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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교선 Feb 06. 2022

27. 위대한 공중도시 마추픽추 -3-

20대 중반 남자 4명의 남미 배낭여행기

온몸으로 느끼는 마추픽추의 자연 근데 더위를 곁들인..


젊은 날의 패기는 무엇이라도 가능하게 만들어 줄 것만 같다. 뭐 딱히 성공이나 연애나 그런 얘기가 아니라, 몸을 쓰는 측면에서 말이다. 그것도 마추픽추라는 걸출한 관광지를 구경하고 난 뒤에 고양감으로 가득한 20대 후반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마추픽추를 걸어서 내려가기로 했다. 버스라는 위대한 문명의 이기 대신에 온 몸으로 마추픽추의 위대한 자연을 느끼기로 했다. 그리고 그건 참으로 안일하고 오만하고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끝도 없는 계단이 우릴 맞이했다. 아니 맞이했다긴 보단 나타났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마추픽추에서 다시 아구아 깔리안떼로 가는 길은 온통 계단이었다. 그 높은 산에서 다시 내려가는데 계단뿐이라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새벽과는 달리 낮에는 햇살이 강했다. 산속 특유의 습도와 함께 데워진 공기가 폐 안으로 들어왔다. 사진을 위해 입고 온 남미 판초는 몸 안에 열을 가두었다.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찜통이 되었다. 땀은 비 오듯 오고, 가져온 물은 다 떨어졌다. 풍경 역시 색다른 게 없었다. 그저 한국에서 보던 산의 모습과 다를 게 없다. 우린 그저 정글 같은 산속에서 아래만 바라보며 내려갔다. 울창한 숲과 우거진 수풀을 즐길 여력이 되지 않았다. 갈증과 더위 그리고 습도와 계단 지옥. 그것이 마추픽추에서 내려가는 길이었다.



 중간에 버스가 다니는 대로변이 보였을 때는, 멈춰서 버스를 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판초는 벗어서 메고 내려왔다. 처음엔 농담도 하며 내려오던 우리는 어느 순간 말이 없어졌다. 에너지를 아껴야 했다. 숙소 근방에 거의 다 내려왔을 무렵에는 왜 걸어 내려왔을까라는 후회와 후들거리는 다리만이 남았다. 그래도 꾸역꾸역 사진 한방을 남긴 뒤, 허기와 갈증을 달래려 식당으로 향했다. 어제 저녁에 갔던 그 식당.






아구아 깔리안떼에서 즐기는 느긋한 오후


 아구아 깔리안떼에서 이미 검증된 식당, 모레나. 도착하자마자 우선 음료부터 주문했다. 일단 음료부터. 달달하고 시원한 액체가 목을 통해 흘러가자 이제야 좀 앞이 보였다. 그리고는 해산물 볶음밥, 파스타와 알파카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갈증에 고통받는 육신은 달달한 음료로 구원해야 한다. 고된 산행 후라 피곤해서 그런지 식욕이 그리 많진 않았다. 하지만 음식이 맛이 좋아 먹을수록 식욕이 살아나서 말끔히 해치웠다. 




 식사 후엔 생과일주스 집에 갔다. 이곳의 생과일주스들은 정말 저렴하고 과일도 풍성했다. 디저트 주스로 입가심을 하는데 어느 순간 밖에 빗소리가 들렸다. 후두둑 떨어지던 빗줄기는 그칠 줄을 몰랐다. 우산이 없던 우리는 느긋하게 휴식이나 취하기로 했다. 내친김에 주스 몇 잔을 더 주문했고, 몇 없는 와이파이 가능 지역을 즐겼다. 실컷 인터넷도 즐기고, 비 내리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전엔 참 화창했는데, 타이밍이 기가 맥혔다. 우산이나 우비를 쓰고 다녀왔다면, 사진도 잘 안 나오고 그리 재밌지도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CG 같은 풍경을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비가 좀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근처 기념품 시장으로 향했다. 기차역 바로 옆에 위치한 곳이다. 생각보다 꽤 큰 곳이다. 가지각색의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관광객들만을 대상으로 하는지라 그리 북적이진 않았다. 아직 관광객들이 한참 올 시간이 아니어서 그런지, 우리는 느긋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마추픽추 모형 조각품은 기본이고 가방부터 목도리와 모자 등등 없는 것이 없었다. 티셔츠는 가게마다 다른 모양과 다른 색상으로 손미들을 유혹했다. 카드, 지갑, 조각인형, 팔찌 등등 여기서 구매하는 장신구만으로도 남미스럽게 꾸밀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바로 남미를 다녀온 사람이다!라고 동네방네 소문낼 수 있다.



