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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교선 Apr 19. 2021

남미 여행 일지 10. 쿠스코? 쿠스코!

20대 중반 남자 4명의 남미 배낭여행일지

애송이는 살 수 없다. 쿠스코


 쿠스코로 떠나는 날. 정든 아레키파를 뒤로 공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레키파의 공항은 생각보다 작았다. 간이공항 같았다. 시간을 때울 만큼 부대시설이 있는 것 같진 않아서 그저 평범하게 수속하고 별일 없이 국내선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고 보니 페루 내에서 국내선을 타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도시 이동은 전부 버스나 택시로 해결했기 때문에 이번이 처음일 수밖에 없었다. 마치 제주도에 가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여느 때처럼, 비행기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쿠스코는 공기부터 다르다. 고산지대라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이미 공항에서부터 산소마스크를 비치해두고 있었다. 고산증세가 발현되면 언제든지 의무실을 통해 지원받을 수 있었다. 리마만큼 큰 공항은 아니었지만, 있을 것은 다 있는 공항. 우리는 드디어 쿠스코에 도착했다. 사람들로 꽤나 북적여둔 공항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에어비앤비로 예약해둔 호스트를 만나러 갔다. 날이 맑았고, 새하얀 구름이 유유히 하늘을 떠돌고 있었다.

공항에서 시내가는 길에 만난 동상


 숙소는 아직 정리 중이라 했다. 그래서 우선 짐부터 맡기고 시내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다른 남미 도시들이 그렇듯 쿠스코에도 역시 아르마스 광장이 있었다. 아르마스 광장이 있는 곳이 바로 관광의 중심이 된다. 그런 고로 우리는 광장으로 향했다. 쿠스코 시내에는 특유의 도시 분위기를 자아내는 벽돌 건물이 많았다. 따뜻한 흙벽 색과 도보는 쿠스코만의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높지 않은 건물들과 과거의 모습을 간직한 도시 전경을 걷다 보니 옛 마을을 거닐고 있다는 감상에 젖었다. 물론, 현대적인 건물들도 있었지만 정말 간간히 보였다. 대부분이 옛 건축 양식을 아직 간직하고 있어 보였다. 




 늦은 아침이자 이른 점심 이른바 브런치로 우리는 루마스 가든이란 곳으로 갔다. 아르마스 광장에서 좀 더 골목으로 걸어가서 감을 믿고 간 곳이다. 아무래도 아르마스 광장 주변의 식당은 관광지 식당이 으레 그렇듯 가격 대비 만족도가 보장되지 않을게 뻔했다. 사전 정보 없이 간 곳인데, 사장님이 무척이나 친절하고 유쾌하셨다. 실수로 추가로 나온 음식을 그냥 서비스라고 너스레를 떨며 그냥 주었다. 넉넉지 않은 배낭여행객에게 이만한 친절이 더 있겠는가. 사진 촬영도 같이 하며 즐거운 추억을 하나 만들었다. 음식은 과일 샐러드와 요거트, 토스트 등 서구적인 아침상이었다. 뭔들 만족하지 않을 수 있으랴!


 


쿠스코 살짝 맛보기


 시간이 애매해진 우리는 관광을 나서기보다 근교 투어 예약을 위해 여행사에 들려보기로 했다. 일단 가격부터 알아야 흥정을 하든, 계획을 짜든 할 수 있을 테니. 쿠스코에서 한국인들에게 가장 유명하다는 파비앙 여행사를 찾아갔다. 온갖 블로그에 수없이 후기가 적혀있단 걸 몸소 증명하듯, 한글이 문 앞부터 보였다. 아르마스 인근에 위치한 덕분에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아르마스 광장 인근은 여행사들이나 식당, 기념품 판매점이 잔뜩 즐비했다. 그중에서도 2층에 자리 잡은 파비앙 여행사. 정말 계단 올라가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다. 고산지대에서는 계단을 오르는 것조차 최선을 다해야 했다. 천근의 짐을 짊어지고 올라가는 맛이었다. 겨우 한 층밖에 안 올라왔지만, 숨이 너무나도 가빴다. 고산지대를 온몸으로 체험한 순간이다. 

아르마스 광장의 모습

 한숨을 돌린 후에야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겨우 한층 올라왔을 뿐인데! 상담원도 익숙한지 우리가 숨을 고르길 기다려 주었다. 투어 프로그램을 알아보니 이곳 여행사들은 보통 근교 투어를 마추픽추와 묶어서 판매하고 있었다. 찬찬히 프로그램 구성을 살펴보며 가격을 비교해보았다. 나쁘지 않은 가격이었고 한국인들이 자주 찾는 만큼 어느 정도 보장된 여행사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인과 계속 동행해야 한다는 점이 다소 걸렸다. 좀 더 현지 느낌의 투어를 하고 싶었고, 와카치나에서 한국인으로 구성된 버기 투어가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변에 있는 다른 투어사들도 알아보기 위해 나왔다.

