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 남자 4명의 남미 배낭 여행기
새벽부터 일어났다. 투어가 있기에.
오늘은 터미널에서 신청했던 콜카 캐년 투어가 있는 날이다. 졸린 눈으로 대충 씻고 투어버스를 타러 이동했다. 정말이지 호텔 바로 앞까지 와서 다행이다. 아침잠은 고산에서도 이길 수가 없다. 고산지대라 눈꺼풀은 계속 내려앉았다. 홀리듯 버스에 몸을 실었다. 새벽 별이 박힌 밤하늘과 아직 잠든 도시를 보다 잠이 들었다. 버스는 새벽 공기를 헤쳐 산으로 우릴 안내했다.
눈을 떠보니 해발 5000M 설산에 도착했다. Volcan Chucura라는 고산이었다. 분명 도시에는 해가 쨍하고 내리쬐어 눈이 앉을자리가 없었는데, 이곳은 온통 눈 천지였다. 서리가 낀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예의 그 하얀색이었다. 버스 문을 나와 내렸다. 내리자마자 올라오는 숨 막힘. 산소가 부족한 게 확연히 느껴졌다. 아 이런 게 고산지 대구나. 순식간에 숨이 가빠왔다. 조금 걸었는데도 마치 계단을 한참 올라온 것처럼 숨이 찼다. 심지어 어지럼증까지 느껴졌다.
추위도 한 몫했다. 눈이 녹지 않는 곳이지 천연 냉동고였다. 여기 계속 있다간 몸 상태가 안 좋아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기 드문, 끝내주게 아름다운 설산이었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앞에 두고 나는 버스로 돌아왔다. 눈에 담기에는 고산병이 생각보다 강했다. 아무래도 다소 적응기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수박 겉핥듯 둘러보고 사진 몇 장 찍은 뒤 다시 버스에 올랐다.
다시 버스가 달려 도착한 곳은 아침식사 장소였다. 치바이 마을이라 했다. 아침식사는 어느 가정집 같은 곳에서 투어 게스트들과 함께 먹었다. 오래된 느낌이 나지만 정갈한 집이었다. 한편의 화덕과 목재 질감의 집안이 아늑했다. 바닥에는 옛 잉카문화를 떠올리게 하는 문양이 새겨진 카펫이 깔려있었다. 아침식사는 간단하게 빵과 버터 그리고 코카잎을 우려낸 차와 계란 프라이였다. 소박하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식사였다. 코카차는 특별한 맛은 없었다. 물론, 코카인을 섭취한 것 같은 마약 효과는 전무했다. 식사를 한 후에 고산병 약을 미리 섭취했다.
식사 후 밖을 돌아다녔다. 시장처럼 기념품 가게들이 마을 한 구석에 열려있었는데 소박하면서도 현지의 느낌이 그득한 물건들이었다. 콘도르를 형상화하거나 이미지로 차용한 기념품들이 많았다. 목도리, 팔찌, 가운, 모자 등등 다양했다. 나는 쭉 둘러보다가 팔찌와 알파카 목도리를 구매했다. 알파카 목도리는 정말 부드러운 질감이 마음에 들었고, 상아색 색감과 문양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그림 같은 계곡과 계단식 논밭이 곳곳에 자리 잡은 산세였다. 이윽고 우리는 콘도르 전망대에 도착했다.
하늘의 제왕, 콘도르
가장 먼저 버스에서 내린다면 눈앞에 펼쳐진 그림 같은 경관에 넋을 잃게 될 것이다. 두 번째로 고산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다. 여길 걸어왔다면 분명 도중에 기절했을 것이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찼다. 조금 익숙해진 이후에야 다시 고개를 들어 풍경을 눈에 담았다. 지금까지 본 자연경관 중에 견줄 만한 대상이 없을 정도였다.
경관을 얘기하기에 앞서 왜 이곳이 콘도르 전망대인지 알아야 한다. 이곳은 콘도르를 볼 수 있는 곳이기에 당연히 콘도르 전망대라 붙여놨지만, 뭇 자연이 그렇듯 인간이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콘도르는 이 지역에서 신성시되는 새인데, 아마 보기 힘든 점도 한 몫하지 않았나 싶다. 전망대에서 콘도르를 보기 위해서는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보기 힘들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무려 세 마리나 보았다. 역시 어제 맞은 새똥이 액땜의 효과가 있었나 보다. 조류로서의 도리인가. 아니면 누군가 9대가 덕을 쌓을 만큼 훌륭한 가문 출신이 있었을지도. 어쨌든 우리는 창공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새를 목격할 수 있었다. 날개를 펼치면 3미터쯤 된다고 한다. 보자마자 납득이 갈만 크기였다. 콘도르는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는 듯 칠흑빛의 날개를 펼치며 자유롭게 하늘을 활강했다. 푸른 하늘을 거리낌 없이 날아다니는 모습이 정말 하늘의 제왕 같았다. 유유히 춤을 추듯 하늘을 나는 모습이 어찌나 자유로워 보이던지. 참으로 멋있고, 참으로 부럽다.
