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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교선 Apr 13. 2021

남미 여행 일지 8. 고산도시아레키파-3-

20대 중반 남자 4명의 남미 배낭 여행기

산타 카타리나 수도원 기행


수도원의 외벽은 아레키파 대성당과 퍽 닮았다. 같은 건축 양식인지, 같은 재료인지 왜인지 같은 공간이 이어져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들어가는 순간 나는 이곳이 확연히 다른 곳임을 깨달았다. 내부 벽의 색감이 너무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붉은 벽이 먼저 아늑한 색깔로 우릴 맞이했고, 안쪽으로는 푸른색의 벽도 있었다. 기존의 아레키파 건물이나 성당이 백색과 회색으로 어우러져 무채색의 공허한 느낌이었다면, 이곳은 알록달록한 색깔로 사뭇 생기를 뽐내고 있었다. 입구부터 주황색으로 칠해진 벽들과 활짝 핀 꽃들이 수도원이 다른 곳과는 다름을 증명했다. 마치 다른 마을에 온 것만 같았다. 고요하고 차분했다.

 실제로 수도원은 거의 작은 마을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가이드를 따라 거니는데도 상당히 걸었다. 작은 기도 공간 정도로 생각했던 내 예상과는 달리, 자급자족이 가능할 정도로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물물교환이 가능한 작은 시장도 열렸다고 한다. 기니피그 구이가 유명한 지역이다 보니 기니피그 사육장도 조그맣게 있었다. 시녀들이 거주하던 곳이 따로 있을 만큼, 방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이렇게 많은 인원들이 식사할 수 있을 만큼 곳곳에 화덕도 자주 보였다. 검게 그을려있는 화덕은 한국의 아궁이와는 달리 불룩하게 솟아서 내가 서구권 마을에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수도원 곳곳에 자리 잡은 화덕에서 식사 때마다 빵을 구웠다면, 온 수도원이 빵 냄새로 가득했을 것이다. 향긋하고 고소한 빵내음이 기도하고 있던 어느 수녀를 방해했을지도.


 신기했던 점은 입구 쪽에 있던 면회실이다. 수녀가 되면 가족들과 만나는 것이 금지가 되었고, 오직 면회실을 통해서만 가족들과 얘기할 수 있었다고 한다. 부자들은 가족일원 중에서 한두 명을 수녀원으로 보내고 가정의 평화와 복을 빌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적으로 여러 재화들을 면회실을 통해 보내주었다. 그런 고로 이 멀리 떨어진 남미 아레키파 수녀원에 중국제 도자기들이 전시되어 있는 까닭이다. 처음에 중국식 문양이 잔뜩 그려진 도자기를 보고 이게 왜 여기 전시되어있었나 싶었는데 가이드 분 덕분에 이마를 탁 쳤다. 한편으로는 가족 중 누군가를 수녀원에 수녀로 보내고 복을 빈다는 것이 아이러니해서 한번 더 쳤다. 이곳의 전통적인 종교관과 기복신앙이 결합된 결과물이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수녀원 출신으로 기적은 선보인 수녀가 한분 계셨다고 한다. 시스터 안나. 안나 수녀님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성인으로 추존되기에는 행한 기적이 부족해서 성인 반열에 들진 못하셨지만 이곳 지역 신앙에 끼친 영향력이 상당하시다고 한다. 수도원의 한편에는 그분을 기리기 위한 공간이 따로 존재했고, 그 앞의 꽃과 잘 관리된 초가 여전히 많은 존경을 받고 있음을 알게 했다. 

 작은 상점이 있어서 방앗간 참새 못 지나치듯 들어갔다. 수녀님들이 직접 만든 초콜릿이나 빵, 기념품들을 팔고 있었다. 커피 같은 음료도 있어서 고요한 수도원에서 햇살을 맞으며 쉬기에도 좋았다. 조용한 분위기가 한껏 수녀원의 풍경을 오히려 살려주고 있었다. 단체로 빨래하던 옛 빨래터에서 흐르는 물줄기 소리는 적막을 깨고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빨래할 때면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와 참방 거리는 물소리가 어우러져 시장판을 이루지 않았을까. 과거에는 계급에 의해, 혹은 가정의 복을 위해 수녀님들이 생활하던 곳이다. 시녀들의 바쁜 나날들도 있었을 것이다. 현재도 수녀님들이 계시지만, 그 수는 현저히 적어졌다고 한다. 지금은 이곳이 너무나도 고요하고 아늑해 보였다.