한국어 설명도 있었던 파비앙 여행사


 어떤 여행사를 갈지 둘러보던 찰나 한 현지인 아저씨가 친구! 친구! 한국어를 연신 외치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알고 보니 다른 여행사에서 온 거였고, 당연하게도 호객행위를 하러 온 것이었다. 우리는 어디 가격이나 알아보자는 심산으로 따라갔다. 파비앙보다 저렴하게 해 준다는 말에 가서 보니 인당 몇 달러 정도 아낄 수 있었다. 프로그램 구성은 거의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인당 몇 달러씩 아끼면 맥주를 몇 병 더 마실 수 있다는 기적의 알코올 논리로 여기서 투어를 예약했다. 한국인 단체 관광객과 간다면 여행길이 좀 시끄럽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혹여 아주머니나 아저씨가 많은 여행그룹이라면 좀 여유가 없고, 현지의 길을 그대로 가기보다는 좀 더 쉬운 길을 갈 거라 지레짐작했다. 와카치나 버기 투어 때 아주머니가 다수였던 한국인 전용 버기카에서 실제로 운전을 더 조심해서 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일부 관광객분들은 모래 슬라이딩 안 하고 먼저 차 쪽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기도 했었다.



영문도 모른채 즐겼던 축제


예약을 마치고 나오니 광장에서 퍼레이드를 하고 있었다. 문자를 읽을 순 없어서 어떤 축제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분위기나 축제 형태를 보니 지역 특산품을 알리는 축제 같았다. 하나같이 전통복장처럼 보이는 옷을 입고 춤을 추며 아르마스 광장을 돌고 있었다. 관광객들에게 무슨 봉지를 던져주고 있었다. 이걸 그냥 참을 수 없었다. 우리도 손을 흔들며 어필을 하였고, 마침내 우리도 봉지 하나 받을 수 있었다. 얼른 받아서 비닐을 열어보니 볶은 땅콩과 치즈였다. 고소한 것이 맥주 안주로 안성맞춤인 것 같아 가방 안에 쟁여두었다. 다른 봉지도 받았는데 이번엔 볶은 옥수수였다. 신나게 입에 털어 넣었는데, 웬걸 딱딱했다. 우리가 알던 그런 옥수수의 느낌이 아니었던 터라 입에 우물우물 넣고 불려서 먹었다. 고소하고 짭짤한 게 맛은 있어서 다행이었다. 

  여기서도 어김없이 연예인병이 발동하고 말았다. 신나서 간식 봉지도 받아먹고, 사진도 찍으며 구경하고 있으니 현지인들의 사진 요청이 들어왔다. 이번에도 역시 흔쾌히 허락했고,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몇 번 찍으니 다른 분들도 우리에게 부탁하기 시작했고, 마치 유명인사가 된 느낌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어리둥절했다. 우리가 대체 뭐라고. 결국 서너 명과 사진을 찍고 나서 축제의 행렬을 따라 쿠스코의 골목길로 들어섰다. 축제 행렬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길었다. 모두 형형색색의 전통복장과 같이 잘 차려입고 나서 행진을 하고 있었다. 흥겨운 음악과 함께 춤을 추고 있었고, 도시의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그 줄이 골목에서 다른 골목까지 이어졌다. 



쿠스코의 골목


 다시 호스트의 집으로 와서 짐을 찾고 숙소까지 택시 타고 이동했다.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에 깜짝 놀랐는데, 이게 현지인들만 이용하는 비밀의 택시 같았다. 정규 택시가 아니라 소일거리로 택시 일을 하시는 분이었다. 현지인은 그냥 손을 들어 차를 세우고 우리를 태웠는데, 예약되어있던 차량 서비스인 줄 알았다. 현지인만이 아는 비밀의 택시 맞는 것 같다. 숙소에 도착 후 호스트와 구글 번역기로 소통했다. 영어는 이곳에서 잘 먹히지 않았다. 간단한 스페인어로는 인사가 전부였다. 구글 번역기가 없었다면 하나도 소통이 안될 뻔했다. 숙소는 옛 가정집 같았다. 작은 부엌이 있었고, 방이 두 개여서 두 명씩 자면 될 것 같았다. 작은 거실도 있어서 식사를 하기에도 좋았다. 상당히 고지대에 있던 터라 택시가 업었다면 못 올라왔을 것이다. 


숙소에서 본 풍경이 제법 그럴듯 했다.


 주변 마트를 찾으러 산책을 했다. 쿠스코의 골목길은 포장도로가 아닌 자갈이 깔린 길이었다.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흙과 벽돌로 지어진 벽들이 따듯한 느낌을 주었다. 걸어 다니는 게 힘든 것만 빼면, 정말 좋았다. 이곳저곳 구경하며 돌아다니다가 그럴듯한 마트에서 현지 라면과 기타 생필품을 사 왔다. 그리 많이 걷기에는 아직 고산 적응이 덜 된 듯하였다. 저녁으로 라면을 간단하게 끓여먹고, 낮에 가져온 맥주 안주에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현지 라면의 맛! 역시 라면은 한국라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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