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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교선 May 09. 2021

남미 여행 일지 12. 무지개산과 등산의 공포 -1-

20대 중반 남자 4명의 남미 배낭여행기

쿠스코의 소문난 관광지 비니쿤카


 쿠스코에는 무지갯빛 산이 있다고 한다. 쿠스코에는 마추픽추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비니쿤카라고 불리는 무지개산이 근교에 있었다. 오늘 우리는 그곳에 간다. 무지개빛 산을 영접하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서 준비를 했다. 고산병 약과 코카잎을 달여내서 만든 차, 그리고 몇 가지 군것질거리와 추울 때 입을 옷을 챙기고 숙소를 나섰다. 


새벽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땅은 여전히 젖어있었다. 우리를 데려오기로 한 셔틀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숙소 앞에서 멍하니 땅을 바라보았다. 젖은 땅에 가로등이 비쳐 바닥에도 달이 떴다. 이윽고 투어 셔틀이 도착했다. 셔틀에 타자마자 눈을 붙였다. 잠에 들려는 찰나 다른 대형버스로 바꿔 타라고 하였다. 아니 근데 타자마자 잠이 달아났다. 대형버스인데 안전벨트가 없었다. 근교로 가는 것이라 금방 가기 때문에 안전벨트가 없는 것일까. 분명 크기는 한국의 대형 고속버스만 한데 안전벨트가 없다. 내 옆자리도, 내 뒷자리도 없다. 불안감과 피곤함이 섞여왔다.


신이시여, 저에게 누구보다 강한 괄약근을!


 산으로 가는 길은 비포장도로에 구불구불한 산길이었다. 근데 문제는 길이 아니었다. 어제 먹었던 불닭게티가 탈이 난 것인지 복통이 밀려왔다. 온통 산길뿐인 곳이라 중간에 휴게소는커녕 공중 화장실이 있을 리 만무했다. 유일한 희망은 가는 길에 머물 아침식사 장소뿐. 중간에 내릴 수 도 없다. 식은땀이 삐질삐질 나오기 시작했다. 복통으로부터 온 감각과 신경을 돌려야 했다. 필사적으로 창밖을 보았다. 밖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환장할 노릇이다.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나는 기도문을 외웠다. 요 근래 들어서 가장 열심히 필사적으로 최선을 다해 기도문을 외웠다. 복통에서 감각을 돌리기 위해서 혹은 신의 도움으로 감쪽같이 사라질 복통을 위해서. 그렇게 나는 아침식사 가는 내내 기도문을 주구장창 외워댔다.


 이윽고 아침 식사 장소에 도착했다. 내 신체는 용케 잘 버텨주었다. 버스에서 급히 내려 화장실로 뛰어갔다. 긴장감이 넘치다 못해 폭발할 것 같았지만 무사히도 다행히도 잘 해결되었다. 이 기쁨이란! 화장실에서 나올 때 나는 해탈한 영혼과 함께 나왔다. 행복은 별게 아니었다. 시원한 기분으로 나와서 아침식사도 맛있게 먹었다. 모든 것이 감사한 순간이다. 빵과 버터, 퀴노아 수프였다. 간단하지만 현지인들이 주로 먹는 음식인가 보다. 사실 그렇게 맛있진 않았지만, 뭐 어떠랴 내게 맛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4000m 등산, 시작합니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자연은 따스하고 편안하지 않다. 유약한 인간이 버티기에는 너무나도 거칠고 험하다. 산으로 가는 길은 좁고 울퉁불퉁한 길들 뿐이었다. 구불구불한 길들이 계속해서 나온다. 주변은 온통 수풀이 우거진 풍경이다. 없던 멀미도 생길 것만 같은 이동시간이었다. 흔들림 없는 편안함이 그리웠다. 산길을 따라 깊숙이 들어가서 드디어 도착했다. 밖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날씨운도 안 좋지. 비를 무릅쓰고 등산을 해야 했고, 그리 많은 비는 아니어서 챙겨 온 우비를 꺼내서 입었다. 진흙길에 발을 내딛으며 등산을 시작했다.


시작지점부터 운무가 가득 끼어있다.


 시작 고도는 4000m. 이제부터 비니쿤카 정상까지 등반 시작이다. 아침 먹고 고산병 약을 바로 먹길 잘했다. 시작부터 숨이 가쁘다. 비니쿤카의 정상고도는 해발 5000m가량된다. 가는 길에 말을 탈 수 있는데, 말을 탈까 했지만 우리 4명이 한 번에 탈만큼 한꺼번에 많이 대기하고 있지 않았다. 그냥 온몸으로 부딪혀 보자 하고 걸어가기로 했다. 젊은 몸 이럴 때 쓰지 언제 써보겠는가. 그렇게 우리는 서로 결의를 다지며 진흙길을 뚫고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고산지대라 그런지 몇 걸음만 걸어도 금방 숨이 차올랐다. 약을 안 먹었다면 두통과 전신피로가 순식간에 몸을 덮쳤을 것이다. 비는 내리고 바닥은 질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도, 전력질주를 한 것만 같다. 그래도 중간중간 고개를 들어보면 구름 낀 산세가 병풍처럼 둘러져있다. 다행히도 올라가는 길 중간에는 해가 났다. 주변 풍경들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비가 그친 틈을 타서 잠시나마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깊은 산세에 운무가 낀 것이 멋진 모습이었다.



 코카 캔디는 입에서 녹을세라 다시 입에 넣었고, 코카차는 수시로 마시면서 올라갔다. 그렇지 않으면 힘들어서 집중력이 흐트러질 것 같았다. 가는 길의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등반하느라 온전히 즐길 틈이 없었다. 살짝 낀 운무와 우거진 산세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뽐내고 있었다. 장엄한 자태였지만, 해발고도 4천 미터 이상에서 보기에는 무리였다. 비는 내리다말다를 반복했다. 우비를 입은 탓에 해가 나면 땀이 차서 비닐이 몸에 달라붙었다. 신발은 이미 젖었고, 힘이 들어 앞사람만 보며 걷는 게 다반사였다. 숨이 정말 말도 안 되게 차올랐다. 중간중간 휴식시간을 가졌는데 주변 사람들도 모두 힘들어 보였다. 가끔 찍는 사진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표정과 고통에 절여진 모습이 묻어 나왔다. 그렇게 앞만 보고 걷다 보니 어느덧 정상이 눈 앞에 들어왔다. 정상이 보일 즈음에 한 친구는 탈진 직전이었다. 물론, 주변에는 멀쩡하게 동네 뒷산 가듯이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고 도와가며 마지막까지 발걸음을 내디뎠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풀잎들이 사라져 갔다. 나무가 우거진 숲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자갈과 흙뿐이었다. 그런 풍경과 힘든 고난은 마치 순례길과 같은 장엄함을 풍겼다.



 그렇게 고생 끝에 한 걸음 두 걸음 나아갔다. 비는 그쳐 해가 나기 시작했다. 어느새 정상이 가까워지고 그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두발로 오르는 걸 갸륵하게 여긴 페루의 토착신 파차마마가 날씨를 열어준 것은 아닐까. 그렇게 우리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 걸음씩 나아갔다. 쉬지 않고, 느리지만 꾸준히 올랐다. 그렇게 우리는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성취감보다 일단 쉴 수 있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정상에는 이미 많은 인파가 있었다. 그 인파를 뚫고 결국에 올라선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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