 




돌아가는 기차편이 없다라굽쇼?


 기념품샵 구경을 끝내고 우린 표를 확인하러 갔다. 오늘은 다시 쿠스코로 돌아가는 날이다. 미리 기차편을 확인하려 갔다. 매우 자연스럽게 여권을 제시했다. 이제 슬슬 편한 기차 타고 돌아가려나 싶었는데, 우리 표가 없다고 한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린가. 분명 패키지로 왕복 기차편을 예약했다. 우리 이름으로 된 기차표가 없다니. 혹시 잘못된 것은 아닌지 두세 번 더 확인을 부탁했다. 사기라도 당한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 그래서는 안된다. 그럼 어떻게 돌아가란 말인가. 불안한 마음이 엄습했다.


 당황하지 말고 우선 여행사에 전화를 걸었다. 로밍을 해와서 망정이지, 아니면 큰 일 날뻔했다. 신호음이 갔고, 심장박동 소리와 함께 뛰었다. 불안함이 수신을 따라 흘렀고, 제발 받아라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 무렵 다행히도 전화를 받았다.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표는 구하는 중이라고 했다. 아니 오늘 돌아가는 날인데, 오늘 구한다고? 걱정 말라는 그의 목소리로는 전혀 진정되지 않았다. 신뢰할 순 없었지만, 방법이 있나. 하릴없이 그 말을 믿고 일단 호텔에 짐을 찾으러 갔다.


 호텔 로비에서 조금 기다렸다가 짐을 찾고 다시 기차역으로 향했다. 해질 무렵이다. 다행히 발권은 되었다. 쿠스코로 돌아갈 수는 있다! 하지만 너무나 늦은 시간이었다. 예상과는 달리 너무 늦은 시간에 당황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남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역 내부 카페에 들어갔다. 짐을 내려놓고, 차와 간식으로 간단히 저녁을 요기했다. 기력이 없었다. 조용히 기다렸다가 우린 기차에 올랐다. 거의 마지막 잉카 레일 기차였다. 올 때 탄 기차가 특등석이라면, 갈 때는 완전한 일반석에 심지어 만석이었다. 덜컹거리는 기차에서 우리는 아구아 깔리안떼에 인사를 고했다. 이미 어두워진 바깥이었고, 기차는 어둠 속으로 향했다. 어둑해진 밤길을 달려서 중간 지점 오얀 따이땀보로 달려갔다. 안녕 마추픽추.


 도난 문제가 있을까 봐 푹 잘 수 없었다. 기차에서 뜬 눈으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졸고 있었다. 아는지 모르는지 기차는 달려 도착했다. 졸린 눈으로 내리니 우리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어떤 안내원이 서있었다. 우릴 데리러 온 버스인가 싶었다. 우릴 데리러 온 것은 맞는데, 버스는 아니었다. 그곳엔 스타렉스 같은 벤이 서 있었다. 짐가방을 실을 트렁크 공간 같은 곳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린 무거운 배낭을 끌어안고 차에 올라탔다. 벤이 너무 좁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늦은 밤이었다. 


나는 다음 숙소의 호스트에게 연락하여 늦어질 것 같다고 연락하였으나, 인터넷도 잘 터지지 않았다. 오래 앉아있던 탓인지 허리에 통증이 느껴졌고, 불편함 속에서 우린 1~2시간을 계속 달렸다. 호스트에게 미안한 마음과 불편함이 온몸을 돌았다. 쿠스코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바로 택시를 잡고, 다음 숙소로 향했다. 새벽 1시. 우리는 다음 에어비앤비 숙소에 도착했다. 놀랍게도 호스트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감사했다. 새벽 1시쯤이나 되는 늦은 시간이었지만, 친절하게 우릴 맞이해주었다. 숙소를 안내해주었고, 나는 서투른 스페인어로 소통하며 귀 기울여 들었다. 친절한 호스트 덕에 하루의 마무리는 즐거웠다. 정말 친절하고 감사한 인연이다. 




긴 하루였다. 마추픽추부터 쿠스코로 다시 오기까지, 정말 긴 하루였다. 뜨끈한 물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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