낭만으로 그려낸 아레키파의 야경


 투어를 마치고 약속한 시간에 약속한 장소에서 무사히 만났다. 두 친구는 아레키파 최대 재래시장을 구경하고 오는 길이었다. 수제 과일주스가 정말 인상 깊었다고 한다. 저렴한 데다 양까지 넉넉해서 배가 부를 지경이라고 하니, 나도 기회가 되면 꼭 마셔보리라 다짐했다. 마트에서 맥주와 치킨 그리고 여러 먹을거리를 샀다. 낯선 땅의 마트는 구경만 해도 재밌다. 이곳은 식료품과 생활품뿐만 아니라 각종 반찬들도 팔았다. 그래서 우리는 통닭을 하나 구매해서 먹어보기로 했다.

통닭과 맥주 그리고 현지 과일과 과자들


 식사를 하다 보니 어느새 해질 무렵이 되었다. 이 호텔의 장점은 옥상을 마음껏 올라가 볼 수 있다는 것! 루프탑 하면 또 한국인들이 빠질 수 없지. 맥주 한 병씩 들고 일몰을 보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옥상에 올라가고 알았다. 옥상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아마 신이 이끌어준 것이 아니었을까. 혹은 아레키파의 토속신이 아레키파를 자랑하려고 우릴 부른 것은 아니었을까. 노을 지는 도시 풍경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마치 화가가 세상의 모든 낭만을 그려낸 것 같았다. 물감을 고르고 골라 가장 아름다운 것을 하늘에 칠해 놓은 것만 같았다. 분홍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과 반대편의 푸른 하늘이 공존했다. 우리는 한낮의 하늘과 일몰의 하늘 중간에 서서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그 가운데 보랏빛이 가득한 하늘이 구름과 어우러져 한 편의 수채화를 만들어냈다. 그러데이션처럼 변해가는 하늘 아래서 우리는 맥주를 들이켰다. 

 성당과 수녀원 조명 그리고 도시 가로등에는 어느샌가 노란 불빛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건물의 외형과 함께 이국적인 정서를 풍기며 아레키파의 야경을 칠해갔다. 우리 숙소 옆에 자리 잡은 수녀원의 조명이 하얀 외벽에 반사되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늘의 색감과 도시의 야경 그리고 건물들의 풍경이 어우러져 없던 낭만도 만들어내었다. 맑은 하늘에서 즐기는 아레키파의 야경, 우리는 행운아였다.




 한창 눈호강을 한 뒤 간단하게 씻고 나서 아르마스 광장으로 야경을 보러 갔다. 날이 맑아 아경도 멋졌기에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많이 걸은 터라 다소 피곤했지만, 언제 또 이걸 볼 수 있을까 싶었다. 힘들었지만, 잘한 선택이었다. 광장에 다리 잡은 분수대 뒤로 아레키파 대성당에 비쳐 황금빛 조명이 광장을 채웠다. 주황빛과 하얀빛의 가로등 색깔이 대성당의 자태와 어우러졌고, 솟구치는 물줄기를 뽐내는 분수대와 함께 멋진 모습을 연출했다. 빛에 반사된 야자수의 모습과 성당 벽면의 명암이 그 배경이 되었다. 

분수 뒤로 펼쳐진 노란 조명
빛나는 아레키파 대성당의 야경

 산책하는 와중에도 현지인들의 사진 요구를 들어주었다. 한껏 연예인병에 취해, 야경의 분위기에 취한 채 숙소에 돌아왔다. 그런데 오는 길에 머리에 새똥을 맞고 말았다. 처음엔 빗방울인 줄 알았다. 빗방울이 떨어지기엔 하늘은 너무나도 맑았다. 구름 한점 없이 새까만 하늘이었다.  분명히 영락없는 새똥이다. 기껏 씻었는데 다시 머리를 감고 잤다. 치솟는 짜증을 억누르며 애써 액땜이라 여겼다. 내일은 운이 좋겠지. 그렇게 잠을 청하며, 고산도시 아레키파의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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