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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교선 Jun 16. 2021

광기에 대해 -2-

27살 취준생의 일상 수필

불광불급


 불광불급. 미치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는 말이다. 목표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광기가 서릴 만큼 그것에 몰두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반박할 거리는 없다. 실제로 몇몇의 성공 사례들이 이를 증명이라도 해주듯 여러 매체에서 접할 수 있다. 그런데 얻으려면 미쳐야 하는 것이 이상한 사회가 아닐까.


 우리는 옛날처럼 하나에만 얽매이는 삶을 살지 않는다. 하나에 미치면 다른 것은 포기해야 한다. 미쳐야 미친다. 철학가의 삶은 철학에만 미치면 되고, 예술가의 삶은 예술에만 미치면 되는 것일까. 어쩌면 과거에는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하나에 미친다는 것은 다른 것을 포기하고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많은 것을 신경 쓰면서 살아야 한다. 기술은 많은 것을 연결해놓았고, 복잡한 지식과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는 지속적으로 많은 곳에 신경을 쓰게 만든다. 그런 사회에서 하나에만 미친다면, 그런 삶은 무언가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공허하고 불행할 것이다. 훌륭한 기업가는 있어도, 다정한 아버지는 그곳에 없을 수 있다.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예술가는 있어도, 폭행과 성추행으로 얼룩진 가해자 역시 남을 수 있다. 종교 혹은 정치에 심취하여 정의를 실현하는 집단이 되어 있을지는 몰라도, 인간관계가 다 끊어진 '나'가 있을지도 모른다. 광기는 공허와 불행을 감춰줄 도피처가 될 뿐이다.


미치기 전에 견적 보기


 견적을 봐서 미쳐야 한다. 하나에만 몰두하기엔 우리는 연결된 것들이 너무 많다. 만약 그것이 실패한다면, 그저 성취 없는 광기만 남을 뿐이다. 미침을 종용하지만, 미침에 대가는 아무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가진 시간과 돈을 부어 미치더라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 그것은 성공한 미침보다 더욱 불행하다. 성공한 후에는 그래도 남길 수 있는 명예와 성취가 위로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과 돈을 다 쏟아 그것에 온 열정을 다했음에도 시대의 운이 안 따르거나, 잘못된 방향이었다면, 미치더라도 얻지 못하는 것이었다면.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족도, 친구도 잃은 채 매달렸던 일이 수포로 돌아갔을 때, 무엇이 남을까. 미치지 않으면 얻지 못하지만, 미친다고 해서 다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친 자들의 성공담은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불광불급을 마치 진리처럼 만들지만, 그들의 운과 배경까지 '미침'의 영역으로 볼 수 있을까. 자본주의는 이룬 성과만큼의 보상을 준다. 실력이 된다면, 더 많이 노력한다면 남들보다 더 많은 걸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이클 센델은 경고했다. 많은 걸 가졌다고 해서 남들보다 더 노력한 것은 아니다. 성공한 자들이 남들보다 더 미쳐서 성공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미쳐서 얻은 사람들은, 남들보다 무언가에 더 미쳐도 될만한 상황이지 않았을까.


광기, 그리고 몰입


 우리는 심도 깊은 몰입과 광기를 구분해야 한다. 심도 깊은 몰입은 성공의 열쇠이자, 신이 주신 축복의 순간이다. 예술작업이든, 사색에 빠진 것이든 몰입 상태에서는 외부 감각과 차단되고 심지어는 몸의 신호마저 무시할 수 있다. 몰입이 스스로 들어간 상태라면, 광기는 도피해서 도착한 곳이다. 광기는 결국 현대사회에서 면죄부가 되어주지 못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광기 어린 인물에 열광할지는 몰라도, 현실 속 광기 어린 인물에게 열광하기는 어렵다. 


 소설 광염 소나타에는 광기에 대한 현대적인 시선이 나타난다. 소설 속 한 인물은 광기 어린 예술가로 범죄를 저지를 때마다 걸작을 만들어낸다. 결국에는 정신병원에 수감되고, 소설은 질문을 던진다. 역사의 한 획을 그을 정도의 걸작을 만들어내는 예술가의 광기에서 비롯된 범죄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광기에서 비롯되어 달성했다는 점에서 다른 분야와도 연결이 가능하다. 인류 문화계를 한층 높이는 예술가, 국가의 경제를 발전시키는 기업가, 대다수의 행복을 끌어내는 정치인 등 광기에서 비롯되어 높은 성과를 내는 인물들. 광기는 과연 면죄부가 되어줄까. 


 성공한 자들의 광기는 질문을 던질 화두가 되어준다. 그러나 실패한 자들의 광기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혹은 그저 미치광이의 헛짓거리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몰입은 여전히 성공과 성취의 중요한 열쇠다. 몰입한 상태만큼 즐거운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광기는 엄연히 다르다. 도망친 곳에 낙원이 없다는 것은 광기에도 통한다. 광기는 포장지가 아니다. 변명 역시 되어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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