 있다는 사실에 내부를 못 보는 섭섭함이 조금은 줄어들었다.
차를 주차 후 아름다운 숲 속을 10여분 걸어 들어가니 눈 앞에 등장하는 우아한 펠레슈 성!
루마니아 국보 1호라고 불리는 이 성은 파란 하늘아래 우아하고 아름다운 자태로 새초롬하게 서있다.
마치 레이스를 두른 여인의 모습과 같은 분위기도 자아내고 깊은 숲 속에 몰래 숨겨둔 보물 같은 느낌이 드는 성이다.
외부에 새겨진 정교한 조각들 그리고 그 위를 덮고 있는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은 펠레스 성의 아름다움을 더 부각시키고 있다.
카를 1세는 이 산의 웅장함에 반해 왕실 사냥터와 여름 별장을 지었고 이 성을 지은 이후 여러 건물을 더 지었다고 했는데 부체지 산의 장엄함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반했나 보다.
이 성은 기둥과 아치의 모양을 보아 네오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듯 한데 분명 독일풍의 냄새가 짙게 난다.
작년 이맘 때 방문했던 부다페스트의 오페라 하우스와 성 이슈트반 대성당이 비교, 교차된다.
다른 성에 비해 규모가 큰 성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기자기한 정원이 함께 있는 이 성은 어딘지 모르게 여성스러움이 물씬 풍겼다.
펠레스 성 옆에는 페르디난드 왕자와 그의 아내 거처를 위해 만들어진 Pelişor(펠리소르)성도 함께 있다.
펠레스 성에 비해 규모도 작고 웅장함도 적지만 섬세함이 느껴진다.
두 곳 모두 내부를 볼 수 없어 안타까웠지만 깊은 숲 속에 자리한 채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있는 멋진 성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
성을 출발해 브라쇼브로 가는 길, 점심식사를 위해 식당을 찾던 중 길 가에 차려진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굴뚝에서는 고기 굽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맛난 냄새가 풍겨 주저 없이 들어간 간이(?) 음식점이다.
현지인들 몇 명이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낯선 동양인이 들어오자 모든 눈길이 우리에게 쏟아진다.
어쩌랴...
주문한 목살 구이와 매운 소시지, 샐러드와 감자구이를 주문해 먹었는데 불에 방금 구워 나온 고기를 먹으니 맛이 좋다.
무작정 찾아 들어간 식당이었는데 맛과 값 그리고 서비스 모두 만족스러운 점심 식사였다.
식사 후 커피까지 마신 우리는 약 1시간 반 가량을 더 달려 마침내 오늘의 목적지 브라쇼브에 도착했다.
브라쇼브(Brașov)는 몰다비아, 왈라키아, 트란실바니아 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한 도시이며 여러 지방을 연결하는 주요 도시이다 보니 전쟁도 많았던 곳이다.
13세기, 헝가리 왕국에 의해 세워진 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에 귀속되었다가 다시 헝가리 왕국의 주도가 되었지만 결국엔 1차 세계 대전 이후 루마니아의 영토가 된 곳이다.
본격적인 브라쇼브(Brașov)의 탄생은 독일인들이 이곳에 거주하기 시작한 후 부터인데 그들은 브라쇼브 내에 많은 건물과 시설을 건설했던 이유로 브라쇼브에는 독일풍의 건물들과 집들이 많이 모여있어 독특한 거리 풍경과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라 인기가 있기도 하다.
반면, 루마니아인들은 구시가지 위쪽에 자리를 잡았는데 이를 슈케이(Schei)라고 불렀다.
당시 루마니아인들의 구시가지 출입은 엄격히 통제되었는데 18세기에 접어들면서 점점 루마니아인들이 그들의 세력을 키워 들어오게 되어 독일인들과 함께 공존하면서 발전해 왔다.
이때 생긴 문이 슈케이문(Schei Gate)인데 지금은 슈케이 문을 통해 누구나 쉽게 구시가지와 슈케이 지구를 넘나들 수 있다.
올드타운을 돌아보는 데 약 3시간 정도면 될 것 같아 유료 주차장에 주차 후 걸어 돌아다니기로 했다.
성수기가 아닌 터라 주차장에 조금은 여유가 있어 다행이었는데 성수기에는 주차를 어떻게 할지 괜히 걱정이 되기도 한다.
역시 루마니아 대표적인 관광지답게 다른 도시에 비해 관광객들이 많다.
주차장을 조금 벗어나니 Catherine Gate가 나타난다.
홍수로 파괴된 오래된 문을 대체하기 위해 길드(Guild)가 방어 목적으로 건설한 문으로 예전에 이곳에 있었던 성 캐서린 수도원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중세 시대부터 살아남은 유일한 원래 성문이며 이곳은 브라쇼브의 5개의 입구 중 루마니아인을 위한 유일한 입구였다고 한다.
