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 남자 4명의 남미 배낭여행기
또 보자, 쿠스코!
짧지만 정든 쿠스코를 이제는 떠나야 한다. 길들이 익숙해질 때 즈음, 떠나게 되는 것이 여행이다. 그래도 우리는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남미의 또 다른 국가 볼리비아로 향하는 날이기 때문에. 마추픽추를 보러 다시 올 것이기에 우리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공항으로 향했다. 어제의 산행이 고되기는 했지만, 하루 종일 휴식을 취한 탓에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 체크 아웃 후 우버택시를 잡아 공항으로 향했다.
이제는 남미에서 국내선을 타는 것이 익숙해졌다. 수속을 마치고 대기하며 잠시 일정을 계산했다. 페루를 떠나 볼리비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나라가 가까워서 그런 것인지 라파즈까지는 얼마 안 걸렸다. 체감상 제주도에 가는 느낌이었다. 비행기가 작기도 했고, 정말 금방 도착해서 제주도 가는 비행기에 탄 느낌이었다. 그렇게 국경을 넘어 우리는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즈에 도착했다. 오전이었음에도 구름 낀 흐린 날씨에 어둑해진 하늘이었다. 도시는 페루와의 큰 차이를 모를 정도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곳곳에 스페인어가 보였고, 차들은 도로에 가득했다. 마치 페루 리마의 구도심이나 쿠스코 같은 느낌이었다. 다만 전반적으로 페루보다는 차들이 더 많고, 질서 정연하기보다는 개발이 덜 된 것 같았다. 예약해둔 호텔에 짐을 풀고, 라파즈에 왔으니 새로이 라파즈 화폐로 환전할 장소를 찾았다. 도시 중앙 지역에 위치한 샌프란시스코 광장 주변 환전소로 향했다. 이곳의 광장은 페루의 아르마스 광장과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페루의 광장이 공원과 비슷한 느낌이라면, 라파즈의 광장은 그냥 공터에 가까웠다. 다만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는 풍경만은 같았다.
라파즈 시내 구경
라파즈의 시내는 무언가 개발 중인 도시를 거니는 느낌이다. 곳곳에 차들이 정신없이 다니고, 매연냄새가 풍기는 곳이다. 거대한 건물들은 흔하게 찾기 힘들었다. 환전 후 주변에 시장이 있어서 시장 구경을 갔다. 현지 풍경을 느끼기에 시장만 한 곳이 없다. 한국의 재래시장의 느낌이 나는 곳이었는데 몇몇 곳은 문을 닫아 활기가 넘치진 않았다. 오전 시간임에도 닫은 가게들이 많이 보였다. 광장 옆 시장이라서 규모가 크긴 했지만, 상권 자체는 많이 죽은 모양이다. 별다른 걸 구경하진 못하고 그냥 건물을 나왔다. 라파즈의 도시에는 차들이 굉장히 많았다. 전부 시커면 매연을 뿜으며 다니는 탓에 공기가 안 좋게 느껴졌다. 특이한 것이 있다면, 콜렉티보 택시를 구경할 수 있다. 이것이 뭐냐 하면, 미니 벤 같은 차에 버스처럼 여러 사람이 타고 내리며 운행하는 택시 개념이다. 물론 직접 타 볼 엄두가 나진 않았다.
점심때가 되어 주변 식당을 찾았다. 라파즈는 정보가 부족한 탓에 발품 팔아 돌아다니며 필이 꽂히는 곳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광장에서 숙소로 올라오는 길을 돌아다니다가 세트메뉴를 파는 곳을 보았다. 뭔가 라파즈의 일반적인 밥집 같은 느낌이었는데, 저렴한 가격에 이것저것 세트로 나온다는 간판을 보았다. 대학생 배낭여행객이었던 우리는 가격에 홀린 듯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닭고기나 돼지고기 중에 메인을 선택할 수 있고, 밥과 샐러드 기타 등등이 나왔다. 메인으로 나온 고기들은 겉으로 보기에 정말로 맛깔나게 생겼는데, 막상 먹어보니 평범한 맛이었다. 의외로 감자튀김 샐러드가 맛있었다. 식사를 마치고는 근처 마녀 시장이란 곳에 가볼까 했지만,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에 하릴없이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오는 길에 느낀 점인데, 축구 유니폼을 파는 가게들이 정말 많았다. 볼리비아 사람들은 축구를 정말 좋아하나 보다. 곳곳에서 유니폼을 파는데, 정말 한국의 편의점만큼이나 많았던 것 같다. 숙소로 돌아와 그대로 침대로 직행했다. 어제 산행의 피로도 있고, 비도 오고 해서 그냥 호텔에서 계속 뒹굴거리기로 했다. 그간의 여행 얘기도 했다가, 빵빵한 호텔 와이파이에 기대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낮잠을 잤다. 이런 게 여행이지. 너무 강행군만으로 일정을 짜면 아무리 20대 군필이라도 지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저녁때까지 종일 휴식을 취했다.
별천지 라파즈
저녁때가 되어 다시 주변 식당을 알아봤다. 호텔 바로 옆에 피자집이 있었는데, 구글 평점이 좋아 한번 가보기로 했다. 가게 이름은 모짜렐라. 스페인어로는 모싸레야 피자집 되시겠다. 가게 앞부터 익숙한 피자 내음이 가득했다. 가게 안은 이미 북적였고, 맛집에 온 것 같아 안도감을 주었다. 가게 특이한 점이라면, 메뉴에 손바닥보다 좀 더 큰 1인용 피자를 판매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고로 각자 먹고 싶은 피자를 골랐고 우리는 4판의 피자를 주문했다. 그런데 토핑도 풍부하고, 맛도 좋은 것이 이 만한 가격에 이 정도 퀄리티 화덕 피자가 나온 것에 깜짝 놀랐다.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저녁 식사였다. 여태 먹어본 피자가게 중에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아무리 피자가 맛없기 힘들다지만, 이곳은 한국에 체인점을 내고 싶을 정도였다. 남미 와서 먹은 식사 중에 맛집에 왔다는 느낌을 받은 식당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밖을 돌아다녀볼까 했지만, 날씨도 그렇고 어둡기도 해서 그냥 다시 돌아오는 걸 택했다. 들어오는데, 친절한 호텔 프런트 직원이 옥상을 추천해주었다. 옥상에 올라갈 수 있다고? 듣기만 해도 기대되는 단어 옥상. 우린 냉큼 옥상으로 갔다. 소화도 시킬 겸 야경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이 호텔은 부근에서 상당히 높은 건물이었기에, 분명 야경 맛집 이리라! 그렇게 우리는 난생처음 호텔 옥상에 올랐다.
문을 열고 나와보니 라파즈는 생각보다 더 큰 도시였다. 도시를 둘러싼 언덕 언저리까지 주택들이 빼곡하게 들어서있었다. 가로등과 함께 빛을 발하고 있었다. 빛들이 하나하나 모여 마치 우주의 은하수 같은 라파즈의 야경을 만들어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야경의 향연 중심에 있는 느낌이었다. 주황색과 하얀빛들이 조금씩 일렁이며 라파즈만의 독특한 야경을 만들어냈다. 옥상에서 주위를 거닐면, 마치 우주를 닮은 찬란한 돔 안에서 걷는 것만 같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흔적들이 하나 둘 모여 만들어진 야경이겠지만, 여행객의 눈에는 한없이 예뻤다. 라파즈에는 다시 올 예정이기에, 꼭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에 가자며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