콘도르도 콘도르지만, 이곳의 계곡은 정말 기가 막힌 경관을 자랑한다. 가늠할 수도 없는 거대한 계곡. 녹음이 우거진 계곡은 맨 눈으로 보는데도 마치 CG를 보는 것만 같았다. 카메라로는 다 담을 수 없다. 장엄한 풍경 앞에 잠시 넋을 잃고 구경했다. 신이 마치 본인의 손재주를 자랑하려 만들어 놓은 계곡 같았다. 등고선이 눈에 보일 것만 같은 선명한 지형과 높은 하늘의 투명한 햇살이 한층 더 멋지게 꾸며냈다. 어쩌면 위엄 있는 산세와 거대한 콘도르 앞에 신앙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먹은 고산병 약 덕분에 어지럽거나 막 힘들지는 않았다. 다만 숨이 가쁜 건 어쩔 수 없다. 조금만 걸어도 지치고 숨이 차올랐다. 기념사진을 찍는 답시고 점프샷을 몇 번이나 시도했는데 정말 한번 할 때마다 죽는 줄 알았다. 신나는 점프샷을 찍긴 찍었는데, 다시는 못할 짓이다. 아, 사진을 향한 젊은 열정이여!
이곳의 온천 아직 멀었다
얼마나 인간이 작게만 느껴지고, 자연의 위대함을 새삼 알게 되는 투어였다. 눈에 가득 담고 난 뒤 다시 버스를 탔다. 다음 장소는 투어 패키지에 포함되어 있던 온천이다. 온천이라 길래 뜨끈한 노천온천을 기대하며 신나게 수영복을 챙겨 갔다. 그런데 우리의 기대는 산산조각 났다. 첫인상부터 실망스러웠다. 혼탕은 그렇다 치고, 탈의실과 샤워실이 정말 열악했다. 한 평 남짓한 곳에서 순서대로 한 사람씩 이용해야 했다. 샤워실도 1평, 탈의실도 한평. 실내도 아니라 바닥은 젖은 흙으로 축축했다. 물품보관소 역시 허술해서 그냥 빗장을 걸어두는 수준이었다. 누가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꺼내갈 수 있었다.
탕은 미지근했다. 그리 깨끗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도 그럴게 흙을 잔뜩 밟고 난 발 그대로 탕 안에 들어가는 것이라 깨끗할 리가 없다. 실내풀과 야외 온천이 있었는데, 그나마 야외 온천의 장점이라고는 자연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뿐. 그것도 산세에 둘러싸여 탁 트인 전경보다는 그저 그런 야외 온천이었다. 온천이라기보다는 미지근한 수영장이 더 맞는 표현이 아닐까. 온천투어는 그냥 그랬다. 어쩌면 사우나의 민족인 우리의 기대치가 너무 컸을지도 모른다. 역시 온천은 뜨거운 물로 지져야 한다. 그리고 깔끔하게 씻고 마시는 식혜 한잔! 여러모로 아쉬운 온천이었다.
콜카캐년 투어, 안녕!
점심은 뷔페다. 뷔페인데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는 그런 뷔페였다. 가짓수는 많았지만 그리 당기는 음식은 없었다. 콩이나 퀴노아를 이용한 요리는 맛을 한번 보면 족했다. 그나마 알파카 고기로 만든 볶음 요리인 살타도와 과일들이 맛있어서 많이 먹었다. 알파카 살타도는 다른 관광객들에게도 인기가 많아서 금방 동나기도 했다. 다른 요리들도 시도는 해봤지만, 그다지 내 입맛을 당기지는 못했다. 역시 고기는 고기다. 고기와 과일로 배를 채웠다.
식당 밖은 널따란 목장이 펼쳐져 있었다. 신선한 공기가 가득했고, 전원의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라마 농장을 한번 산책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다시 버스를 타고 아레키파로 돌아왔다. 오는 길엔 말 그대로 기절하듯 잠을 잤다. 아레키파에 도착하니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다들 숙소에 돌아와서 씻자마자 뻗었다. 저녁때까지 눈을 붙였다.
콜카 내년 투어는 다소 고된 투어다. 새벽같이 일어나야 했고, 고산병 약이 없었다면 꽤나 고생했을 것이다. 음식이나 온천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즐겁고 만족스러웠다. 언제 또 그렇게 장엄한 자연경관에 콘도르를 볼 수 있을까. 콘도르 전망대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갈 만한 가치가 있다. 게다가 날씨 타이밍이 좋아서 탁 트인 시야를 맘껏 구경할 수 있었다. 푸른 하늘과 구름을 내려다보는 경관은 여전히 잊히지 않는다. 꿈을 꾸듯 선계에 다녀온 느낌이다.
아레키파의 마지막 밤
저녁은 숙소 근처 샌드위치 가게에서 해결했다. 현지 식당이었는데, 여기서도 역시 메뉴판을 보며 감으로 때려 맞춰 주문했다. 과일주스와 샌드위치를 사진과 간단한 설명으로 예상해서 주문했다. 딱히 현지라서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맛은 아니었고, 맛있는 샌드위치 맛이었다. 간단하게 식사 후에 광장의 야경을 배경 삼아 느긋하게 산책을 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주황빛 가로등이 하얀 건물들의 벽면을 따라 광장을 감쌌다. 비가 와서 그런지 바닥은 촉촉했다. 물기 가득 광장의 바닥은 가로등의 빛을 그대로 반사했다. 야자수와 분수대에도 생기가 돌았다. 아레키파의 맥주, 아레키파냐를 한 잔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내일은 쿠스코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맥주 한잔으로 만족하고 일찍 잠에 들었다. 백색 도시 아레키파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