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를 방문하다.
이제 우리는 루마니아 여행을 끝내고 국경을 넘어 세르비아(Serbia)로 간다.
루마니아의 아름다운 자연, 독특한 종교와 문화 그리고 루마니아인들의 따뜻한 마음은 이곳에 머물렀던 이방인인 우리들에게 낯섦 대신 편안함을 안겨주었고 언젠가 다시 방문하고 싶은 나라로 마음에 두게 되었다.
점점 세르비아 국경에 가까워지는데 긴장이 된다.
루마니아에서 세르비아 입국 시 애를 먹었다는 블로거의 글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간단하고 쿨하게 입국 심사가 어렵지 않게 끝났고 우리는 드디어 세르비아 땅을 밟았다.
루마니아 국경 근처에서는 노란 유채꽃이 우리를 반기더니 세르비아에서는 개양귀비꽃이 무리 지어 피어 반긴다.
빨간색, 보라색 개양귀비들이 도로 양편에 늘어서서 바람에 하늘거리고 심지어 널따란 농지에 자리를 차지하고 대단위로 재배되는 개양귀비 무리도 볼 수 있었다.
개양귀비를 계획적으로 키우는 이유를 알지는 못하지만 국경 근처 인적 없는 시골에 화려한 색상의 꽃들이 반겨주니 세르비아의 첫인상이 아주 좋다.
나는 세르비아가 현재까지도 여전히 정치적, 민족적 그리고 종교적인 이유로 인해 코소보와 갈등을 겪고 있는 나라로 알고 있는데 최근 2년 전에도 코소보 정부와 코소보 북부에 거주하는 세르비아계 주민들 사이에서 벌어진 아슬아슬한 충돌도 있었다.
현재 세르비아는 코소보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차츰 코소보를 독립국으로 인정하는 나라들이 많아지면서 이들과 더 깊은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나에게 세르비아는 발칸 국가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긍정적인(?) 이미지로 다가온 나라는 아니었다.
잦은 전쟁과 학살로 참혹했던 발칸의 역사를 볼 때 나에게 세르비아라는 나라가 좋은 이미지로만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세르비아가 더 궁금하고 방문해보고 싶은 나라였는지도 모르겠다.
뉴스를 통해 심어진 과거 세르비아의 이미지를 현재의 세르비아가 어떻게 바꿔줄지 직접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
우리의 세르비아 첫 방문지는 수도 베오그라드(Beograd)였다.
이 도시는 '하얀 도시'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데 동로마 제국 당시 로마인들이 하얀색의 벽돌로 도시 성벽을 쌓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수도 베오그라드(Beograd)까지는 국경에서 약 2시간 30여분 걸렸다.
베오그라드에 들어서기 전 까지는 아기자기한 시골 농가들과 어우러진 전원 풍경들이 편안함을 안겨줘 기분이 좋았는데 번화가에 들어오자 상황이 360도 변해버렸다.
출근 시간이 훨씬 지난 시간인데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양쪽 도로는 차들로 꽉 차있었고 좁은 도로 곳곳엔 사람들도 꽤 많아 정신이 없다.
우리는 미리 봐 둔 도심 번화가 근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도시를 둘러볼 계획이었지만 목적지 약 4분을 남겨놓고 주차장으로 가는 도로를 경찰이 폐쇄하고 있어 우회를 해야 했다.
그런데 도로 폐쇄는 한 곳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에서도 도로를 통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모든 차들이 우왕좌왕하고 있고 도로는 꽉 막히고...
우리도 결국 가기로 예정되었던 주차장으로 가지 못하고 다른 주차장을 찾아 헤매야만 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시내의 모든 주차장 어디에서도 주차 공간은 없던 것이다.
거리며 주차장이며 차를 세울 곳이라고는 단 한 곳도 찾을 수 없었다.
낯선 나라의 수도 한복판에서 이렇게 당황하며 주차장을 찾을 줄이야...
주차장으로 표시된 곳 여기저기 모두 가 보지만 이미 주차장에는 차들로 꽉 차 있었고 아무리 거리를 빙빙 돌아도 우리를 위한 주차 공간은 보이지 않았다.
집에 있는 모든 차들이 도심으로 나온 듯했다.
결국 베오그라드 중심가를 둘러보려고 했던 우리의 계획은 무산되고 번화가에서 멀리 떨어진 베오그라드 요새로(Belgrade Fortress)로 방향을 바꿔야 했다.
마침내 요새 주변에 있는 주차장에 주차를 하기까지 우리는 거의 1시간 이상 거리에서 배회해야 했다.
알고 보니 오늘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베오그라드에 오는 날이라 거리에서 행사가 계획되어 있었고 그 이유로 오전부터 거리 통제를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베오그라드에서 경험했던 교통지옥과 주차지옥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ㅠㅠㅠ
교통 지옥을 어렵게 탈출해 '베오그라드 요새(칼레 메그단 요새 Kale Megdan)'에 도착했다.
'칼레메그단'이라고도 불리는 이 요새는 터키어로 '요새(Kale)'와 '전쟁터(Megdan)'라는 단어가 합쳐진 것으로, 지금은 ‘베오그라드 요새(Belgrade Fortress)’라 불리고 있다.
처음 이 요새를 건설한 이들은 3세기 경 켈트족이라고 하는데 이후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의 황제였던 유스티니안 1세가 535년 요새를 다시 건설했다.
요새의 규모가 생각보다 무척 큰걸 보니 이 요새 내에 거대한 도시가 거주했음도 유추할 수 있었다.
수 세기에 걸쳐 사람들이 이 요새 안에 거주를 했다고 했지만 전쟁으로 요새의 주인이 자주 바뀌면서 무려 40여 차례나 증축되었던 곳이다.
