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 남자 4명의 남미 배낭 여행기
여기는 정상.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
나무 하나 없는 산은 낯설었다. 우리는 구름 위에 서 있었다. 5천 미터가 넘는 곳이니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바람은 거세게 불었고, 구름들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흩어져갔다. 주위는 정말 말 그대로 무지개색이었다. 형형색색으로 칠해진 모습이 왜 무지개산인지 알게 해 준다. 신이 칠한 것만 같은 그 모습을 우리에게 허락하였다. 페인트로 산을 쭉 칠한 듯 알록달록한 모습이 너무나도 신기했다. 마치 케이크의 단면처럼 색이 선명하게 구분되었다. 자주색, 청록색, 노란색으로 칠해진 채 나무 한 그루 없는 산의 모습이 운무와 함께 멋진 모습이 되었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금속성 물질들이 산을 이렇게 물들였다고 한다. 나는 문과라서 그 성분들이 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한국의 오색약수터가 철분에 의해 붉게 물든 것과 비슷한 원리라 생각했다. 원래 이 곳은 빙하로 덮여있어서 예전에는 아무도 이런 형형색색의 산이 있는 줄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얼음이 녹으면서 그 모습이 드러났다고 한다. 그래서 발견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게 흔하게 있을법한 작은 사원이나 사람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
우박이 대수냐, 남는 것은 사진뿐
산 위에는 시간이 지나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는 온도 때문에 우박이 되어 뺨을 따갑게 때렸다. 바람이 많이 분 탓에 싸대기처럼 우박이 내렸다. 그러나 사진을 찍기 전에는 내려갈 수 없다. 설령 우박이 거칠어져도. 혼자 여기까지 올라온 한국인이 있어서 반갑게 인사하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넷이서도 힘들었는데 혼자 여길 올라오다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혼자 의지를 다지면서 올라오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진 삼매경에 빠져 이리저리 위치도 바꿔보고, 방향도 바꿔가며 사진을 찍었다. 가이드가 고도 표지판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고, 즉시 그리로 갔다. 5036m라 적힌 표지판이 우리 눈앞에 있었다. 표지판을 배경 삼아 기념사진을 남겼다. 올라오는 길에 찍힌 표정은 죄다 울상이었지만, 정상에서의 사진만큼은 누구보다 해밝게 찍었다. 이후는 각자 자유롭게 구경했지만, 10분도 안되어 시간 상 금방 하산해야 했다. 정상의 바람을 맞으며 우리는 하산길에 올랐다.
하산은 더 힘들었다. 힘이 빠진 탓인지 날씨 때문인지 몸이 무거웠다. 그 고생해서 올라온 길을 또다시 걸어내려가야 한다. 중간에 말을 타고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다시 올라온 걸 생각하면 너무나도 아득하다. 진흙길과 간간히 내리는 빗줄기는 우리의 걸음을 다시 괴롭혔다. 우박과 비, 땀으로 우비 안쪽도 젖어들어갔다. 신발은 이미 진흙투성이. 축축한 신발에, 체력까지 떨어져서 내려오는 길은 정말 서로의 등만 보며 내려왔다. 풍경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리면 넘어질 것만 같았다. 안전하게 내려가는 것이 최선이다. 진흙길이라 긴장하며 내려왔다. 비바람과 싸우며 우리는 다시 고생 고생해서 하산했다. 다행히도 다친 사람 하나 없이 버스에 올랐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엔 모두가 뻗었다. 점심은 아침을 먹었던 곳과 같은 장소였지만, 뷔페식이었다. 그런데 별로 먹을 만한 음식이 없어서 파스타 약간, 과일 약간 먹는 둥 마는 둥 식사했다. 가짓수는 많았지만, 입에 맞는 것은 없었다. 힘든 탓에 입맛도 없었다. 또다시 구불거리고 덜컹거리고 흔들리는 길이 우릴 기다렸다. 쿠스코에 갈 때엔 거의 기절하다시피 뻗은 채로 갔다. 쿠스코에 도착하고 나서 한 친구의 컨디션이 급격하게 안 좋아져서 집으로 바로 갔다. 집에 도착하고 나서 신발을 씻고 하루 종일 휴식을 취했다. 낮잠을 자고 오후 내내 방 안에서 휴식을 취했다. 저녁은 숙소 주변에서 평이 좋은 가게에서 피자를 포장해오고, 계란과 우류, 양파로 수프를 만들어 원기를 보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