Řcheii Braşovului라는 동네에 정착해 살고 있던 루마니아인들은 이곳을 통해 특정 시간에만 마을에 들어갈 수 있었고 성채 내부에서 농산물을 판매하는 특권을 누리려면 문에서 통행료를 지불해야 했다고 한다.
입구 위에 있는 탑에는 도시의 문장, 참나무 줄기와 뿌리에 달린 왕관이 보인다.
유럽에서 가장 큰 독일 고딕양식의 교회로 유명한 검은 교회(Black church)를 만났다.
이 교회는 대화재로 인한 그을음 때문에 검은 교회로 불렸다는데, 작가 유디트 페트키(Judit Petki)는 화재로 인해 그을음이 생겼다는 견해와는 달리 19세기 브라쇼브가 산업 도시로 변한 이후 환경오염으로 인해 교회가 검게 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떤 주장이 옳은지는 글쎄....
이 건물은 중세시대 독일인들에 의해 지어진 교회로 이 지역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교회이다.
평범한 낙서 많은 좁은 골목길인데, 솔직히 왜 명소인지는 모르겠었어요 ㅎㅎ.. 감성이 부족한가?!!
브라쇼브의 핫 스폿인 스파툴루 광장(Sfatului squear, the concil marktplatz)은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의 사나이가 지하로 보낸 아이들이 이 근처에 나타났다고 하는 곳이기도 하다.
독일 하멜른에서 사라진 아이들이 이곳까지 어떻게 왔을지....ㅎㅎ
어찌되었건, 루마니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자 18-19세기의 건물로 둘러싸인 넓은 광장엔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을 뿐 아니라 광장 주변 레스토랑엔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다.
따뜻한 봄 날 오후 아름답고 멋진 광장에서 저마다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화려하고 편안하게만 보이는 이 광장에서 과거엔 공개적인 굴욕과 처벌이 이루어진 곳이라고 하니 살벌한 장소였을 듯...
내가 방문한 유럽 어느 도시든 광장이 반드시 존재했다.
광장의 역할은 서로 달랐지만 유럽인들에게는 광장이란 생활에 있어 중요한 장소였음에 분명했다.
특히 과거의 폐쇄적인 집의 구조로 인해 창도 작고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답답한 생활을 광장에서라도 해소해야 했던 이유도 있었으며 광장에 우물이나 분수를 만들어 서민들의 생활에 이용을 했을 것이다.
또한 근대에 오면서 광장을 중심으로 발전도 했지만 시민들의 혁명이 일어난 장소가 되고 심지어는 단두대로 목을 자르는 무시무시하고 살벌한 장소가 되기도 했으니 결국 새로운 시대를 향하는 민중들의 피와 땀을 흘린 곳이 바로 광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브라쇼브 역시 광장엔 시계탑과 성당이 있다.
신의 권위가 잘 드러나야 할테니 막힘이 없는 광장에 지어 어디서든 잘 보이게 해야했을 것이고 교회에서는 돈을 기부하도록 귀족들을 설득해 시계탑도 만들었을 것 같다.
그런데 브라쇼브 광장은 화려하기 보다는 수수하다.
베니스, 세비야의 광장들에 비해 매우 소박한 편이다.
광장에 교회가 있어 들어가 보기로 했다.
교회의 전면이 매우 화려하다. 한쪽에서는 내부에 색을 정성스럽게 다시 칠하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광장 한쪽의 벽엔 아주 근사한 그라피티가 있는데 바로 옆 골목 벤치는 독특한 디자인의 벤치가 눈에 들어온다.
나무로 만들어진 아주 귀엽고 앙증맞은 벤치인데 예술성과 자연 친화성을 생각해 만들어 골목의 아름다움까지 만들어냈다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진다.
벤치에 앉아 담배를 물고 있는 노인의 모습도 덩달아 멋지다.
거리를 걷고 있다가 양팔을 벌릴 수 조차 없는 좁은 골목을 만났다.
벽 양쪽엔 낙서가 가득하다.
낙서 때문에 가뜩이나 좁은 골목이 더 좁아 보인다.
여기저기 걷다보니 눈에띄는 성전이 보인다.
브라쇼브 올드타운에도 유대교 성전(sinagog beth Israel)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유대교 수행자들은 15세기 초에 브라쇼브에 살았지만 1807년까지 공식 정착 허가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약 1830년대가 되어 공동체가 형성되어 예배당을 지을 수 있었다고 했다.
20세기 초에는 이 도시에 유대인들이 약 3,500명가량이나 되었다고 하는데 현재 이 성전은 네오고딕양식의 3개의 본당으로 지어져 있었다.
오늘은 문을 닫는 휴일이라 들어갈 수 없어 아쉬웠다.
마을 뒤에는 탐파산(Tampa mountain)이 있다.
