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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교선 Jun 08. 2021

광기에 대해 -1-

27살 취준생의 일상 수필

광기는 인류의 오랜 친구라고 했던가.


 광기는 분명 기본적인 정신 상태와는 구별된다. 광기 어린 눈빛과 행동은 이성적인 상태의 그것과는 다르다. 광기에 빠진 이유가 무엇이든, 현대에서는 대게 기괴하고 두려운 무언가로 묘사된다. 광기는 보통 악인들에게 나타나거나, 주인공이 견딜 수 없는 고통이나 절망감을 겪고 나서 나타난다. 미치광이, 정신 나간 사람, 광인 모두 부정적인 어감이 들어있다. 혹은 어떤 집단이 맹목적으로 무언가를 따를 때 우리는 광기 어린 집단이라 여긴다.


 광기에 사로잡힌 캐릭터는 알 수 없는 위압감이나 공포심을 자극한다. 그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상식이나 행동양식과는 동떨어진 언행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광기는 우리에게 대응할 수 없는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있다. 암묵적으로, 법적으로 개인마다 합의된 폭력의 정도가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광기 어린 인물이 언제 칼을 휘두를지, 언제 총을 쏠지 우리는 종잡을 수 없다. 광기 어린 악인이 두려운 이유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어떤 수단이든지 가리지 않을 것 같은 우리의 예상이 두렵게 한다. 예측 불가능성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행동,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두려움에 사로 잡히게 한다.


 조커는 광기 어린 캐릭터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이자 현대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광기는 그의 캐릭터를 상징하는 모습이며, 대부분의 조커에게서 나타나는 행동양식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돈에 사로잡힌다던가, 소중한 무언가를 지킨다던가 하는 것이 없다. 상식선에서 통하는 말도 통하지도 않는다. 우리에게 피해를 주어도, 우리는 법과 상식으로 그 피해를 요구할 수 없다.  당연히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관습적으로 통용되는 법의 테두리가 그를 억압할 수 없음을 우리는 안다. 그렇기에 그런 모습이 때로는 일반 관중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기도 한다. 사회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해소할 수 없을 때, 누군가의 광기는 그것에 대한 대리만족감을 주기도 한다.




광인 그리고 욕망의 해방


 상식에서 벗어난 행위, 법의 허용범위를 박살내고 차후의 일은 생각하지 않는 태도. 우리는 이것을 광기 어린 행동의 지표로 삼기도 한다. 평소에 하지 못한 욕망의 해방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 광기는 어쩌면 억압받는 자들의 카타르시스를 비틀린 모습으로 표현하는데 유용할 수 있다. 나를 억압하는 이를 정당한 방법으로 복수한다면 사이다겠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나에게 갑질 하는 손님 혹은 상사, 아무리 해도 열리지 않는 취업길, 연인이나 지인 같은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문제는 정당하고 정석적인 루트로는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이로부터 사람에게 실망하여 불신하고, 분노를 느끼고, 절망하거나,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 무력감을 느끼는 등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 광기는 이를 쉽게 해방한다. 죽음과 파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비틀린 방법이 광기가 선택하는 수단이고, 더 이상 차후를 생각하지 않는다. 범죄를 저지른다면? 마음대로 행동한 후, 우리는 차후를 생각해야 한다. 범죄자가 되어 평생 도망 다니며 살 건지, 기존에 쌓아온 사회적 지위와 명성, 인간관계를 포기할 건지. 그럴만한 용기도 없고,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기에 우리는 광기를 멀리한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상식과 관습이 쌓아 올린 성에서 사는 것이 지금의 나의 삶에 더 적합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광인을 동경하더라도, 내가 속한 사회에서 타자가 되어버리는 그 광인 자체는 되고 싶지 않다.




도피처


 결국 광기는 도피처다. 견디지 못하고, 버티지 못해서 광기라는 모습 뒤에 숨은 것이다. 절망감과 무력감에 포기하고 인정하고 다시 나아가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지만, 광기라는 도피처는 표면적으로 공포감을 자아내어 일순적인 도취감을 줄 수 있다. 광기는 도망친 자들이 찾은 감정에 불과하다. 모든 것이 충족된 상태의 인간이 광기에 절여지는 경우는 없다. 무엇인가 결핍되거나 타고난 성정이 불안정한 자들이 종종 광기에 취하기도 한다. 광기는 결핍과 불안, 무력감에서 비롯된 도피처이다. 혹은 집단이 있어서, 집단의 이름으로 광기에 절여지는 것이다. 집단은 책임이 분산된다. 집단에 속한 자는 본인의 집단이 우월하다고 믿는다. 그래야 집단에 속한 자신의 정체성 역시 우월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들이 집단을 광기로 몰아넣는다. 개인 스스로 책임지고, 당당할 수 없기에 집단의 광기로 도망친 것이다.


 개인마다 견딜 수 있는 스트레스, 극복해낼 수 있는 무력감, 버틸 수 있는 우울함은 다 다르다. 그러니 광인 혹은 광인이 된 집단을 비난하기보다는 그 과정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는 겨우 그 정도라고 할 지라도, 한 인생에게는 모든 걸 내걸 만큼 중대사항일 수 있다. 세상에 가벼운 시련은 없다. 선천적인 정신질병인 아닌 한 한 집단이, 한 개인이 광기로 자신을 내몰았는지 알아내는 것이 더 수준 높은 사회로의 한걸음이 될 것이다. 비난은 쉽지만, 이해는 어렵다. 영화 <조커>에서 왜 그가 광기로 스스로를 몰았는지 영화를 본 사람은 알지만, 영화 속 주변인들은 그걸 알 턱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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