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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교선 Apr 25. 2021

남미 여행 일지 11. 날이 좋아서 쿠스코가 좋았다

20대 중반 남자 4명의 남미 배낭여행기

고산지대에 익숙해지는 중입니다.


이전 숙소에서는 1박만 하기로 했기에, 오늘은 다른 숙소로 옮기는 날이다. 그래서 급할 것 없이 오전은 느긋하게 지냈다. 쿠스코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은 산뜻했다. 아침은 간단하게 과일과 빵으로 해결하고 숙소 근처를 산책했다. 주변에 시장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은 산 블라스로 각종 과일이나 곡물들을 팔고 있었다. 숙소 주변이 쿠스코 내에서도 고지대에 속해서 고산에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가벼운 산책 이후 침대 속으로 다시 기어들어갔다. 그리고 체크아웃 시간이 되었고, 짐을 챙겨 새로운 숙소로 갔다.


 새로운 숙소는 이전보다 훨씬 깔끔했다. 걸어서 좀만 내려가면 되는 곳이었는데, 상당히 현대적인 느낌이었다. 거실도, 주방도 넓어서 오래 머물기 좋았다. 숙소에 짐을 풀고 어제 맡겨놓은 빨래를 찾아왔다. 그동안 일정상 빨래를 못했는데, 뽀송뽀송한 옷감을 다시 만지니 기분이 좋아졌다. 갓 마른 옷감은 뭔가 알 수 없지만, 좋은 기분을 선사한다. 특히나, 낯선 여행지에서라면 더욱. 빨래를 찾은 후 점심으로 과자와 맥주를 먹었다. 기분도 좋겠다, 날도 좋겠다 본격적인 관광에 앞서 약간의 맥주는 좋은 친구가 되어주리라. 이곳의 특산 맥주인 쿠스퀘냐. 이국의 맥주는 분위기가 곧 맛이다. 간단한 과자와 작은 맥주 한 병만 있어도, 여행이라는 분위기가 모든 걸 채워준다. 날은 좋았고, 더 이상 햇빛을 기다리게 할 수 없어 밖으로 나왔다.



태양의 신전, 코리칸차

 

 첫 목적지는 코리칸차라는 성당. 이명은 태양신전이다. 스페인이 점령하여 성당으로 만들기 이전에 이곳은 토착신앙의 신전으로 사용되는 곳이었다. 태양신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겉모습부터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대문이 어찌나 큰지 코끼리가 들이박아도 멀쩡할 것 같다. 잉카문화의 건축양식 기반 위에 서구식 건축 양식을 얹어놓은 것이 신기했고, 또 지금까지 유지되는 것 역시 놀라웠다. 잉카식 건축양식은 서구에서 사용하는 벽돌과는 달리 돌을 모양에 맞게 짜 맞추는 방식이다. 돌들이 퍼즐처럼 서로 아귀가 맞물려 하나의 벽을 이루고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딱딱 알맞게 돌을 배치하고 옮긴 것인지, 사람의 노동력은 때론 경이를 불러일으킨다. 


거대한 성당의 문

1층이 일반적인 성당의 모습이라면 2층은 여러 가지 유물들과 옛 성당의 물건들을 그대로 보존하여 전시하고 있었다. 잉카 유적의 터만 남은 장소도 있었다. 터만 남은 곳이 따로 전시되어 있는 곳을 보면, 기분이 묘했다. 전시실에는 갖가지 모양의 아기자기한 도자기로 빚은 인형도 있고, 용도를 알 수 없는 성유물들도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성당의 형태가 이렇게 온전히 남아있는 것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침략자인 스페인군이 들여온 종교가 어떻게 이리도 강하게 뿌리를 내린 것일까. 만약 한국에 일본에서 들여온 종교건물이 남아있다면 진작에 파괴되고 불타지 않았을까. 그것도 전통 있는 한국 사찰 위에 덧붙여 세운 것이라면, 더더욱.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이리 공존하게 만든 것일까.