언덕을 조금만 올라가 보기로 했다. 예전 같으면 정상까지 주저 없이 걸어 올라갔을 텐데 오늘은 케이블카가 운행하지 않는 날이라 걸어 올라가야 하는 탐파산 정상은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행히도 정상이 아닌 언덕에서도 옹기종기 모여있는 브라쇼브의 붉은 지붕 집들의 아름다운 풍경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카페를 찾고 있는데 올드타운에서 튀르키예식 커피를 파는 곳도 간혹 눈에 띈다. 하긴 과거 몇 백 년동안 오스만의 지배를 받았는데 그 잔재를 없애기는 쉽지 않을거라는 생각도 든다.
편리하고 맛난 커피가 많은 요즘 아직도 전통적인 커피를 고수하는 그들이 놀랍기도 했다.
난 요즘 커피, 라테를 마시며 기운을 충전했다.
올드타운은 두어 시간 돌아다니니 충분하다는 생각도 든다.
브라쇼브의 올드타운 조약돌 거리마다 독특한 모양의 지붕과 트란실바니아의 전통가옥들이 좁은 골목들을 메우고 있다.
비록 깨끗하고 다듬어진 집들은 아니지만 오히려 세련되게 정비된 가옥보다는 훨씬 마을의 고풍스러움을 느낄 수 있어 더 좋았다. 올드타운은 올드타운 다워야 하니까...
특히 독일풍의 건물이 많아 마치 잠시 독일 작은 마을에 온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하지만 집 안에 주차장을 구비한 집들이 많지 않아 집집마다 좁은 골목에 차를 주차해야 하는 상황이 조금은 안타까웠다.
아름다운 골목들에 들어선 건물 앞에는 빼곡히 들어찬 자동차들로 멋진 가옥과 고풍스러운 거리의 풍경은 사라지고 삭막함이 든다.
주민을 위해 자동차를 막을 수도 없는 일, 하지만 관광객들에게는 올드타운에 들어올 수 없도록 하거나 주차장을 따로 마련해 주차를 할 수 있도록 하면 지금보다는 올드타운의 풍취를 더 느낄 수 있고 주변 환경도 더 고풍스럽고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싶다.
몇 년 전 스페인 여행 중 그 마을 주민에게만 자동차 운행이 허용되는 마을을 방문한 적 있는데 그 마을 골목에서는 자동차를 많이 볼 수 없어 중세의 향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브라쇼브에서도 멋진 올드타운을 지킬 많은 연구가 필요할 듯싶다.
하지만 오늘 내가 경험한 브라쇼브 올드타운은 과거와 현재가 섬세한 자수로 짜여 조화롭게 융합된 도시와 같았다.
숙소로 직접 들어오는 도중에 Solomon's Rock(솔로몬의 바위)이라는 공원이 있어서 들러보기로 했다.
1913년에 신석기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에 사람이 거주했던 요새가 발견되었던 곳이다.
솔로몬의 바위에 관한 전설 중 하나는 솔로몬이 자신의 동생을 죽인 헝가리 왕이었고, 어머니는 그가 죽기를 저주했다고 한다. 솔로몬은 저주를 풀 수 있기를 바라며 브라쇼브 근처의 산으로 올라갔지만 물에 빠져 죽고 만다. 결국 왕의 몰락으로 산이 둘로 갈라져 지금 우리가 보는 바위가 생겼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은 용을 타고 비와 우박을 제어할 수 있는 솔로모나르(Solomonari) 마법사에 관한 것인데 이 솔로모나르들은 셰이(Scei) 위쪽 산에 머물렀다고 한다.
아직도 브라쇼브 사람들은 비가 솔로몬의 바위에서 나온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니 정말 믿을 수 있는 전설인가?
넓은 공원이라기보다는 커다란 바위들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 곳이었는데 많은 가족들이 놀러 와 고기를 구워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공원에서 고기를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시설이 되어 있다 보니 재료를 가지고 직접 이곳에서 구워 먹고 있다.
젊은 커플, 아이가 있는 가족, 노부부 등 다양한 가족들이 모여 휴일을 보내고 있었다.
다가갈수록 피어오르는 연기와 고기 굽는 냄새가 공원 전체를 뒤덮는다.
공원을 더 깊숙이 들어가 보기로 했는데 트레일이 아주 잘 조성되어 있었다.
어린아이와 함께 산책을 하는 부부도 보이고 텐트를 가져와 휴식을 취하는 가족, 그리고 따뜻한 햇살이 그리웠는지 옷을 벗고 선탠을 하는 사람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주변 숲의 신선한 공기와 바위틈으로 나오는 약수로 인해 이 지역은 좋은 힐링 센터로도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름답게 커다란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인공의 손이 많이 닿지 않은 자연 속에 숨어있는 독특한 공원에서 우리도 잠시 머물다 내려왔다.
오늘 내가 경험한 브라쇼브는 자연 그대로의 풍경과 예스런 고풍스러움을 두루 갖춘 고즈넉한 마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