오스만 제국이 멸망한 이후 두 번의 세계 대전 동안에는 이곳에 오스트리아가 머물며 군사 주둔을 위해 많은 수리를 했다고 한다.
결국 지금의 칼레메그단은 세르비아의 차지가 되었고 공원으로 조성되어 베오그라드 시민의 휴식처로 자리 잡게 되었다.
세르비아의 사바(Sava) 강과 다뉴브(Danube)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자리를 잡은 이 요새 안에는 성벽으로 둘러진 안에 칼레메그단 공원과 세르비아 정교회가 있다.
요새의 언덕은 멋진 강의 전경과 베오그라드 도시 풍경을 선물했는데 이곳에서는 사바와 다뉴브의 두 강줄기와 베오그라드의 전경이 한눈에 보여 가슴이 뚫리고 시원함마저 들었다.
아침부터 낯선 나라의 수도 한복판에서 교통지옥을 경험했던 불편함과 부담감들은 조금은 해소가 되고 이제야 우리가 여행자라는 느낌도 갖게 된다.
요새 안에는 1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기념하는 칼레메그단 시계탑과 군사 박물관이 눈에 띄는데 그들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보여주는 듯 다양한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는 게 조금은 독특했다.
요새 구경을 끝낸 우리는 요새 내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아침식사도 거른 우리는 무척 배가 고파 많이 먹을 줄 알았는데 막상 음식을 받고 보니 양도 생각보다 많고 음식들이 우리 입맛에 조금씩 짠 듯 해 다 먹지 못하고 남은 음식은 포장을 해 가져와야 했다.
식사를 마치고 시내 중심가까지 걸으며 본격적으로 베오그라드 중심가 구경을 하기로 했다.
서서히 유럽풍의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거리들이 나오자 눈이 즐겁다.
조용하고 한적했던 요새와는 달리 도시 중심가는 레스토랑과 카페, 그리고 기념품 가게들과 대형 쇼핑몰들이 들어서 있었고 젊은 현지인들과 관광객들이 어우러져 북적거린다.
거리 음악도 하고 신나게 젊은이들이 홍보도 하고 있다.
문득 세르비아의 젊은이들은 그들의 역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이들에게 있어서 민족주의는 무엇일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베오그라드의 핫한 거리라고 하지만 한 나라의 수도 분위기치고는 조용하고 차분한 느낌인데 아름다운 건물들이 들어선 중심가를 걸으니 동유럽 느낌도 제법 나고 활기찬 분위기가 느껴져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마음도 덩달아 환해진다.
번화가를 걷다 보니 '모스크바 호텔'이라고 하는 독특한 건물이 눈에 띄는데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궁전처럼 귀엽기까지 하다.
공산주의 당시 지어진 호텔이라고 하는데 아르누보 양식으로 지어진 호텔로 외관이 독특하다.
다행히 걷기 좋은 날씨라 우리는 좀 더 걸어 국회의사당, 대통령궁 그리고 왕궁( Belgrade palace)들을 구경했다.
특별히 아름다운 건물이기보다는 절제된 양식에서 스며 나오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건축들이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St. Michael's carhedral을 들렀다.
1979년에 중요한 문화 기념물로 지정된 이 성당은 1837년과 1840년 사이에 지어졌으며 세르비아에서 가장 중요한 예배 장소 중 하나라고 한다.
오스만 통치로부터의 자유를 향한 독립 투쟁당시 중심적인 지지대가 된 곳이라고 하니 세르비아인들에게는 의미가 있는 성당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부에 들어가니 아름다운 성화가 천장까지 가득했고 독특하고 성스러운 분위기에 압도당해 한참 동안 앉아 있게 된다.
마음도 몸도 차분해지고 정화되는 느낌인데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은 성화들로 인해 내부가 더 아름답고 신성한 느낌이 든다.
와인 한 병을 사가지고 숙소로 돌아와 낮에 포장해 온 음식과 간단히 준비한 저녁 식사 그리고 와인을 마시며 오늘 우리가 경험한 도시 베오그라드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내가 경험한 도시 베오그라드는 여행 중 방문했던 많은 도시들과 비교해 조금은 실망스러운 마음이 든 건 사실이다.
발칸의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차분하고 조용하며 깨끗한 도시의 첫인상을 기대했는데 이와는 다르게 좁은 도로와 여기저기 눈에 띄는 지저분한 거리 그리고 사람과 자동차들로 북적거리는 도시의 풍경은 나를 혼란에 빠뜨리기도 했다.
물론 한 나라의 수도를 단 몇 시간 머물러 보고 단정 지어 얘기할 수는 없지만 다른 유럽의 도시에 비해 공원도 적고 우거진 나무도 적어 도시가 다소 삭막한 느낌마저 들게 해 도시 베오그라드가 나에게 썩 편안하고 친밀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오늘 경험한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는 감탄보다는 아쉬움을 느끼게 했던 도시였다.
내일은 베오그라드의 올드타운을 방문해 볼 예정이다.
오늘의 아쉬움이 만족과 행복으로 채워지길 기대해 본다.
여러 가지를 볼 때 세르비아가 관광 선진국이 되기에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꽃시장도 있고 다양한 채소와 과일, 그리고 생선과 육류, 치즈 등 현지인들이 많이 방문하는 재래시장이었다.
다양한 꽃들을 팔고 있는 가게들이 유독 많은데 꽃들을 무척 좋아하나 보다.
올라가는 길에는 붉은색 꽃들의 화분이 집 창가에 놓여 삭막한 골목길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참으로 평화로운 순간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한참을 앉아있다 내려왔다.
어제 내가 경험한 베오그라드의 느낌과는 많이 다른 또 다른 베오그라드의 모습을 느끼고 간다.
이 글은 2024년 5월 여행 중 기록한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