 코리칸차는 한때 황금의 사원이었다고 한다. 스페인군이 황금을 다 가져간 탓에 지금은 석조건물로 보인다. 하단부는 잉카식 건물, 상단부는 스페인식 성당. 형태만 보면 공존이라기 보단, 가톨릭의 색채가 더 강한 건축물이다. 내부는 영락없는 성당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가톨릭을 믿고, 수많은 성당들을 유지 보수해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식민지배가 너무 길어져서 그랬던 건지, 아니면 통치방식이 좋았던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성당에서 잠시 야외 쪽으로 나가는 코스가 있었다. 화장실을 가려다가 발견한 곳인데, 정말이지 하늘이 내린 풍경이 그곳에 있었다. 쿠스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였다. 날씨까지 합세하여 축하선물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적당하게 낀 하얀 구름과 파란 하늘 아래, 주황색 벽돌과 지붕으로 이루어진 쿠스코의 마을 모습이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코리칸차 앞의 작은 정원에는 푸른 잔디와 나무가 선명한 색을 내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색채 구성은 가히 태양의 신전에서 볼 수 있는 태양 아래 선물이라 할 법했다. 



 완벽한 쿠스코의 풍경을 마지막으로 코리칸차 성당 구경을 마무리했다. 잉카의 건축기술과 성당이 함께 있는 기묘하면서도 신기한 곳이었다. 구경을 마치고, 파비앙 여행사로 향했다. 이미 투어 예약을 다른 곳에서 했음에도 이곳을 간 이유는 바로 한국 라면을 구입하기 위해서다. 여기서는 다른 곳에서 살 수 없는 고향의 그리운 맛을 팔고 있었다. 우리는 불닭볶음면과 짜파게티를 구입했다. 그리운 고국의 맛을 다시 만날 생각에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구경하러왔다가, 구경당하고 갑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다른 방향으로 잡았다. 쿠스코의 명물 12 조각돌이 있는 곳으로. 이것이 왜 명물이냐, 그것은 잉카식으로 지어진 벽의 상징적인 돌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12개의 각이 있는 돌인데, 이 12각에 맞춰 다른 돌들도 정교하게 짜 맞추어 벽을 이루고 있다. 마치 퍼즐처럼 서로 맞물려서 하나의 벽을 견고하게 만든 셈이다. 벽돌도 아닌데, 이렇게 정교하게 짜 맞춘 잉카인들의 기술력이 새삼 대단했다. 견고한 벽을 만들 생각으로 돌들을 서로 짜 맞출 생각을 하다니, 석공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던 것일까. 기념으로 그 앞에서 사진을 남겼다.


 그 옆 가에는 시끌벅적한 전통복장 판매점이 있다. 기념품 가게인데 남미의 전통복장인 폰초를 비롯해서 다양한 기념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정말 종류가 너무나도 다양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할 수 있다. 처음 보는 신기한 문양이 이곳저곳에 있다 보니 옷뿐만 아니라 바지, 가방, 머리띠 등등 구매욕을 잔뜩 불러일으키니 주의해야 한다. 하나 구매할 생각으로 구경하고 있었는데 바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는 게 아닌가. 해서 가보니, 다른 두 친구가 화려한 전통복장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치장한 채 사진을 찍고 있었다. 털모자부터 폰초, 목도리 그리고 어디서 났는지 막대기까지 들고 있었다. 쟤들은 어디서 저런 걸 구한 거지 싶었는데, 한국인을 반긴 직원 점원이 마구 주며 입어보라 했나 보다. 나와 다른 친구도 가세하여 우리 네 명은 남미 전통복장으로 풀 장착을 하게 되었다. 사진도 찍고, 점원과도 사진을 찍었다. 사진 찍는 내내 다른 관광객들이 우릴 기웃거리며 간 것은 덤이다. 동양인 관광객이 정말 신기한가 보다. 구경하러 와서 구경받는 기분이란 게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이곳이 바로 꽃보다 청춘에서 이적과 유희열이 왔던 그곳이던 것 것이다.



 


고향의 맛, 불닭게티와 와인 한 잔


 남미 하면 또 와인 아닌가. 와인이 저렴하길래 근처 마트에서 구입했다. 안주는 불닭볶음면과 짜파게티를 섞은 불닭게티. 와인도 마시고 싶고, 한국의 라면도 먹고 싶었던 20대들의 선택이었다. 와인과 함께 한국의 맛을 느끼며 동서양의 조화를 체험했다. 한창 먹다가 마트 주인이 추천해준 코카잎이 생각났다. 코카잎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으면 입이 마비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호기심이 생긴 우리는 한 장씩 물고 5분여간 씹어보았다. 그런데 마비는커녕 텁텁한 풀 내음밖에 안 났다. 아직 현지인의 레벨에 도달하려면 멀었나 보다. 그래서 남은 잎은 끓는 물과 함께 차를 우려내어 마시기로 했다. 코카차가 고산병에 도움을 준다고 하니, 차를 끓이기로 했다. 마무리로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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